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민주당에 있고, 한국당에는 없는 것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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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5   |  발행일 2017-07-25 제30면   |  수정 2017-07-25
黨의 역사 제대로 반영하는
어떤 상징물도 없는 한국당
스스로의 역사를 망각하며
재기의 몸부림을 치는 것은
모래위에 집 짓는 것과 같아
[화요진단] 민주당에 있고, 한국당에는 없는 것
이영란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청와대 본관 1층에 있는 세종실로 들어가기 위한 전실에는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청와대 경내 어느 한 곳도 중요하지 않은 곳은 없겠지만, 세종실은 그중에서도 심장부와 같은 곳이다.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고,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등 국내외의 중요한 현안이 주로 이곳에서 다뤄지기 때문이다. 세종실 앞에 있는 방은 ‘행사’ 시작 전 일찍 도착한 장·차관 등 참석자들이 대기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곳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세종실 전실에 걸리는 역대 대통령 초상화는 대개 임기가 1년 정도 남았을 때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협의해 화가를 선정하고, 선정된 작가는 사진을 바탕으로 초안을 그린 후에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하여 최종 완성된다. 완성된 그림은 마지막 국무회의 때 걸어두는 것이 관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새 정부가 들어서고 난 이후 자못 궁금했다.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으로 5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초상화도 세종실 전실에 걸려 있을지 말이다. 그런데 지난달 하순 문재인 대통령이 제1차 일자리위원회 회의를 청와대 본관 1층 세종실에서 주재하면서 입구에 걸려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취재진의 카메라에 담겼다.

지난해 12월9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뒤 박 전 대통령이 두문불출하며 청와대 관저에 칩거하고 있는 사이 몇몇 참모들이 조용히 퇴임을 준비한 듯하다. 계명대 서양화과 교수 출신인 이원희 화백에게 푸른색 재킷을 입은 사진을 보내며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의뢰를 했다는 것이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초상화를 보지 못하고 청와대를 떠났다고 한다. ‘탄핵’과 관계없이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걸어두는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청와대 세종실에 걸린 것을 보면서 불현듯 떠오른 것이 수년 전 처음으로 더불어민주당사 입구에서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흉상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충격’이다. TK정치의 주류로, 보수의 본류라는 한국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찬찬히 들여다보니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실 등에는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흉상과 사진을 통해 민주당은 DJ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만방에 알리는 동시에 두 대통령을 중심으로 강하게 결속할 것이라는 다짐을 보여주는 듯했다.

아쉽게도 대한민국을 세우고 가난 퇴치를 주도한, 보수 세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자유한국당에는 그런 역사를 반영하는 어떤 ‘상징물’도 찾아볼 수가 없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한국당의 전신)은 서울 여의도 공터에 천막당사를 쳤다. 그리고 당의 재산을 헌납하는 등 자성하는 모습을 보여 민심을 움직였고, 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121석을 얻으며 재기했다. 그 이후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빌딩을 빌려 당사를 옮기면서 마당 한편에 ‘천막당사 시절을 잊지 말자’며 ‘컨테이너 전시실’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전시실은 한나라당이 다시 한국당으로 바뀌는 등 시간이 흐르는 동안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한국당이 자신들의 ‘역사’를 얼마나 소홀하게 생각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한국당은 ‘궤멸위기’ 극복을 위해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보수의 좌표 재정립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보수의 이념·가치를 중심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스스로의 역사’를 망각하거나 무시하면서 다시 서겠다는 것은 모래 위에 집짓기나 다름없다. 보수 재건의 전제 조건으로 그동안 한국당이 일구어 낸 ‘역사’를 당사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권이든 공과가 분명히 있고, ‘박근혜 정권’ 때문에 보수 정당이 궤멸되는 것은 대한민국에 이롭지 않기 때문에 보내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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