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산 남매지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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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07   |  발행일 2017-07-07 제36면   |  수정 2017-07-07
57년 前 큰 가뭄 땐 못 바닥서 기우제 겸한 場 열려
조선시대 가난한 남매의 슬픈 전설 전해
임산부 소담길 등 한 바퀴 2.4㎞ 산책로
수상광장과 연꽃·수생식물원도 볼거리
못 남서쪽의 꿀밤산 우듬지엔 경산향교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산 남매지
조선시대 가난한 남매의 전설을 품고 있는 경산 남매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산 남매지
엄마와 아기를 위한 소담길. 남매지 산책로 2.4㎞ 중 500m 가량이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산 남매지
수상광장으로 나아가는 길. 살짝 울렁거린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산 남매지
남매지의 느린 우체통. 큰 것은 1년 뒤, 작은 것은 6개월 뒤에 배달된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산 남매지
강학공간인 명륜당과 제향공간인 대성전 사이 협문이 있던 자리.

가슴이 뻥 뚫린다. 한 번도 폭발한 적 없는 분화구처럼 평평한 얼굴이다. 딱 벌리고도 한 번도 물어뜯은 적 없는 입처럼 온순한 표정이다. 남매지. 그 이름은 한번 들으면 그대로 가슴에 새겨져서 결코 잊히지 않고 언제나 다정하게 기억될 것 같다.

◆ 남매의 전설을 품은 남매지

쏴아, 착착착, 쏴. 바닥분수가 뜨거운 대기를 씻어내고 있다. 덥혀진 정수리도 시원해진다. 이제 막 걸음의 신세계에 들어선 검은 눈의 어린아이와 푸른 눈의 어린아이가 분수 가를 아장댄다. 물줄기가 현란한 몸짓으로 하늘을 휘저을 때마다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종종거린다. 그러면 투명한 물방울들과 아이들은 서로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비슷한 것이 된다. 한 해만 더 지나면 물줄기 속으로 겁 없이 뛰어 들어가 한없이 까르르거릴 테지.

매점과 수중분수 조작실을 지나 못 가까이로 간다. 시간이 멈춘 듯한 수면이다. 남매지는 1947년에 축조되었다고 하는데, 전설에 따르면 언젠가 아주 옛날 가뭄이 심했던 해에 농작물들이 하나둘 쓰러지는 것을 본 농사꾼 남매가 축조했다고도 한다. 남매지에는 좀 더 유명한 전설이 있는데 조선시대 경산에 살던 남매의 이야기다.

남매는 부모를 잃고 아버지가 진 빚을 갚기 위해 부잣집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빚을 갚지 못하면, 누이는 부자의 첩이 되어야 했다. 동생은 한양에 가 벼슬을 얻어 돈을 갚을 테니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고 부자는 말미를 주겠노라 했다. 약속한 날이 되어도 동생이 돌아오지 않자 누이는 못에 몸을 던지고 만다. 오후 늦게 도착한 동생은 누이의 소식을 듣고 자신도 못으로 걸어 들어갔다고 전한다. 지금의 남매지 이름은 이 전설에서 왔다. 전설에 무게를 싣자면 1947년 축조는 정비 내지 수정 확장 정도가 아니었을까.

산책로 옆에 느린 우체통이 있다. 큰 것은 1년 뒤, 작은 것은 6개월 뒤 배달된단다. 무료 엽서와 펜, 그리고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는 받침대도 구비되어 있다. 엽서에는 남매지의 야간 분수 쇼 사진이 프린트되어 있다. 여름 밤 남매지에는 사람이 가득하다고 한다. 여름 낮의 남매지에는 산책하는 이 드물고 몇몇 사람만이 쉼터의 그늘 속에 있다.

◆ 남매공원 산책로 2.4㎞

언제든 되돌아 설 요량으로 걸음을 시작한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군데군데 저수지 산책로로 통하는 길들이 있어 어디서 시작하든 상관없다. 남매지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는 총 2.4㎞다. 보행자 길과 자전거길이 구분되어 있지만 나란히 걷고 달린다. 곧 소담길이 시작된다. 엄마와 아기를 위한 길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임산부와 태아의 건강을 증진하고 출산 친화적 사회 분위기 조성을 위해 2014년 경산시 보건소가 조성했다 한다. 소담길은 500m.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소담길은 남매지의 북쪽 둑길이다. 남쪽을 조망하는 전망대도 있다. 이 너른 수면 위에 연꽃이 하나 혹은 여럿이 떠 있다. 연꽃은 결코 표류하는 일 없이 언제나 제자리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저씨 두 분이 둑길의 울타리를 수리 중이고, 둑 사면에서는 풀베기가 한창이다. 그 아래는 누군가의 텃밭들이다. 그 너머는 역세권 도시개발 구역으로 나대지와 공사장이 동시에 펼쳐져 있다. 소담길 끝에서 남매지의 동쪽 길로 접어든다.

