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냉엄한 외교 현실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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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4   |  발행일 2017-07-24 제30면   |  수정 2017-09-05
韓 한반도평화 주도권 불구
북핵· ICBM 실험 등 놓고
美와 현실적 간극은 못좁혀
사드 대립 중국협조도 난항
철저한 전략적 로드맵 필요
20170724
강준영 한국외대교수 차이나 인사이트 편집장

문재인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통해 국제외교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또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고차 방정식을 풀기 위한 한·미, 한·중, 한·일 정상회담 등을 통해 새 정부의 외교 정책 방향을 설파하면서 표면적으로는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빠질 수 없음을 국제사회에 확인시키고, 한반도 평화 환경 조성을 위한 ‘주도권’ 확보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외교는 상대가 있고, 특정 문제에 대해서는 각자의 셈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 의도대로 전개되기는 어렵다.

이번 문 대통령의 외교 무대는 바로 한국의 새 정부를 보는 관련국들의 인식과 북핵을 둘러싼 계산이 어떻게 다른지를 극명하게 드러낸 무대였다.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자신감 있게 ‘베를린 구상’을 발표하면서 대북 주도권 확보에 고무되었던 문 대통령은 귀국 후 예상 밖으로 ‘우리에겐 북핵 합의를 이끌어낼 힘이 없다’는 무력감을 토로해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 또 하나의 레드라인으로 여겨졌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강행해 한·미 양국을 완전히 무시했고, 중국은 앵무새처럼 사드 배치 철회만을 주장하면서 기존의 입장에서 전혀 물러날 의사가 없음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이미 미국은 북한의 ICBM 실험을 기존의 질서를 깨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간주하고 있다. 북한이 ICBM을 미국 본토까지 날릴 능력이 있다면서 군사적으로도 대북 강경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미국의 입장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이러한 미국의 인식을 잘 이해하고 있는 중국은 미국과의 논의를 피한 채 한국에 사드 철회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릴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미 상·하원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며 한국 주권사항이라고 천명하고, 중국이 가장 견제하는 한·미·일 3국 정상회담 공동선언까지 나왔으니 당분간 중국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이렇기 때문에 미국에는 사드 배치 철회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대북 제재는 미국과 함께하고, 중국에는 한국의 새 정부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를 풀려는 입장을 전달해 중국의 협조를 구하려는 전략을 상정했다면 이는 현실적이지 못하다. 지난 4월에 비해 미·중 공조가 원활하지 못하고, 한국 정부의 대북 협상론 강조가 대두되자 북한은 ‘베를린 구상’에 대한 즉답을 피한 채, 우리 정부가 베를린 구상에 대한 후속조치로 17일 제안한 군사회담과 남북적십자회담 개최 제의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서 이렇다 할 직접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북한으로선 한·미·일과 중·러 프레임을 이용할 찬스를 얻었기 때문이다.

결국 문재인정부는 한·미동맹의 견고함을 확인했지만,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과의 현실적 간극을 좁혀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미국은 대화보다는 제재와 압박에, 한국은 제재는 하나의 수단이라며 대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국의 주도권 적용도 그 범위가 남북관계에 국한되는지 아니면 핵 문제도 포함되는지 이견의 소지가 많다. 중국은 문 대통령 면전에서 북한은 ‘피로 맺어진’ 특수 관계임을 강조하면서 사드를 지칭하는 장애물 제거가 전제되지 않으면 경제보복 완화 등 한·중 관계 전반에 대한 돌파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을 피력했다.

미·중 양 강대국의 카드로 사용되면서 답보 상태에 빠진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교 현실은 냉엄하다. 주도권 및 대화와 협상에 대한 과도한 해석과 성급한 추진으로 한·미 공조에 균열이 생겨서는 안 되며, 북한으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해도 한국 새 정부가 대화를 추진할 것이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주어서도 안 된다. 자의든 타의든 모처럼 형성된 중국의 대북 압박 분위기도 이어가야 한다. 감성적 접근을 떠나 관련국들과 공조하는 철저한 전략적 로드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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