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4년 전이다. 2003년 LG 아트센터에서 로베르 르파주의 ‘달의 저편’이라는 연극을 본 적이 있다. 지식의 축적으로 인간들은 우주와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자만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간이 달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인간들은 처음으로 외부에서 자신과 자신들의 지구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여기서 두 형제 필립과 앙드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과학기술의 발전과 수반되는 발견들이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이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켜나가는지에 관한 연극이었다.
우리는 과학과 인문학을 구별하기 좋아한다. 그리고 정치와 경제, 기업과 사회, 민과 관도 선을 긋고 구분한다. 이 세계는 칼질하듯이 나눠지는 세상이 아님에도 개인과 집행자들의 심적 안정과 편의성을 위해 현실과 동떨어진 이분법을 시전한다.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작용을 펼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융복합, 통섭을 언급하거나 잡스가 이야기하는 리버럴 아츠(liberal arts)와 휴머니티스(humanities)에 열광한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융복합, 통섭, 인문학은 또다른 분야가 되어버렸다.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깨우침은 사라지고, 빠른 추격자(fast follwer)만 남았다. 오로지 키워드만 남고 내용은 어디에도 없는 기존의 흐름이 재현되고 있을 뿐이다.
4차 산업혁명도 비슷하다. AI(인공지능), 드론, IoT(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ICT를 기반으로 한 산업이 생명공학·물리학 등 다른 분야와 융복합된다는 정의를 갖고 있지만, 어디에도 알맹이를 찾아볼 수가 없다.
ICT의 출현과 엄청난 속도의 확산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14년 전 연극 ‘달의 저편’을 봤을 때의 충격의 깊이만큼 아득하다.
이제는 잊고 살아왔던 지점을 다시 되새길 때가 왔다. AI 알파고에 어렵사리 1승을 거뒀던 이세돌의 난전과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커제의 눈물을 보면서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기계가 우리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나의 일을 빼앗고, 기계에 지배당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다. SF영화에서나 보던 일들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실제로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구현된 아디다스의 스피드 팩토리는 인건비 때문에 해외로 나가있던 공장을 독일과 미국 내로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 로봇과 3D 프린팅 기술이 총동원되어 사람이 별로 필요없어졌다.
기술은 이렇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단순히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사고체계, 인간관계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삶과 문화, 역사를 다른 물줄기로 틀고 있다.
ICT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만은 아니다. 엔젤스윙은 쪽방촌에 드론을 띄워 고해상도의 사진으로 정밀지도를 만든다. 소방차가 다닐 수 있는 길과 없는 길, 비상소화장치함과 CCTV 자리, 연탄이나 도시락을 전해주기 좋은 길 등 주민들의 삶과 안전을 위한 정보를 기술력으로 모아낸다. 마르네틱스는 시각장애인들이 더 많은 시각그램책을 3D 프린터로 만들어내고 있다. 라임프렌즈는 IT 개발자, 변호사, 통번역가가 모여서 외국인에게 꼭 필요한 법률을 외국어로 번역해 제공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이를 사람을 향하는 기술, 휴먼테크놀로지라고 부르며, 영미권에서는 ‘ICT of Social Impact’에 대한 연구가 자리를 잡았다. 돈만 벌기 위한 기업활동은 한계가 있음을 오히려 기업들이 먼저 깨닫고 있다.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고 사회변화를 위해 노력할 때 오히려 돈을 더 잘 벌게 되고 기업은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글로벌 기업들은 알고 있다.
ICT는 상상하는 거의 모든 것을 이뤄내도록 해주고 있다. “네가 아이디어만 있다면 코딩 따위 안 해도 좋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특별한 기술없이 콘텐츠나 제품을 구현할 수 있는 솔루션이 세상에 출시되어 있다. 문제는 상상력이고 방향이다. 기술이 사람을 향할 때 진정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을 수 있다. 대구의 경쟁력은 다시 사람을 생각할 때 나올 것이다. 전충훈 (공공크리에이터)
이은경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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