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산증인’ 한스 모드로 前동독 총리 “한국형 지방분권으로 통일 준비해야”

  • 노진실
  • |
  • 입력 2017-07-10  |  수정 2017-07-10 08:29  |  발행일 2017-07-10 제1면
영남일보 특별인터뷰
‘독일 통일 산증인’ 한스 모드로 前동독 총리 “한국형 지방분권으로 통일 준비해야”
지난달 28일 오후 독일 베를린에서 영남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가진 한스 모드로 전 동독 총리가 독일 통일과 한국의 통일 준비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독일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에서 새 정부의 한반도 평화구상과 통일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베를린 구상’을 발표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연설 앞 부분에 한스 모드로 동독 마지막 총리의 이름을 거론했다. 모드로 전 총리는 이날 가장 앞자리에서 문 대통령의 연설을 경청했다. 그는 독일 통일의 산증인이다. 동독의 전 총리로서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드레스덴 정상회담에서 헬무트 콜과 만났던 그는 분단된 독일과 통일 이후 독일을 관통해 온 정치인이다.

영남일보는 문 대통령의 독일 방문 일주일 전 베를린 현지에서 한스 모드로 전 총리와의 단독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각) 취재진은 베를린 로자 룩셈부르크 광장 옆 그의 사무실에서 모드로 전 총리를 만나 ‘독일 통일과 연방제 역사, 포스트(Post) 통일’을 주제로 2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통일과 지방분권에 바탕한 연방제는 현재 한국사회의 핵심 이슈다.

통일 이후 갈등·양극화 줄이려면
지방자치 등 합리적 시스템 필요

남북 공동가치 다시 찾는 게 우선
정치적 접근 내세우면 갈등 확산
문화적 접촉부터 시작해야 효과


그에게 한국사회가 극심한 지역 격차 극복과 통일시대 대비의 일환으로 ‘연방제에 준하는 수준의 지방분권’을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한 뒤 이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모드로 전 총리는 “그런 조건과 이유라면 한국인들의 선택(지방분권)은 충분한 정당성을 갖는다. 헌법과 연방제 원칙에 따라 지방정부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 지방분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거기엔 민주주의적 요소도 정말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나아가 “물론 완벽한 제도는 없다. 나는 한국이 독일 등 연방제 국가들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참고해 더 나은 한국 스타일의 연방제 혹은 지방자치 시스템을 찾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통일 이슈에 대해서 그는 깊은 통찰을 내보였다. 통일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절대의 원칙으로 일반화하지 않았다. 통일이 그만큼 단순치 않다는 의미다. 모드로 전 총리는 “독일이 통일을 하면서 국가적으로는 통합이 됐다고 볼 수 있지만, 사회·정치·경제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동·서독 간 차이가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동독과 서독의 임금차는 최대 20%까지 나고 있으며, 연금도 10%가량 동독이 적다”고 말했다. 완전한 통일은 여전히 미완의 경지라는 지적이다.

모드로 전 총리는 한국이 ‘포스트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 이후 균형적인 지역 발전, 각 지역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잘 알려져 있듯 연방제 역사를 지닌 나라다. 독일 통일 역시 이러한 연방제 경험과 지방분권 시스템 토대 위에 이뤄졌다. 독일 기본법 23조에 따라 동독이 독일연방에 가입하는 방식이었다. 한국 통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통일한국 위해 유엔 등 국제적 플랫폼 활용”

지방분권을 토대로 한 연방제적 자치구조가 통일한국을 촉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한국 내 지방분권 운동은 혁신적 의미로 다가온다. 그 선구적 방식을 시현해 보인 독일통일 방식은 통일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극단적인 지역 간 격차와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으로 평가 받아 왔다.  하지만 이런 토대 위에서 통일을 한 독일도 26년이 지난 지금까지 크고 작은 후유증을 겪고 있다. 이는 가뜩이나 양극화와 지역 간 격차 및 갈등이 극심한 우리나라의 경우, 지방분권 등 합리적인 시스템 준비없이 통일이 된다면 독일보다 훨씬 더한 사회 갈등과 혼란을 겪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평화통일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모드로 전 총리는 “남북이 여러 부문에서 공동의 가치와 문화를 재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베를린 같은 제3지대에서 공동 미술전시회를 여는 등 문화적 공감대와 접점을 찾는 것이다. 갈등의 요소가 많은 정치적 접근부터 할 것이 아니라 문화적 접촉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 최소한이라도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장(場)부터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스포츠 단일팀 등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국제적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모드로 전 총리는 “남북 관계에 유엔이나 올림픽 등 다양한 국제적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다. 통일은 단순히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에 엄청난 기여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각 국가의 이해관계가 얽힌 국제정치에 있어선 ‘영원한 우정이나 친구는 없다’는 사실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이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선 이념 논쟁이나 진영 논리를 뛰어넘는 다각적이고 냉철한 분석과 접근이 필요하다. 모드로 전 총리의 생생한 통일 경험담과 조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통일시대 준비는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글·사진= 독일 베를린에서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한스 모드로(Hans Modrow)는 누구

1928년생.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임명된 동독 정권의 마지막 총리. 당시 수명이 다해가는 동독에서 여행과 언론 자유 보장 등 정책 변화와 개혁을 추진했다. 1961년 지방의회 의원을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했으며, 통일 이후에도 5년간 유럽의회 의원을 지냈다. 최근 별세한 헬무트 콜 전 총리가 독일 통일에 있어 결정적 장면으로 꼽은 드레스덴 정상회담에 동독 정상으로 참여해 콜 총리와 대면했다.

기자 이미지

노진실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