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갓뚜기’를 대구로

  • 이은경
  • |
  • 입력 2017-07-20   |  발행일 2017-07-20 제31면   |  수정 2017-07-20
[영남타워] ‘갓뚜기’를 대구로

요즘 SNS의 대세는 ‘갓뚜기’다. 신을 뜻하는 ‘갓’(God)과 식품회사 ‘오뚜기’를 합친 말이다. ‘까도 까도 나온다’는 오뚜기의 기업 차원의 숨은 선행들 덕분에 붙여진 애칭이다.

소비자들은 오뚜기를 신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구매운동을 펼치는가 하면 오뚜기 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법을 개발해 포스팅하는 열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시장 점유율은 높아졌고, 주가도 고공행진 중이다.

라면 만드는 회사 정도로만 알고 있던 오뚜기에 대한 나의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오뚜기 브랜드를 보면 반갑고, 구입하고 나면 뿌듯함이 밀려온다. 고작 케첩 하나 사는 단순한 구매 행동에 이처럼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게 될 줄 몰랐다.

나를 포함한 소비자들의 갓뚜기에 대한 이러한 열광은 한편으로는 씁쓸한 현상이다. 일찍이 그런 기업을 가져보지 못했던 우리의 빈곤한 경험 탓이다.

현실에서 보는 기업 CEO들의 모습은 어떠했던가. 땅콩 따위로 비행기를 돌리고, 야구 방망이로 사람을 때려놓고 돈다발을 날리거나, 인간 조련사를 자칭하며 운전기사를 동물 취급한 이들이었다. 문어발식 시장잠식, 협력업체 단가 후려치기, 일감 몰아주기, 탈세를 통한 상속 및 증여 등은 새롭지도 않다. 그래놓고 “기업가에 대한 부당한 불신이 과도하게 일반화되어 있고,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너무 많은 불합리한 규제가 생겨 한국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그렇다면 주위를 둘러보시라. 매일 아침 출근해 저녁 늦게 퇴근하는 이웃 10명 중 2명은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품위 있는 삶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전체의 16.3%, 313만명에 이른다.

사람이 사람 노릇을 하지 못하는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겨우 먹고살 수 있을 뿐인데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집을 사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근근이 유지될 뿐인 생계로 새로운 미래를 계획하고 더 나은 삶을 희망할 수 있을까.

사정이 이런데도 세상은 사람답게 살겠다며 파업에 나선 이들에게 ‘밥하는 동네 아줌마’라며 막말을 퍼붓는다. 동네 아줌마가 밥을 짓는 일이라 한들, 한 시간 공들인 노력이 1만원짜리도 되지 않을까. 세상 누구의 어떤 능력도 이처럼 하찮을 순 없으며, 하찮아서도 안 된다. 시급 1만원의 임금을 줄 수 없는 사장님이라면 차라리 회사를 문닫고 시급 1만원의 노동자가 되는 편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 나을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여성이 결혼을 했다고 회사에서 내쫓고, 하도급업체에는 상납을 강요하고, 힘 없는 비정규직·파견 여직원을 상대로 한 성추행이 만연한 기업이 지역에도 한둘이 아니다. 이들이 자칭타칭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이라 한다. 술집에서 참이슬을 물리고 참소주를 찾고, 주거래은행을 대구은행으로 삼아 뻔질나게 드나들던 지난날들이 후회되는 요즘이다. 또한 ‘스타기업’과 ‘월드클래스 300’에 이름을 올린 한국OSG가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 기업이 ‘고용친화기업’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이참에 ‘기업하기 좋은 도시’ 대구는 ‘노동하기 좋은 도시 대구’로 목표 설정을 다시 해야 한다. 대구시는 매출액과 성장률만 따져 ‘스타기업’이니 ‘월드클래스 300’이니 선정하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지역 내에 확산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를 마련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미 일본 등에선 ‘CSR 인증제도’를 통해 환경, 인권, 노사문화, 지역사회 공헌 등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기업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고, 그런 기업이 많아져야 지역 사회는 발전하고 살기 좋아진다. ‘갓뚜기’는 더 이상 ‘희귀템’이 되어선 안 된다.

이은경 경제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