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의 寶庫-호미반도&영일만을 가다 .5] 이육사와 청포도, 그리고 호미곶 이육사 詩碑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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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8   |  발행일 2017-07-18 제13면   |  수정 2017-08-10
호미곶에, 송도 해변에, 청림동 거리에…알알이 들어와 박힌 ‘陸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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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대보리에 자리한 청포도 시비. 포항지역 정·관계 인사 및 문학인들이 이육사의 문학적 흔적을 기리고 보존하기 위해 1999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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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남구 동해면사무소에 청포도 시비가 자리하고 있다. 시비가 위치한 동해면과 인근 오천읍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포도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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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남구 청림동 청포도문학공원 인근의 주택 벽면에 이육사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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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문학공원 전경. 공원에는 청포도나무를 심어놓았고, 정자와 간이무대가 마련되어 있다.

포항 영일만과 호미곶 일원에는 저항시인 이육사(李陸史, 1904~44)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이육사는 1937년 요양을 위해 한동안 포항에 머물렀고, 지금의 송도해수욕장 부근에서 폐결핵으로 피폐해진 몸을 추슬렀다.

포항은 이육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청포도’의 집필 배경지로도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당시 포항시 남구 일원에는 거대한 포도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포항지역 문인들의 증언과 각종 기록 또한 포항을 이육사의 시 ‘청포도’의 배경으로 지목하고 있다. ‘스토리의 보고 호미반도 & 영일만을 가다’ 5편에서는 포항시 일원에 산재한 이육사의 흔적을 더듬어봤다.

#1. 청포 입은 이를 맞으려는 간절한 기대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 시인의 유명한 시 ‘청포도’ 전문이다.

청포도를 통한 기다림과 설렘, 그리고 다짐의 마음을 노래했다. 풍요로운 계절감 속에서 정갈한 마음으로 맞이하려는 ‘청포 입은 이’는 누구일까? 광복을 상징한다고도 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상징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런 고답적인 해석보다는 한 인간에의 기다림과 그이를 맞기 위한 간절하면서도 소박한 식탁의 마련이 청신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걸 먼저 느끼고 싶다. 청포도를 푸른 바다의 흰 돛단배와 함께 드러냄으로써 그 감각성과 색채성이 두드러진다. 그리하여 그 감각성은 마지막 구절 ‘함뿍 적시는 두 손’에의 기대와, 식탁 위의 ‘은쟁반’과 ‘하이얀 모시수건’으로 절정에 이른다.


옥고·폐결핵으로 피폐해진 이육사
1937년 송도 친척집서 10개월 요양

남구 청림동 일원 포도원과 영일만
2년뒤 발표 ‘청포도’ 배경으로 지목



더러는 ‘청포도’를 두고 ‘화자 자신의 현실 여건과 대비되는 풍성한 결실’로 보기도 한다. 그리하여 2연에서처럼 역사적·사회적 운명을 같이한 공동체의 원형적 연대 의식으로 보기도 한다. ‘주저리주저리’와 ‘알알이’와 같은 첩어적 부사는 그 강조로 보기도 한다. 어쨌든 이육사의 대표작인 ‘광야’나 ‘절정’이 삼엄한 정서를 통한 무거움으로 와닿는다면, 이보다 더 친근한 감각으로 신선하게 다가오는 시가 ‘청포도’다. 특히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라는 표현처럼 기다림의 감각적인 이미지화가 뛰어나다.

#2. 청포도문학공원에 시비까지

이육사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다. 안동 원촌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원록(源祿). 육사라는 이름은 형무소 수인 번호 264번에서 따온 것이다. 1933년 ‘황혼’으로 등단하여 1937년 ‘자오선’ 동인으로 잠시 활약했다. 상징적이면서도 서정성이 풍부한 시풍으로 일제 강점기 민족의 비극과 저항 의지를 노래하였다. 대표작으로 ‘절정’ ‘광야’ ‘꽃’ ‘청포도’ 등이 있으며, 유고 시집으로 ‘육사 시집’(1946)이 있다. 그의 고향에는 이육사문학관이 있다.

그런데 그를 강하게 떠올리는 데가 또 한 군데 있다. 바로 ‘청포도’의 작품 배경이 됐다고 추정되는 포항이다. 포항시 남구 청림동 해병대 앞에는 이육사를 떠올리기 위해 포도나무를 조성한 거리가 있고, 관련 벽화들이 즐비하며, 청포도문학공원도 있다. 공원에는 청포도나무를 심어놓았고, 정자와 간이무대도 마련되어 있다. 포항시 남구 동해면사무소 앞에는 ‘청포도’를 돌에 새긴 시비도 있다. 이 시비에 앞서 영일만의 바다가 바라보이는 호미곶에 청포도 시비가 세워져 있다. 1999년 늦가을에 세운 것이다. 비문(손춘익 씀)에 따르면 포항지역에 널려 있는 이육사의 흔적을 기리기 위해 “포항시가 큰 뜻을 내고, 포항시의회와 박이득 포항문협부지부장 등 여러 분이 힘을 보태고, 이 고장 문인들이 일을 맡아, 영일만 들머리에 세운다”고 명시됐다.