못 가까이 집들이 늘어서 있다. 창들은 남매지를 향해 가깝게 열려 있다. 문 앞에서 산책로의 가장자리까지 텃밭이다. 보라색과 흰색 꽃이 핀 도라지 밭도 있고, 통통하게 살찐 옥수수들도 있다. 먹을 수 있는 정원은 훌륭하다. 남매지의 랜드마크처럼 솟아있는 영남대 기숙사 아래를 지난다. 기숙사 소나무 숲 사이로부터 좁은 침목계단이 사다리처럼 내려와 있다. 작은 대추나무 밭을 지나고, 새소리를 품은 총림을 지나고, 작은 무궁화 꽃밭을 지나 경산고등학교의 높은 축담 근처에 이른다. 경산고등학교 자리가 옛날 남매지의 일부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럴듯한 얘기다.

버드나무 가지가 햇빛 속에 날아다니는 먼지처럼 하늘거린다. 어린 수양버들이 많다. 왕버들도 아직은 어린 티가 나는 왕이다. 버드나무류는 공원을 조성하면서 마음먹고 심은 것으로 보인다. 10년쯤 뒤엔 굉장하겠다. 나무들 사이로 수상광장으로 나아가는 데크길이 열려 있다. 내려서자 울렁, 살짝 울렁거린다. 수면이 데크길과 아주 가깝다. 어제 내린 단비의 덕도 있을까. 1960년 가을은 극심한 가뭄으로 전국이 타들어갔다고 한다. 당시 경산에 있던 300개 넘는 못도 5할 이상 고갈되었고 남매지도 바닥을 보였다고 전한다. 이곳에서 기우제가 거행되었고, ‘못장을 보면 장꾼이 헤어지기 전에 비가 온다’는 옛 속담을 따라 못 바닥에 장꾼들이 장을 폈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고.

수상광장은 해변 같다. 멀리 타워크레인이 보이지 않는다면 한껏 해변 분위기에 젖을 수도 있겠다. 광장은 연꽃 식물원으로 이어지고 다시 수생 식물원으로 나아간다. 커다랗고 동그란 수반마다 꽃들이 가득하다. 어여쁘구나, 물의 정원. 어느새 언제든 돌아서려던 시작점에 도착해 있다.

◆ 꿀밤산의 경산향교

남매지에서 남서쪽을 바라보면 건물들 위로 봉긋하게 솟은 숲이 보인다. 그 작은 숲의 이름은 꿀밤산, 그 우듬지에 경산향교가 자리한다. 1390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니 굉장히 오래되었다. 임진왜란 때 한 번 소실되었고 그 이전과 이후 내내 중수와 보수의 역사가 길다. 원래는 경산시 신교동에 있던 것을 1997년에 이곳(중방동 760)으로 이전했다 한다. 예정에도 없이 들러 본 경산향교는 대단히 근사한 공간이었다. 남매지에서 향교는 보이지 않지만 이곳 명륜당 마당에 서면 제법 높은 민둥산 꼭대기에 받들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림으로 배웠던 여백의 미를 공감각 할 수 있는 곳, 그래서 다시 머물고 싶은 곳이다. 오후 ‘명심보감’ 수업을 듣기 위해 오신 어르신이 나무 그늘에 앉으신다. 멋있게 늙은 가방에서 부채를 꺼내신다. 아, 멋있어라.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남매지는 경산시청 동편에 자리한다. 대구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임당역에서 내리면 도보 10분 이내의 거리에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바닥분수는 9월30일까지 운영한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5회, 회당 40분간 가동되며 매주 금요일은 가동하지 않는다. 방학철인 7~8월은 물놀이장도 함께 운영된다. 해가 저물면 분수 쇼가 열린다. 9월까지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볼 수 있다. 월별 시간은 차이가 있으며 7월은 오후 8시30분, 밤 9시10분 2차례다. 경산 향교는 남매지 바로 남쪽 경산실내체육관 맞은편으로 올라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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