[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대구 금강잠수교∼경주 동궁월지 70㎞ 라이딩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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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8   |  발행일 2017-07-28 제37면   |  수정 2017-09-05
1년반 만의 설욕戰…동궁·월지 연꽃들 ‘축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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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라 불리던 동궁과 월지의 아름다운 연꽃을 사이에 두고 라이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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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주 라이딩의 출발선으로 많이 찾는 금호강자전거길의 명소인 금강잠수교.

대구에서 경주로 가는 길은 개성 토호였던 왕건의 고려 군대가 후백제 견훤의 공습으로부터 망해가는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동한 역사루트라 할 수 있다. 토호들과 연합정치로 왕조의 씨를 뿌린 고려는 한민족이 형성되는 역사적 전환시대를 열었다.

역사적으로 대구와 경주가 한 덩어리인 것처럼 와전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라 경주를 향해 등을 돌린 곳이 달구벌 대구이다. 사실 대구는 신라를 쓰러뜨린 본부사단이었다. 신라문화에서는 변방의 지위를 면치 못하고 있고, 신라보다는 고려의 문화유산들이 대구를 빛내고 있다. 대구가 내세우는 왕건길의 알짜 콘텐츠는 고려사다. 역사공부가 세분화되지 못한 시절의 주먹구구식 공부와 역사노트가 대구를 신라에 강제 병합해 놓은 양상이다.

작년 봄 나홀로 개척길 나섰다‘쓴맛’
비 예보에도 금강잠수교에 모인 10명
두 바퀴로 가는 천년고도 라이딩 도전

낭패보기 십상인 영천 금호성당 갈림길
대구선 철길 옆의 거여로 타는 게 핵심
북안 임포리는 안전한 경주행의 길목

이런 이유로 대구에서 경주까지 70㎞의 역사적 라이딩 소식을 ‘서태영의 포토바이킹’을 통해 전하는 기분은 색다르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도 경주라이딩을 취소하지 않고 강행했다. 대구에서 경주까지 안전하게 가는 자전거길을 개척하는 것은 포토바이킹의 숙원사업이기에, 경주 라이딩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 믿고 금강잠수교 앞 금강동 경로회관 앞으로 비몽사몽 달렸다. 라이더 10명이 모였다.

흐린 날의 금강잠수교는 병풍 속의 아름다운 풍경 같았다. 안심습지 일대는 마치 호반의 도시처럼 느껴졌다. 익숙한 금호강자전거길 둔치엔 노란색 여린 꽃들이 활짝 피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남하교를 지나 대부잠수교 삼거리에 이르렀다. 신호등이 없어 자율의 교통질서가 필요한 곳인데 안전장치를 강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하양교 근처에서 쉬어 간 기억이 있는데 자전거 타기 좋은 날씨에 구력이 있는 라이더들이 참가해 쉬지 않고 달린다. 경산 와촌면 용천리를 지나면 영천이다. 오전 10시20분경 영천금호성당에 도착해 휴식을 취했다.

여기가 중요한 갈림길이다. 큰 길을 쫓아 영천 시내로 들어갔다가 산업도로를 타고 화들짝 놀라 국도를 찾아 길을 헤매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금호강자전거길을 타고 거여대교를 건너는 길이 있다. 우리는 대운종합상사가 보이는 거여로를 따라 냉천리∼관정리∼황정리를 지나 황정교를 건넜다. 황정교 다음은 도동네거리다. 도동네거리에서 영천IC(북안) 방향으로 직진해서 가니 영천IC로 진입하는 봉작교차로다. 길 건너엔 영천 남부소방서가 자리 잡고 있다. 국도 4번 경주 작산 방향을 기분 좋게 읽었다. 안전하게 대구∼경주 대하영경로를 달리려면 금호성당에서 대구선 철로 옆으로 난 냉천관정황정리 거여로를 타고 도동네거리까지 안착하여 봉작교차로, 작산교차로로 이어지는 흐름을 타는 것이 핵심이다.

봉작교차로를 지나 잠시 산업도로를 탔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안전했다. 유하리, 송포리, 반정리, 임포리를 통과하면 북안면 소재지가 나온다. 북안면 소재지 다음 이정표는 만불산이다. 울산/경주/만불산 방향 표지판이 우리를 한 걸음 더 천년고도 꽃대궐로 이끌었다. 만불사 바로 전 철교를 통과하는 것은 골벌국에서 서라벌로 월경하는 순간이다. 전방에 건천 10㎞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하늘거린다. 2㎞만 가면 경주에 두 바퀴가 닿는다. 1년 반 전 나홀로 대구∼경주 라이딩 길 개척에 나섰다가 황정대교를 건너 북안터널 앞에서 겁나게 달리는 총알탄 차량의 소음에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옆길로 후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임포리는 안전한 경주행을 열어주는 중요한 길목이다.

