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뇌연구원의 뇌세상] 알츠하이머 치매와 괴도 뤼팽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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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5 07:41  |  수정 2017-09-05 10:46  |  발행일 2017-07-25 제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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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소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명 높은 괴도, 그를 추적하는 경찰 혹은 탐정이 있다. 경찰은 괴도 뤼팽을 추적하고 때론 함정을 파지만, 뤼팽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나타나 물건을 훔치고 유유히 사라진다.

이런 괴도 뤼팽의 모습은 알츠하이머 치매와 비슷하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치매 중 가장 흔한 형태이고 많은 연구가 이뤄졌지만, 불행히도 현재 직접적인 치료제는 없으며 증상을 완화해주는 약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치매 치료제를 만들기 어려울까.

알츠하이머 치료제의 주된 타깃은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다. 이 단백질은 정상 뇌에선 기억·학습에 필요한 단백질이지만, 치매 환자의 뇌에서는 비정상적으로 많이 만들어져 신경세포의 신호전달을 방해한다.

이 단백질은 양이 많아지면 서로 결합해 새로운 구조를 이룬다. 많은 수가 질서 있게 결합하면 거대한 독성 분자, ‘아밀로이드반’을 만들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작은 집합체인 ‘베타 아밀로이드 올리고머’이다.

괴도의 정체를 탐정이 알아내기 힘들듯이 베타 아밀로이드 올리고머의 구조는 워낙 다양하고 변화가 많아 연구자들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다고 특징 짓기 어렵다. 20년 전 이들의 독성이 처음 알려졌지만, 올리고머에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몇 개인지 그리고 이것이 어떤 구조인지 연구자들은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첫째 이유는 아직도 정교한 실험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뇌질환 환자에게서 베타 아밀로이드 올리고머의 표본을 구하기 어렵다. 세계적으로 뇌은행이 활성화되면 연구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소설에서는 괴도의 정체와 어디서 무엇을 훔칠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알츠하이머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된 올리고머들이 결합하는 단백질 수용체는 여러 종류가 알려졌으며, 세포막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모델도 다양하게 제안됐다.

최근에는 올리고머들이 다양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포막 근처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이런 다양성은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연구자들에게는 커다란 장애가 된다.

몇 년간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타깃으로 하는 신약들이 대부분 실패하는 바람에 최근에는 다른 단백질을 타깃으로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거나 조기 진단을 통한 증상 완화에 주력하려는 흐름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연구자들은 범인일 확률이 높은 베타 아밀로이드 올리고머가 남긴 흔적을 계속 수집·분석 중이다. 또 올리고머의 구조적 특징을 알아내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어떤 물질과 상호작용 하는지 분자 수준의 기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모두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맞춤 신약을 향한 노력이다. 언젠가는 알츠하이머 치매의 치료에 큰 진전이 있어 이 난해한 퇴행성 뇌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천무경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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