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진보의 장기 집권 플랜과 TK의 선택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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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8   |  발행일 2017-07-28 제23면   |  수정 2017-07-28
논설실장
[조정래 칼럼] 진보의 장기 집권 플랜과 TK의 선택
논설실장

더불어민주당이 ‘TK 특위’를 본격 가동하면서 대구·경북 공략에 나섰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텃밭의 수성 차원에서 각각 ‘대구·경북발전협의체’를 만들고 TK에서 민생 행보를 시작했다. 여야의 TK 공략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전초전이다. 탄핵과 조기 대선을 거치면서 형성된 정치지형은 대구·경북민에게 일단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대구의 정서는 과연 일당 독점 구도의 보수로 회귀를 원할 것인지 아니면 모처럼 짜인 다당 구도를 지지할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예상하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진보의 위세가 기호지세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가 통치 행위를 넘어 고도의 정치적 파급력을 증폭시키고 있다. 5·18에서 보훈가족까지 좌우를 넘나드는 광폭행보는 상대를 한없이 작아지게 하고, 전광석화 같은 정책추진은 치고 빠지는 완급조절과 아퀴를 맞추며 반대파의 공세를 일축한다. 한마디로 문 대통령의 ‘닥공과 하이 킥’이 마치 장기집권의 포석을 끝내고 보수 궤멸의 행마를 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새 정부의 정책들 역시 정치로 수렴된다. 문 대통령 임기 내 17만여명의 공무원 증원, 인천공항공사를 필두로 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2배에 가까운 사병 임금 인상, 전교조 합법화 등 일련의 정책들은 대의명분과 실리를 얻으며 두고두고 진보의 우군들을 양성하는 안성맞춤의 수단이 되기에 충분하다. 정치공학적 셈법에 의하면 이 같은 정책의 수혜자들이 향후 선거에서 ‘문재인 키즈’로 든든한 진보의 후원자를 자처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음모론의 범주를 넘어 개연성을 획득한다. 보수 일각에서는 ‘보수의 궤멸’이란 말이 나왔을 때 이미 진보의 장기집권 플랜이 가동되기 시작했고, 그 정점에서 문 대통령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비롯한 정치 일정과 현안도 진보 진영에 나쁘지 않다. 문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등에 업고 개헌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국의 주도권을 쥘 공산이 크다. 개헌에 앞서 ‘선거 제도 개편도 함께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문 대통령의 언급은 소선거구제의 개정, 이를테면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을 염두에 둔 계산된 발언이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정당지지율에 의석수가 비례하도록 하는 제도로 기본적으로 다당제, 분권과 협치를 근간으로 한다. 여당에 유리한 이 같은 선거구제 개편이 쉽사리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소선거구제가 승자독식의 폐해와 사표의 양산이란 부작용 등으로 개정의 필요성이 줄기차게 제기된 터여서 야권도 무작정 반대만 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청와대와 여권의 시나리오는 정치적 빅딜을 하더라도 일정 부분 우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정교한 수순을 밟아나갈 게 틀림없다.

‘보수궤멸’은 곧 진보의 ‘장기집권’ 전략이다. 문재인정부 국정과제 1호로 등장시킨 적폐청산은 정교하게 벼린 전가의 보도다. 4대강 감사, 방산 비리, 사드체계 청문회 등 정해진 수순대로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면서도 여론의 역풍을 살피고 숨 고르기를 하며 보수결집의 빌미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패를 거울 삼은 세련미가 돋보인다. 절름발이가 된 국민의당과 합당 등 정계개편을 기획하기보다는 야당들을 번갈아 가며 교란·활용하려는 심산도 여소야대 국회의 리모트 컨트롤이라 할 만하다.

진보의 독주가 이렇듯 거침없는데 보수는 ‘노무현 정권보다 더 세련된 좌파들은 전열이 정비되면 우파 궤멸작전에 돌입할 것’이란 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앞선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워도 다시 한번’식 범 보수의 결집을 기대하거나 과거의 좁은 틀에 갇혀 있다. 이러한 보수의 위기를 틈탄 민주당은 ‘이대로라면 TK에서도 해 볼 만하다’는 판단 아래 일찌감치 탄핵과 대선을 거치며 침잠한 민심을 사로잡으려 나섰다.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의 TK 공략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지 예단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당시보다 유리한 여건인 건 확실하다. 대구·경북 지역민들 또한 여야 경쟁구도 속에 정치적 입지와 주가를 높일 수 있는 정치지형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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