만불사 입구 도로변에 백일홍이 붉게 피어 있고 그 너머 철길로 경주가 종착역인 저속의 중앙선 열차가 최고 시속 자전거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경주의 서쪽 끝은 서면의 아화리다. 아화! 참 어감이 좋은 동네다. 여기서부터 서라벌(西羅伐)이 펼쳐진다. 여근곡이라 불리는 선덕여왕의 지기삼사(知幾三事) 경주 옥문지, 무열왕릉(사적 제20호), 김유신 묘(사적 제21호), 진덕왕릉(사적 제24호), 효소왕 때 화랑 득오가 죽지랑과의 우정을 그리워하며 향가 ‘모죽지랑가’를 지은 곳인 부산성(사적 25호), 나원리오층석탑(국보 제39호), 금척고분군(사적 제43호), 서악동마애여래삼존입상(보물 제62호), 서악리삼층석탑(보물 제65호), 효현동삼층석탑(보물 제67호), 서악리고분군(사적 제142호), 법흥왕릉(사적 제176호), 단석산신선사마애불상군(국보 제199호) 등 유네스코 문화유적에 포함되지 않은 중요 유적지가 산재한다. 여기만 둘러봐도 1박2일이 필요할지 모르는데, 목적지로 정한 연꽃 핀 동궁과 월지를 향하여 계속 전진해야만 했다.

아화2길 앞에서 건천 6㎞, 경주 10㎞를 보니 안경주 밖경주로 갈라놓은 것 같아 느낌이 이상했다. 신평공단길을 지나니 큼지막한 간판이 건천읍을 알린다. 건천에서 처음 만나는 사적은 선덕여왕이 백제의 군대를 소탕했다는 여근곡이었다. “남자의 생식기가 여성의 생식기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게 된다. 그래서 쉽게 소탕할 줄 알았다.” 남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학사, 여근곡 문화관광 간판을 보고 달릴 따름이다. 눈에 밟히는 오봉산, 지나치기 일쑤인 여근곡이 어딘지를 몰라도 남자로 죽기 전엔 한 번은 방문하지 않을까 싶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드는 늦가을엔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하니 여근곡은 가을날의 전설로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남성들은 양기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속설도 전한다.

오직 목적지를 향하여 무정차 모드로 달리던 10인의 자전거 대오가 신경주농협 앞에서 신호 대기를 하며 몇 분 휴식을 취했다.

자전거길에서 처음 만나는 고분군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꿈에 신인으로부터 받았다고 전해지는 전설상의 보물인 금척이 묻혔다는 금척리의 고분군이다. 이웃한 산들도 큰 봉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버스나 차량으로 고속주행하고 가면 놓친다.

금척고분군을 순식간에 지나 금량교를 넘어서니 박목월 시인의 생가가 있는 모량리다. 모량은 참 아득한 말이다. 21세기의 인물사는 대중과의 관계 속에서 인물의 가치가 자리매김돼야 하는데 아직은 권력자와의 관계를 지향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박목월 생가는 지난봄에 나홀로라이딩을 할 때 들러보았는데, 생가문화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량리의 모량교차로를 통과하면 고천대교 아래 밤색 ‘무열왕릉’ 안내판이 깃발처럼 날린다. S오일 율동충전소 앞에서 대경로를 따라 좌회전하면 서악동의 김인문묘, 무열왕릉에 닿는다. 앞서 가던 일행이 사라져 버려 평화로운 마을길 같은 내남로를 탔다. 두대마을을 지나도 종적이 묘연했다. 율동과 망성리 일대를 경유해 내남로에서 경덕로로 바꿔 타고 내남면 용장리 인천교 앞에서 반구대로로 좌회전해서 배동 삼릉숲길로 접어들었다. 삼릉숲 앞을 지나면서 숲을 감전시킬 것처럼 무질서하게 자리한 한전 전선줄이 눈에 띄었다. 세계문화사적지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경관을 위해서라도 이런 전선줄의 지중화 조치가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헤어졌던 일행은 대릉원 옆 숙영식당에서 만나 함께 점심을 들며 라이딩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대릉원에서는 촬영 모드로 주행을 했다. 안압지라 불렸던 동궁과 월지엔 연꽃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로 넘쳤다. 사진 촬영을 위한 자세를 잡고 허밍 라이딩을 했다. 그길로 밀고 나가 반월성을 배경으로 포토바이킹을 하고, 경주 하면 연상되는 첨성대 앞에서 단체 촬영을 했다.

혹시나 하며 기대했던 경주역사유적지구 첨성대의 접시꽃은 말라 시들어버려 애석했다. 그래도 잊을 수 없는 멋진 라이딩이었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 라이딩 코스

금강잠수교-하양 대부잠수교-하양교-영천 금호성당-거여로-황정교-도동네거리-봉작교차로-북안면(유하리/송포리/반정리/임포리)-북안면소재지-만불사-경주 아화-건천-모량교차로-율동S오일삼거리-내남로 두대마을-삼릉앞-오릉네거리-대릉원-동궁과 월지 및 경주역사유적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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