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가짜와 껍데기는 가라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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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0 07:49  |  수정 2017-09-05 11:03  |  발행일 2017-07-10 제18면
20170710

‘경남 함안여고(咸安女高)/ 백양(白楊)나무 교정에는/ 뼈모양의/ 하얀 갑골(甲骨)길이 보인다./ 함안 조(趙)씨, 순흥 안(安)씨, 재령 이(李)씨/ 다투어 살고 있는/ 갑골리(甲骨里)에는/ 바람 많은 백양(白楊)나무 생애로/ 노총각 한선생(韓先生)이 살아 왔다./ 산까마귀 울음 골짝에 잦아/ 외길진/ 뙈기밭 능선을 이웃하면/ 함안 조(趙)씨, 순흥 안(安)씨 사당(祠堂)들이/ 기왓골에 창연(蒼然)하다./ 명절날 둑길 위로/ 분홍 치맛자락이/ 소수레 바퀴의/ 햇살에 실려가면/ 닷새 만에 서는/ 우시장(牛市場) 읍내에는/ 건장한 중년(中年)들로 파시(波市)가 선다./ 어쩌다가 높은 둑길 위로/ 청람(靑藍)빛 가을이 펼쳐지면/ 청동색 강이 오히려 외롭다./ 우마차(牛馬車) 바퀴에/ 옛날이 실려가면/ 함안여고(咸安女高)/ 백양(白楊)나무 교정(校庭)에서/ 사십대(四十代) 노총각 한선생(韓先生)은/ 유년(幼年)의 여선생(女先生)을 생각이라도 하는 걸까./ 벼 익은 하늘의/ 먼 황소 울음에 젖다가도/ 삼천포 앞바다의/ 편(片) 구름을 바라본다.’(-도광의, ‘갑골길’)

‘우슬(牛膝)을 안고 갔던 자리에/ 가을비 내렸으나 흙이 젖지 않았다/ 반짝이는 은회색 털 나부끼며/ 우슬과 오르던 소방산이/ 혼자 오르는 소방산이 되었다/ 삶이 죽음으로 이은 목숨일지라도/ 잠자리 날개만큼이나 가벼워졌다’(-도광의, ‘우슬에게’)

‘배 고파/ 따 먹었을까./ 얼굴이 하얘질라고/ 따 먹었을까.// 소녀 적 숙(淑)이는/ 손톱밑이 반달인데// 아 빠른 발걸음의/ 처녀시절이여.// 한나절 햇빛 속에서나/ 저무는 들녘,/ 고독한 모습으로/ 당신을 만날 때는/ 꽃보다 잎이 많은/ 당신의 모습에서/ 잎보다 꽃이 많은/ 당신의 향기에서/ 우물 안 가득 고인/ 당신의 슬픔과 만납니다.// 배 고파/ 따 먹었을까./ 얼굴이 희질라고/ 따 먹었을까.// 생각이 이슬 같은 날에는/ 당신과의 해후(邂逅)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도광의, ‘아카시아’)

‘울면서/ 봄이 가는 것을 본다/ 축복은 신의 몫이라지만/ 불행은 또 누구의 몫으로 남아/ 긴 갈증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피곤한 발자국을 남기고 가는가/ 갑년을 바라보는 봄의 한때/ 처연히 지는 꽃을 보면서/ 상장처럼 울고 있는/ 검은 봄을 본다’(-도광의, ‘검은 봄’)

가끔 글과 사람이 동격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 위선의 시대와 글판에 참으로 드물지만 낭만과 연민 그리고 수줍음과 결기가 얼굴과 글에 함께 나타나는 경우이지요. 말갛게 씻은 맨얼굴에 그 모든 표정을 담고 휘적휘적 길을 걸어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횡단하듯,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겐 결코 내세우지 않는 자존심과 자존감이 한 인격에 다 머물 듯, 글과 사람이 한 궤에 있을 때, 그야말로 천연기념물, 아니 멸종된 동식물의 경우들처럼 희소하게 가짜와 껍데기는 글과 사람 어디에도 자리할 곳이 없어진답니다.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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