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시시했던 대구시장 선거, 달라진다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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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6   |  발행일 2017-07-26 제31면   |  수정 2017-07-26
[박재일 칼럼] 시시했던 대구시장 선거, 달라진다

오래전 ‘서울 사는 친구’가 말했다. 투표장에 갔더니 안철수·박원순·정몽준·나경원 등 익히 듣고 호불호를 촌평했던 인물들은 없고, 별 관심이 없던 경기도지사 후보들만 잔뜩 인쇄됐더란다. 아차 싶었다고 했다. 그는 서울 외곽 일산으로 이사했는데, 일산의 행정구역은 경기도 고양시다.

친구의 착각은 이해할 만했다. 하기야 나의 신문사 편집국 기자는 대구시장이나 경북도지사 선거 제목 뽑기에는 별 흥미가 없고, 결국 오세훈이 역전했다고 흥분한 적도 있다.

재미없기로는 역대 대구시장 선거가 단연 전국 1위가 아닐까 싶다. 물론 경북도지사나 전라도 선거도 마찬가지지만, 나의 기준으로는 그렇다.

당원, 대의원들이 컨벤션센터를 빌려 나름대로 굉장한 당내경쟁을 뚫은 양 손을 맞잡는 이벤트를 하지만, 따지고 보면 평상의 대구시민이 거기에 별반 관여한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낙점된 인물이 뽑혔다. 투표용지 아깝다는 생각도 들 법했다. 물론 뽑힌 사람의 능력이 아닌 선거의 재미란 기준에서다.

그나마 지난 선거는 좀 나았다. 새누리당 경선에 친박으로 분류된 2명의 중진 의원이 나왔는데, 대구시민으로서는 거의 생소한 권영진에게 패해 망신을 당했다. 본선도 야당 쪽에서 김부겸이 등장해 승패와는 무관했어도 40% 득표율로 약간의 재미를 선사했다.

내년 6·13 대구시장 선거는 역대 선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 틀림없다. 당장 대한민국 정치지형이 180도 바뀌었다. 집권당 더불어민주당은 정색을 하고 전국 석권을 노릴 태세다. 핵심 타깃은 대구시장이다. 경북도지사는 여전히 버겁다. 만약 이겨서 TK의 반쪽을 접수한다면, 부산 정치인에 호남 인맥으로 채워진 문재인 정권의 위상은 달라진다. 거의 정치적 그랜드 슬램이 된다.

김부겸 행자부 장관(대구 수성구갑 국회의원)이 내년에 출마할 가능성을 나는 반반으로 봤다. 그런데 자유한국당 내 관측은 좀 다르다. 지역의 한 의원은 김 장관이 출마할 가능성이 100%라고 확신했다. 이유인즉 이렇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청와대의 정치적 의지는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했다. 국회의원에게 장관 자리까지 얹어준 것은 다음 선거에서 좀 고생해달라는 의미이고, 대통령이 추후 그런 협조를 구한다면 출마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강효상 대변인(비례대표)도 “우리는 김 장관의 출마를 전제로 준비하겠다”고 했다.

대구시장 선거의 또 다른 변수는 유승민이 이끄는 바른정당이다. 이혜훈 의원이 대표가 됐지만, 바른정당의 정치적 대주주는 대구 동구을을 지역구로 둔 유승민이다. 그가 부르짖는 보수의 부활을 증명해 보이려면 대구시장 선거에서 성적을 내야 한다. 직접 뛰든 아니면 그의 말대로 괜찮은 후보를 내서라도 자유한국당과 충돌해야 한다. 두 보수 야당은 서로 소멸될 정당이라고 공언했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 말대로 ‘합칠 명분은 이제 없고, 국민이 한쪽 손을 들어주는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으로서 대구시장은 사실상 마지노선이다. 무너지면 끝이다. 자유한국당이 이길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17개 시·도는 TK를 제외하고 몇 개나 될까.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권영진 현 시장도 마찬가지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은 첫 재임한 시장·도지사·군수를 내친 적이 거의 없다. 웬만하면 재선의 길로 갔다. 반면 정치지형의 변화는 그런 관성이 계속될 것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도 이런저런 명분으로 도전할 인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만만치 않은 경쟁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오래전부터 나는 대구의 정치적 다양성을 주창해 왔다. 정치는 원래 단세포적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다름과 다양성이 없다면 정치의 존재도 필요 없다. 다양성은 경쟁을 유도한다. 경쟁은 부분의 분발을 촉구하고, 결국 전체 시스템의 능력을 증대시킨다.

내년 대구시장 선거가 전국적 주목을 받는 역대급 블록버스터라고 기대한다면 과한 것일까. 분명한 것은 경쟁적으로 뽑힌 시장의 경쟁력이 높을 가능성이 더 있고, 민주적으로 선택된 정치인이 훨씬 더 민주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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