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삼만 원의 농담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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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7 07:43  |  수정 2017-09-05 11:20  |  발행일 2017-07-17 제15면
20170717

소년은 가야산 기슭의 농가에서 태어나 1940년대 초에 소학교를 다녔다. 일본도를 차고 다니던 선생에게서 일본어로 수업을 받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농사를 짓고 살았고, 농사 잘 하는 사람이 상일꾼으로 대접을 받았다. 아직은 어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지 못했지만 막연하게 되고 싶은 건 있었다. “나는 그때 트럭 운전 조수가 되고 싶었어.” 초기 자동차들은 자주 엔진이 꺼지기 때문에 조수를 한 명씩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왜 운전수를 꿈꾸지 않고 조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러자 “운전수는 감히 바랄 수도 없었지. 조수만 되어도 출세한 것이라 생각했으니까”하고 웃으신다.

1995년생인 소녀는 거의 하루 종일 휴대폰을 끼고 산다. 대부분의 쇼핑도 인터넷으로 하고, 학교 친구보다 온라인상의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많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좋은 직장 간다는 말을 딱지가 앉도록 들었지만 별 자극이 되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하다는데 당장은 자신이 뭘 잘 하는지도 모르겠고, 마땅히 하고 싶은 일도 없다. 그렇다고 미래가 걱정될 것도 없다. 뭐라도 되겠지 싶다. 소녀는 얼마 전 땅을 샀다. 직접 가서 볼 것도 없었다. 인터넷만 열면 사진이 그득했고, 계약을 위해 굳이 사람을 만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몇 개의 신상정보를 적고 송금을 하였더니 땅 매매 계약서가 날아왔다. 한글판, 영문판, 그리고 자기 소유의 땅 사진이 함께 도착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요즘도 대동강 물을 팔아먹는 김선달이 있구나 싶었다. “달에 있는 천 평이, 그래 얼만데?”하고 묻자 ‘3만원’이란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물었다. “이걸 왜 샀어?” 소녀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시큰둥하게 말한다. “재미있잖아.”

트럭 운전 조수가 되고 싶던 소년은 올해 여든다섯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얼마 전 스마트폰을 구입하였다. 손으로 터치하는 것이 잘 안 되어 엉뚱하게 자식들 전화벨을 울리게도 하지만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듣는 것이 신기하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등장도 얼마나 놀라운가. 이제는 휴대폰 안에 라디오, 텔레비전, 사진, 지도, 녹음기, 컴퓨터가 다 들어있다니 세상의 변해가는 속도를 감히 상상도 못할 지경이다.

나는 농사짓는 부모 밑에서 자라 대학에서 286 컴퓨터를 배운 세대다. 학력고사를 보기 위해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공부를 했고 창의성보다는 책임감과 성실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온 산업화 시대의 사람이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남의 잣대를 신경 쓰며 살았고, 자식 또한 그 잣대로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점점 내 지식과 경험이 한계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1940년대의 트럭은 요즘으로 치면 무엇이 될까? 자가용 비행기? 무인 자동차? 내 딸이 오십이 되었을 때 여행 계획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달이나 화성? 나는 그동안 땅이라면 내 발 밑에 있는 물리적인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사이버와 우주의 공간까지 땅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작은 차이가 어쩌면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3만원의 농담같은 사건이 나를 번쩍 때린 한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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