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문학상 논란에 대한 단상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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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5   |  발행일 2017-07-15 제23면   |  수정 2017-09-05
20170715
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우리 주변에는 문학상이 많다. 전국적인 권위를 가진 경우만 해도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다. 여기에 지역적 특성을 띠는 문학상과 대중문학에 주는 문학상, 신춘문예 등까지 포함하면 보통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아진다. 문학작품에 상을 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학업 성취도를 점수로 매겨 줄을 세우는 학교 시험과 달리 문학작품의 가치는 수치로 표현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작품에 문학상이 수여된다는 사실이 그 작품이 가장 훌륭하다는 증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정이 이러해서, 문학상의 목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이 있기 어렵다.

문학상을 시행하는 목적이나 이유가 뚜렷한 경우도 있다. 특정 경향의 문학작품을 기리고자 하는 문학상이 그렇다. 예를 들어 ‘전태일 문학상’이나 ‘5·18 문학상’은 노동문학이나 진보적인 민족민중문학을, ‘한낙원 문학상’은 과학소설(SF)을 발전시키겠다는 뚜렷하고도 차별적인 목적을 갖는다. 이들과 달리 이상이나 김동인, 서정주, 채만식, 황순원 등 한국 근현대문학사를 수놓은 주요 문인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들은 그 성격이 모호하다. 이들 문학상의 수상작을 보면 ‘한겨레문학상’이나 ‘문학동네 작가상’ 등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서 그저 훌륭한 작품을 꼽는 정도라 할 만하다. 달리 말하자면 오늘 여기의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하는 작가, 작품을 기리는 셈이다. 이렇게 훌륭한 작품들이 계속 발표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문학상 대부분의 주된 기능이라 하겠다.

문학상의 또 다른 기능으로는, 작가들이 처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덜어주는 면도 빼놓을 수 없다. 작품을 창작하는 것만으로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작가는 두 손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그 외의 수많은 작가는 겸업을 하거나 주변의 도움에 기대거나, 그도 아니면 극도의 궁핍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문학상들이 행하는 경제적인 기능 또한 문학상의 존재 의의 중 하나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문학상을 두고 근래 문단의 여론이 뜨거워졌다. 올해 ‘미당 문학상’의 후보로 거론된 한 시인이 서정주의 친일 및 군사독재 미화 사실을 이유로 선정을 거부하면서 이른바 친일문학상 문제가 다시 이슈가 된 것이다. 이것이 다시 문제되었다는 것은, 작년 여름 한국문인협회에서 ‘춘원 문학상’과 ‘육당 문학상’을 제정하기로 했다가 문단과 사회의 비판에 밀려 철회한 바 있고 일찍이 2000년도에 ‘동인 문학상’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던 까닭이다. 현재는 한국작가회의에서 친일문학상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에 있다.

친일 경력이 있는 문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을 개별 문인이 거부하는 것은 소중하고도 아름다운 행위다. 문학에 대한 문학자로서의 헌신, 혹은 정의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헌신을 보여 주는 까닭이다. 하지만 한국작가회의라는 커다란 문학 단체가 친일 경력이 있는 문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을 단체 차원에서 친일문학상으로 규정하며 배척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이것은 또 나름대로 큰 문제를 띠게 된다. 작게는 문학작품의 가치와 작가의 사회적 행적을 일치시킴으로써 문학의 특수성과 자율성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고, 크게는 친일 경력이 있는 문인들의 문학(사)적인 성과까지 거부하는 데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친일 부역이 반민족적인 역사적 과오라는 사실은 분명한 것이고 그러기에 힘든 과정을 거쳐 친일파의 행적을 국가 차원에서 기록으로 남겼지만, 이러한 사실이 그들이 친일 전후에 했던 공적을 지우는 것까지는 아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주요 문인들의 친일 경력을 잊지 않고 반성의 계기로 삼는 일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그들의 문학사적인 위상 자체를 지우거나 정치·역사적인 판단으로 문학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위축시키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기에 더해 문학상의 주된 기능까지 함께 고려하면, 친일 경력이 있는 문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을 친일문학상이라고 좁게 판단해서 없애고자 할 일은 아니다.


조진범 jj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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