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덩케르크

  • 김수영
  • |
  • 입력 2017-07-21   |  발행일 2017-07-21 제43면   |  수정 2017-09-05
하나 그리고 둘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
代 이어 무법자 무리를 이끄는 그의 부성애


20170721

들판에서 일가족이 한 차에 타고 토끼를 쫓고 있다. 뒤 칸에는 다리가 부러진 남자가 고통을 호소하지만 다른 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토끼몰이에만 열중한다. 욕설과 응원이 난무하는 가운데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아버지의 무릎에 앉은 일곱 살짜리 소년이다.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감독 아담 스미스)의 첫 번째 신은 이처럼 범상치 않은 ‘채드’(마이클 패스벤더) 가족의 분위기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난폭하게 차를 몰던 꼬마 ‘타이슨’(조지 스미스)이 죽은 토끼를 개들에게 나눠주는 다음 장면에서 서사를 지배하는 가족의 야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들짐승을 노리는 야수처럼 이들에게서는 붉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법·제도 무시한 채 사는 마을 밖 커틀러 3代 이야기
‘캡틴 판타스틱’과 유사 맥락…아담 스미스 감독 신작
마이클 패스벤더 열연과 케미컬 브라더스 음악 눈길



마을과 떨어진 곳에서 캠핑용 트레일러 몇 대에 모여 살고 있는 커틀러 삼대(三代)는 사회 제도와 법을 무시하며 독자적인 생활을 한다. 이 중심에는 독특한 세계관과 종교심을 가진 채드의 아버지, ‘콜비’(브렌단 글리슨)가 있다. 채드와 아내 ‘켈리’(린제이 마셜)는 아이들을 위해 그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가족 공동체를 떠나지 못한다. 보편적이지 않은 가족의 보편적인 가족애가 이 영화의 첫 번째 테마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부자(父子) 캐릭터가 밑바탕되어 있다. 채드는 누구보다 강하고 세상에 두려운 것도 없지만 자기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하는 아들이고, 콜비는 거칠고 권위적이면서도 아들이 자신을 떠나지 못하도록 “어쨌든 난 네 아버지니까”라고 앓는 소리도 할 줄 아는 아버지다. 타이슨을 무리의 리더로 키우고자 하는 그는 계속 반사회적인 행위를 조장함으로써 채드를 사회에서 고립시키는 한편, 타이슨의 모험심과 호기심을 자극해 자신의 편에 서게 만든다. 콜비는 ‘가족’이란 이름이 사랑과 책임감의 명분이 될 수 있는 한계를 시험하려는 듯 끝까지 채드를 몰아세우고, 아들은 결국 선택의 기로에 선다. 마지막 장면에서 또 다른 아들, 타이슨이 채드를 바라보는 눈빛은 존경과 사랑을 듬뿍 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버지의 딜레마가 다음 세대로 대물림될지 모르는 위험성도 내포되어 있다.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또 하나의 이슈는 사회에서 스스로를 격리시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작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감독상에 빛나는 ‘캡틴 판타스틱’(감독 맷 로스)도 유사한 맥락에 있다. ‘캡틴 판타스틱’은 스파르타식 교육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으나 아이들을 학교 대신 자연에서 훈육하는 아버지가 등장한다는 점, 그 기저에 무정부주의적 저항의식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과 맞닿은 데가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차치하고 두 작품은 공히 외부로부터 우리의 진정한 삶을,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시도 내지는 방법론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인가 하는 질문이 던져진다. 극단적인 방식으로 공권력에 저항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부조리한 사회 구조, 기득권층의 부패, 공권력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일 것이다. 이제 사회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그것을 개혁할 수 없기에 한 개인이 정말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예 독자적인 노선을 택해야 한다는 결론이 전제되어 있다. 분노와 체념의 감정 사이에서 가장 뚜렷한 맛은 씁쓸함일 것이다. 두 영화 공히 나름의 절충안으로 이야기를 맺고 있지만 뻗어나갈 가지가 많은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의 후일담이 더 궁금하다. 아담 스미스 감독과 음악을 담당한 케미컬 브라더스의 호흡이 영화의 세련된 스타일을 완성시킨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99분)


덩케르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첫 전쟁 실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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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인 ‘미행’부터 ‘메멘토’(2000), ‘다크 나이트’ 시리즈(2008~2014), ‘인셉션’(2010)과 ‘인터스텔라’(2014)까지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화의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지적 욕구가 강한 국내 관객들은 유사한 규모의 할리우드 대작들보다 놀란의 블록버스터에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우주물리학적 지식에 상상력을 더한 ‘인터스텔라’가 약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천 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것은 그 좋은 예다. 그의 신작, ‘덩케르크’는 전작들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오랫동안 회자될 만한 수작이다. 처음으로 도전한 실화 소재의 영화를 놀란은 늘 그래왔듯 적확한 형식으로 스크린에 구현해냈다.


2차대전 당시 덩케르크 철수작전 그린 블록버스터
서로 다른 시간·공간 절묘하게 맞물려 스릴 극대화
장면마다 전쟁터 한가운데 있는 듯한 몰입감 선사



1940년 5월, 영국·프랑스·벨기에 연합군은 독일의 프랑스 서부전선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패배하고 만다. 영국 육군은 적에게 포위된 덩케르크 해변에서 사상최대 규모의 ‘다이나모’ 철수작전을 계획한다. 영화는 선박을 기다리는 병사들의 일주일, 병사 구출을 위해 징발된 민간 선박의 하루,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전투기의 한 시간을 절묘하게 맞물리며 당시의 긴박감을 전달한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점점 더 빠른 리듬으로 배치하며 절정부에서 스릴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은 놀란의 영화에서 종종 봐왔던 것이지만, 작전의 위험성과 전쟁의 참상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한 건조한 연출은 적어도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와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덩케르크’에서 느끼는 전쟁터의 한가운데 있는 듯한 몰입감은 일반적인 오락 영화가 주는 즐거움과는 달리 목이 바싹 바싹 타오는 경험이다. 정교하게 촬영된 전투기 조종사의 시점샷에는 멀미가 나고, 물이 차오르는 배 안에서 병사들간의 갈등에는 피가 마른다. 놀란은 주연과 조연의 구분이 없음은 물론 이름도 거의 불리지 않는 익명성의 공간을 펼쳐놓고 ‘생존’의 주제를 이토록 살벌하게 다뤄낸다.

그렇게 삭막하고 차가운 전쟁의 풍경 끝에는 따뜻한 단비도 기다리고 있다. 그 때 그 시절의 병사들은 물론이요 그들의 고통에 동참해준 관객들에게 주는 선물처럼, 단 한 장면의 감동이 영화 전체의 온도를 높여준다. 전쟁영화의 전당에 걸릴 또 한 편의 영화가 나왔다. (장르: 액션, 전쟁,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06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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