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가해자를 두둔하는 사회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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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8   |  발행일 2017-07-18 제30면   |  수정 2017-07-18
극단 이기 판치는 세상에서
피해자 인권은 뒤로 밀려
잘못된 행동 벌하는 게 정의
관용도 좋지만 방임은 곤란
단호한 대응은 시대적 요구
[화요진단] 가해자를 두둔하는 사회

“나쁜놈 인권 보호하다가 내 사람 피 쏟는 꼴 못봅니다.”

꽤 오래된 영화 ‘공공의 적 2’에서 강철중 검사는 조직폭력배 소탕작전에 나서기 직전, 형사들을 모아놓고 했던 대사다. 극중 강철중은 정의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캐릭터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마땅하고, 단죄의 대상에는 예외가 없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언젠가부터 가해자의 인권과 사정이 피해자의 상처보다 더 참작되고 심지어 우선시까지 되는 불편한 사회에 살고 있다. 팬 놈이 반성은커녕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를 들이대며 합리화에 나서는 동안 ‘말만 잘하는 부류’들은 ‘악어의 눈물’을 코치하고 장래를 들먹이며 선처를 호소한다. 그 사이 피해자는 좌절을 반복하며 치를 떨지만 대체로 힘 있고 빽 있고 돈 있는 가해자를 당할 재간이 없다.

재벌가 손자와 유명 연예인의 자식 등이 관련되면서 주목을 받았고,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교폭력은 가관이다. 교육청 감사 결과, 학교가 조직적 은폐에 나선 사실이 드러났다. 감추고 빼고 희석시키고 그저 덮으려는 거대한 움직임을 마주한 피해 아이 부모는 얼마나 절망했을까. ‘이게 학교냐’ ‘이게 나라냐’ 싶었을 것이다.

우린 지금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만능키를 갖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그것 때문에 같이 멍들어가고 있다. 그렇다. 살다보면 그럴 수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사소한 실수나 악의가 없을 때, 그리고 상대가 어느 정도 이해하고 화해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 때는 그럴 수 있다치자. 하지만 말이든 행동이든 상대가 아픔을 느끼고 두려움과 분노와 함께 절망에 다다른다면 그건 범죄나 다름없다.

학교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헉’ 소리가 나올 만한 일들이 많다. 일부이겠지만 나이만 청소년이고 교복만 입었을 뿐 말과 행동은 성인들 뺨칠 정도로 무섭고 영악하고 대담하단다. 그런데 학교와 사회는 애써 못 본 척한다. 문제가 생기면 서둘러 봉합하고 가해자를 벌주기보다는 피해자를 설득하기에 급급하다. 과연 팬 놈의 장래가 맞은 아이의 현재와 미래보다 중요한 일일까.

잘못된 길을 걷는 아이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면 용서도 좋고 배려도 필요하고 관용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반복이 될 경우에는 대처가 달라야 한다. 두려움에 떠는 선량한 아이들을 보호하고 피해 확산을 물리적으로 막을 필요가 있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워서도 안되겠지만, 빈대 살리려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우를 범해서는 더욱 안될 일이다.

상당수 선진국은 10대가 저지르는 강력범죄를 매우 중하게 다룬다. 가해자가 죗값에 맞는 벌을 받아야 정의로운 것이며 건전한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미국 텍사스 리버티카운티법원은 11세 소녀를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18세 청소년 등에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당시 검사는 판결에 앞서 “피의자들이 어리다고 해도 순진한 소년이 결코 아니며 ‘개떼’에 불과하다”며 엄벌을 요구했다. 변호사는 가해자 나이와 장래를 강조하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우리나라에서는 고교생 2명에게 징역 3년6월~2년6월이 선고됐다.

팬 놈은 멀쩡하게 학교 다니고, 맞은 아이는 울면서 전학 가거나 학업을 포기하는 서글픈 현실 속에서 이론과 이상만 강조하지는 말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불편해하고 눈물을 흘릴지에 대한 고민이 더 급하다. 부모와 학교·사법기관 등이 관용을 빙자한 방임에 너무 익숙해져 있지 않은지 되돌아볼 시점이 아닌가 싶다.

자기 아이만 소중한 세상으로 접어들다보니 속담도 수정해야 하나 보다. 박완서 선생의 ‘소설어사전’에 나오는 대목이다. “‘맞은 놈은 다리 뻗고 자도,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는 정도의 가해에 대한 경고는 줄창 들어왔다. 그러나 요새 아들 기르는 법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맞고 들어오면 야단 맞고, 때리고 들어오면 신통해한다.”

장준영 (편집국 부국장 겸 사회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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