이 지역에 청포도 관련 비와 공원이 세워진 건 이 지역이 일제 강점기 당시 포도원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육사는 당시 폐결핵을 앓던 중이라 공기 좋은 곳에 요양 삼아 머무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1937년경에 포항에 와서 10개월 정도 머물렀다고 한다. 그때 바닷가 언덕인 오천 지역의 현 해병대 자리와 비행장 터 일대에 일본동척회사가 경영하던 포도원이 있었다. 이육사는 이 언덕에 올라 자주 영일만 바다를 바라보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이때의 시상을 바탕으로 ‘청포도’가 쓰였고, 이 작품은 1939년 ‘문장’지에 발표됐다는 것이다.

#3. 포항시 남구 동해면·오천읍 지역이 ‘청포도’의 현장

이육사와 청포도의 인연 사실이 처음으로 알려진 게 1973년경이었다. 수필가 한흑구씨가 쓴 산문에 따르면(시문학, 1973년 12월호) 그 전말이 이러하다. 대구에서 도광의 시인이 포항에 놀러 와서 한흑구·김대정씨 셋이서 영일만 해수욕장에 나갔다. 이 자리에서 도광의 시인이 이육사의 시 ‘청포도’를 낭송하자 김대정씨가 말했다.

“도 시인은 멋있어. 잘 읊었어. 육사가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라고 한 곳이 바로 이 바다야.”

이에 놀라는 문인들을 향해 김대정씨가 말했다. “옛날 육사가 이곳에 친구들이 많아서 3~4개월씩 놀다 갔는데, 저기 저 종합제철 뒤에 있는 고갯마루에 일본동척회사가 경영하던 동양 최대의 포도밭이 있었어. ‘미쓰다(三輪) 포도주’를 만들어서 일본으로 가져갔고, 광복 후에는 ‘마라톤 포도주’라는 상표를 붙여서 팔았지 않았나. 바로 그 포도 농장에 놀러 다니면서 얻은 소재의 시야. 저기 보이는 저 언덕 위에 50만평도 더 되는 농장에서 바다를 내다보면 바다가 앞뜰 모양으로 내려다보여.”

김대정씨는 이육사의 친구였던 것이다. 이후 포항은 이육사의 시 ‘청포도’의 현장으로 못이 박혔다고 한다. 그가 포항에 온 것은 건강 때문이기도 했다. 바닷가는 산소량이 많아 폐결핵에 좋다는 믿음도 작용했다.

그가 머물던 곳을 찾아본다. 그가 숙식을 해결했던 곳은 송도해수욕장 부근이었다. 포스코가 오른쪽으로 보이는 송도해수욕장의 도로 안쪽에 솔숲이 남아있는데, 옛날 사구의 자리다. 도로는 사구의 모래밭을 메워서 낸 것이다. 그 동네에 그의 6촌 친척이 살고 있어서 거기에 의탁한 것이다. 전 언론인이면서 수필가인 박이득씨에 따르면, “이육사는 이곳 송도해수욕장을 거닐며 바다 보기를 좋아했고, 짬짬이 친구들과 어울려 포도원이 있는 언덕으로 산책을 나갔다”고 한다.

지금은 포스코가 들어서면서 바다가 상당 부분 매립되어 옛 자취를 더듬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그 너머 포도원이 있던 언덕은 알아볼 수 있다. 이 지역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 세오녀의 전설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이육사는 이곳에 들러 언덕 위에서 바다 보기를 즐겼을 것이다. 또한 예부터 모래가 좋기로 유명한 송도백사장에서 맑은 바람에 몸을 맡기고 바닷가를 거닐기도 했을 것이다.

이 지역의 한 시인(하재영)은 “그는 주로 베옷, 모시 수건을 애용하는 안동 명문가 출신의 지식인으로 잦은 옥살이와 고문으로 몸이 허약한 상태였다. 그는 동해 송도원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짬짬이 영일만을, 돛단배가 곱게 밀려오는 장면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물론 그가 기다리는 가장 큰 손님은 독립이라는 민족적 소망이었을 것”이라며 “한 편의 시가 탄생되는 과정을 그렇게 환히 들여다볼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짚어보며 포항의 곳곳을 기웃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육사의 시비를 보며 박이득씨가 문득 했던 말이 떠올랐다. “포항은 하여간 이육사와 인연이 깊은 듯해. 저 호미곶 등대의 높이가 26.4m인데, 냉수리의 신라 고비가 국보 264호거든. 기이한 인연 아니니?” 육사 사랑을 이런 식으로도 꿰는구나 하고 여겨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글=이하석<시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 기획 : 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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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폐장된 포항 송도해수욕장 전경. 이육사는 송도해수욕장을 거닐며 바다 보기를 좋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행/정/보= 포항시 남구 송도해수욕장 주변은 이육사가 요양을 위해 머무른 곳이다. 송도해수욕장은 2007년 폐장됐지만 해수욕장의 상징인 송도해수욕장 여신상 주변으로 광장이 조성돼 있으며,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포스코 야경은 일품이다. 포항시 남구 청림동에는 이육사를 기리기 위한 청포도 거리와 청포도 문학공원이 있다. 문학공원 인근은 주택가로 한적한 편이지만, 이육사와 관련된 벽화들이 마을 곳곳에 그려져 있으며, 청포도 나무를 심어 시인을 기리고 있다. 청포도 시비는 두 곳에 있다. 포항시 남구 동해면사무소 주차장과 호미곶면 국립등대박물관 인근 해안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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