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그 후·베를린 신드롬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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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07   |  발행일 2017-07-07 제42면   |  수정 2017-09-05
하나 그리고 둘

그 후
불륜, 그 후…


20170707

영화감독이자 교수로서 홍상수는 줄곧 자기반영적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의 작품들에는 교수와 영화감독, 대학생과 영화 관계자들이 자주 등장해왔고 대학가나 영화제, 영화상영회가 종종 배경이 되어왔다. 실제 경험과 상상력이 어떤 비율로 섞여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생활과 밀착되어 있는 소재 및 사건으로부터 영화가 시작되었음은 분명하다. 배우 김민희와 연인 관계임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까지 홍상수 영화에서 이 점은 거의 화두가 되지 못했다. 문제는 ‘그 후’다.

지난 3월 개봉한 ‘밤의 해변에서 혼자’(이하 ‘밤해변’)는 여배우가 유부남 감독과의 불륜 스캔들로 인해 방황하는 내용을 다룬 작품으로 약 5만7천명의 관객을 동원한 바 있다. 작년 11월에 개봉한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약 1만8천명)의 3배 이상 되는 수치며, 다른 홍상수의 영화들과는 유사한 수치다. 이는 네티즌들의 싸늘한 시선과는 다른 결과로, 실제 홍상수 영화의 관객층은 이 영화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칸영화제 경쟁부문서 첫선 뵌 홍상수 감독 신작
‘오! 수정’ ‘북촌방향’에 이은 세 번째 흑백영화
한겨울 출판사 배경으로 네 남녀의 긴 하루 담아



그러나 ‘밤해변’은 실망스러웠다. 여배우와 감독의 심경을 직접적으로 토로한 대사들은 콘텍스트를 배제하고 작품에 집중해보려는 노력을 무화시킨다. 비평의 기능이나 방향성 문제를 떠나 사생활과 분리되지 않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영화를 왜 작품 자체만 보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홍상수의 필모그래피 중 다른 결을 가진 작품이라는 의의가 있겠으나 변명 같은 대사들이 지나쳐 불편하다.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처음 선보인 ‘그 후’에도 직원과 사랑에 빠진 유부남이 등장한다. 그는 출판사 사장이며 글을 쓰는 사람이고, 그의 연애는 과거와 현재를 거쳐 이별로 끝이 난다. 김민희는 불륜의 당사자가 아니라 그의 출판사에 출근했다가 우연히 그의 연애사에 휘말리게 되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 영화는 ‘밤해변’이나 칸영화제 스페셜 스크리닝에서 상영되었던 ‘클레어의 카메라’와 비교했을 때 놀라울 정도로 성숙한 작품이다. 여기에도 감독의 이야기는 녹아 있다. 그러나 훨씬 ‘예술적’이다.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연애담을 수사 없이 담백하고 세련되게 들려준다. 이제 감독과 여배우의 스캔들 같은 건 하찮게 느껴진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그 후’는 ‘오! 수정’ ‘북촌방향’에 이은 홍상수의 세 번째 흑백 영화다. 고혹한 화면은 쌀쌀한 겨울날 회상하는 사랑의 추억과 이별의 아픔을 담기에 적절한 선택이다. 이야기는 봉완(권해효)의 출판사에 아름(김민희)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근한 긴 하루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여기에 불쑥불쑥 끼어드는 (것처럼 연출된) 봉완과 창숙(김새벽)의 과거 시제가 어설플 수밖에 없는 기억의 속성을 반영하며 서사의 퍼즐을 완성시킨다. 과거와 현재의 톤을 일관되게 가져가는 건조한 플래시백이 감독의 스타일을 잘 드러낸다. 찌질한 인물, 민망한 상황 구현에 있어 홍상수 영화의 묘미가 드러나는 대목은 두 번의 스리 샷인데, 중반부에서 봉완과 아름, 봉완의 아내가 대면하는 장면과 후반부에서 봉완과 창숙, 아름이 대면하는 장면이다. 공히 봉완과 창숙의 관계가 제삼자에게 생채기를 남기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되며 실소를 유발한다. 훌륭하리만치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운 연애담이다.

여기에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더하는 것은 삼각관계의 밖에 있는 아름이다. 그녀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떠들어대는 사람들 속에서 품위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인물이며 택시 안에서도 책을 읽고 창밖의 눈을 보며 기도를 하는, 홍상수 영화에서 드물게 순수하고 우아한 캐릭터다. 이것은 홍상수 작가론에서 하나의 풍향계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사생활이 영화에 미친 변화의 바람이란 이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리라. (장르: 드라마,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러닝타임: 91분)


베를린 신드롬
그녀, 갇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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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미저리’(감독 로브 라이너)가 떠오르고, ‘룸’(감독 레니 에이브러햄슨)의 한 장면이 스쳐간다. 사람을 장기간 감금해 놓고 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비정상적 행위는, 그러나 영화 혹은 상상 속에 갇혀 있는 범죄가 아니라 뉴스에서도 간혹 보도될 만큼 우리 주변에 잠재되어 있는 공포다. 호주 출신 ‘케이트 쇼트랜드’ 감독의 ‘베를린 신드롬’은 다시 한 번 ‘감금’이라는 소재를 스크린에 투영시킨다. 음산하면서도 예리한 이미지들에 금방이라도 손을 베일 것 같다.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브리즈번에서 베를린으로 여행 온 사진작가 ‘클레어’(테레사 팔머)는 고등학교 교사인 ‘앤디’(막스 리멜트)에게 걷잡을 수 없이 끌린다.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간 클레어는 다음 날 자신이 그곳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무도 살지 않는 건물, 견고한 강화유리, 잠겨 있는 문들 사이에서 그녀는 점점 탈출할 자신을 잃는다. 정상적인 직장 생활 이면에 여행자들을 표적 삼아 기행을 저질러왔던 앤디는 클레어를 사진을 찍는 주체에서 대상으로 바꿔놓는다. 다른 희생자들처럼 클레어도 앤디의 사진첩에 갇힌 채 결국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운명에 처한다.


濠 케이트 쇼트랜드 감독이 메가폰 잡은 스릴러물
시간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女주인공 심리에 집중
불안한 사운드·감각적 카메라 워크…공포 극대화



앤디가 어떤 과거를 갖고 있든, 어떤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든 그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할 방법은 없다. 그는 약자를 상대로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며 자위하는 소시오패스일 뿐이다. 영화가 주력해서 묘사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클레어의 상태다. 카메라는 종종 가늘게 흔들리는 눈동자와 입가, 손끝을 포착하며 자유를 향한 끈을 놓지 않으려는, 미쳐버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그녀의 절박한 심리를 설명한다. 인간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두려움을 밀폐된 공간과 불안한 사운드, 감각적인 카메라 워크를 통해 극대화시킨 작품이다. (장르: 오스트레일리아,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러닝타임: 116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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