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馬公처럼 피서를

  • 이창호
  • |
  • 입력 2017-07-04   |  발행일 2017-07-04 제31면   |  수정 2017-09-05
20170704
이양호 한국마사회장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매년 여름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지난주 경기도 안성에 감자 수확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오랜 가뭄으로 하늘도 땅도 건조했지만, 일하면서 흘린 땀방울만큼 뿌듯한 보람으로 마음은 촉촉해진 느낌이었다.

본격적인 피서철을 맞아 빙수부터 에어컨까지 다양한 피서법을 누릴 수 있는 인간도 덥다고 아우성인데, 말 못하는 동물은 얼마나 더울까.

견공들은 혀를 내밀어서 체온을 내리곤 한다. 운동을 주업으로 하는 경주마들은 여름이면 하얀 염분 띠가 가슴에 생길 정도로 땀을 흘린다. 하루에 배출하는 땀의 양이 무려 20~30ℓ라, 경주 후에는 수액주사를 맞는 경우도 있다.

한낮에는 뜨거운 주로 대신 폐활량을 증대시키기 위해 말전용 수영장에서 훈련을 한다. 요즘처럼 더운 날에는 하루 평균 100마리가 이용할 정도로 말수영장은 마산마해(馬山馬海)다.

인간이 물로 더위를 이겨내듯, 말에게도 물은 최고의 피서법이다. 조선 후기 문인화가 윤두서의 ‘세마도’(1704) 속에는 녹음이 짙은 계곡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세 명의 관리와 세 마리 말이 등장한다. 나뭇가지를 뒤덮은 무성한 잎들과 부채질하는 모습이 한여름의 정취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그림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바지를 걷어 올린 채 얕은 물속에 서 있는 한 사람과 그에게 이끌려 물속에 다리를 담그고 있는 한 마리의 말이다. 그는 왼손에 말고삐를 잡았고, 오른손으로는 커다란 솔을 사용해 말의 가슴을 씻어주고 있다. 우리는 굳이 이 둘의 표정을 보지 않아도 얼마나 시원한지 짐작할 수 있다. 한여름에도 계곡물은 얼음처럼 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창호 leech@yeongnam.com

말들의 주거지인 마사도 기본적으로 통풍이 잘 되는 구조다. 여기서 여름 한낮의 훈련을 피하고, 가끔 찾아오는 낮잠을 즐기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바닥은 눅눅하지 않도록 보송보송한 우드펠릿(wood pellet)이 깔려있다. 목마르지 않도록 물통은 언제나 채워져 있고, 천장에는 대형 선풍기가 달려 있어 쉴새 없이 말들의 더위를 쫓는다. 달고 시원한 수박을 간식으로 주기도 한다. 잘 먹고, 잘 쉬면서 말들은 긴 여름을 이겨내는 것이다.

말의 편안함을 위해 고생하는 사람들도 더운 여름을 보낸다. 소규모 목장주들은 말의 건강을 살피느라 단잠을 이루지 못한 채 오롯이 더위를 견뎌내고 있다. 목장주들의 어려움을 나누기 위해 마사회는 수의사·장제사와 같은 전문가들을 목장으로 보내 말들의 건강을 세심하게 살피는 재능기부 봉사를 하곤 한다.

40℃를 육박하는 무더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점점 더 길고 무더워지는 여름은 지혜로운 피서법을 찾게 만든다. 단순히 에어컨을 작동하는 것은 지구의 길고 무더운 여름을 고착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그냥 충분히 쉬는 것인 것 같다. 특별함은 없으나 무리하지 않고 편안하게 여름을 보내는 말들의 피서를 소개했듯,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를 여행하면 낮잠을 자는 시에스타(Siesta)가 남은 하루를 활기차게 보낼 수 있게 원기를 회복시켜 준다. 이번 여름엔 우리도 멀리 갈 것이 아니라 국내의 아름다운 산과 들, 고즈넉한 농촌마을을 찾아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은 어떨까?

말들이 평소보다 많이 쉬며 더위를 이겨내듯이 우리 모두도 이번 여름휴가 기간 중에는 몸과 머리를 충분히 쉬며 건강과 감성, 창의적인 사고를 충전했으면 한다. 무더운 여름 휴식과 재충전으로 고단한 삶과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어 더 풍요로운 천고마비의 계절을 맞이하면 좋겠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