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의 寶庫-호미반도&영일만을 가다 .4] 구룡소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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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04   |  발행일 2017-07-04 제13면   |  수정 2017-07-04
승천하던 구룡의 용틀임…기암절벽 해안에 아홉 굴이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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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대동배리 구룡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구룡소 전경. 아홉 마리의 용이 살다 승천한 곳이라 하여 구룡소(九龍沼)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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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소의 한 웅덩이에 바닷물이 고여있다. 그 모습이 마치 한반도 형상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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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소 주변의 바위는 바람과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다.

동해를 접하고 있는 포항에서는 용과 관련한 전설과 장소가 유난히 많다. 거친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뱃사람들이 용을 신성시했고, 자연이 조각한 동해안의 기암괴석들이 상상력을 자극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대동배리에 위치한 구룡소는 용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대표적 장소다.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 아래는 곳곳이 둥글게 패어 있고, 바위틈 구멍으로는 파도의 힘에 못 이긴 바닷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스토리의 寶庫(보고) 포항 호미반도&영일만을 가다’ 3편에서는,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구룡소를 둘러보고, 영일만과 호미반도 일원에서 전해 내려오는 용 전설을 되짚어봤다.

호미곶 대동배리 둘레 100여m 집괴암
크고 작은 구멍이 군데군데 파여 있어
바위틈 거친 파도소리 용 괴성 듣는 듯

용, 물·풍어 관장하는 어촌마을 수호신
옛날부터 극진히 모시고 신성하게 여겨
영일만 해안 곳곳 용 관련 지명도 많아


#1. 아홉 용이 승천한 자리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대동배리. 영일만 바닷가 마을. 포스코 쪽에서 호미곶 가는 옛 해안 길을 달린다. 호미곶 조금 못 미쳐 이 마을이 파도 소리에 싸여 있다. 해안선이 심하게 굽이도는 아늑한 포구.

노적암이 있고 그 서쪽 300m 지점에 검은 집괴암(화산에서 분출한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돌과 용암이 굳어져서 생긴 암석)의 갯바위들이 험상궂게 돌출한 기이한 해안 절벽이 볼만하다. 바다로 불쑥 뻗은 바위를 용치미라고도 하는데, 특히 아홉 마리의 용이 살다 승천한 곳이라 하여 구룡소(九龍沼)라 불린다.

구룡소를 이룬 바위는 높이가 40~50m에 이른다. 둘레는 100여m로 바다 쪽으로 들쑥날쑥하게 펼쳐져 있다. 불쑥 솟구치고, 군데군데 움푹움푹 팬 기암절벽. 이른바 타포니 지형을 이루고 있다. 집괴암에 박혀있던 돌조각들이 빠져나가고 남은 구멍에 바닷물이 들이쳐서 더 큰 구멍을 만들게 되는데, 이러한 구멍들이 벌집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지형이란다. 그 아래 푸른 소는 깊이가 가늠이 안 되기에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데, 바닷물이 끊임없이 들이친다. 그 주변의 거친 바위들의 평평한 바닥에는 작은 웅덩이들이 꽤 이루어져 있어서 드나드는 바닷물이 고여 일렁인다.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운해가 자욱한 가운데 거센 파도가 소용돌이치면서 용들이 난폭하게 꿈틀댔으리라. 얼마나 장관이었겠는가? 그 용들의 거센 용틀임으로 9개의 굴이 단숨에 뻐끔하게 뚫렸단다. 사람들이 감탄하며 들여다본다. 그중 하나는 길이가 5리나 될 정도라고 사람들이 믿기도 한다. 아홉 개인지 그 이상인지 가늠하기 힘든 크고 작은 굴들이 절벽 군데군데 뚫려 있다. 그중 제법 큰 굴에는 사람이 충분하게 들어앉을 만하여 유명한 도승들이 거처하면서 도를 닦기도 했단다.

파도가 끊임없이 거칠게 들이친다. 용이 승천했다고 일컬어지는, 하늘로 뻐끔하게 뚫린 굴의 아래로 흰 물보라가 거세게 밀고 들어오더니 왈칵 쏟아져 나간다. 그 굉음이 요란하다. 물보라가 대단하다. 마치 용이 입에서 거친 연기를 뿜어내는 듯 생생하다. 그 파도 앞에 서면 동해의 대단히 거친 기세가 마구 느껴질 정도다. 그 기세등등함이 소름이 돋을 정도다.

파도가 깎아 평평하게 만든 너른 바위 위로 파도를 따라 자갈이 움직이면서 집괴암을 깎아 만든 마린 포트홀(해안에서 파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항아리형의 구멍)의 바위 아래에는 물들이 드나드는 굴들이 얽혀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 아래로 바닷물이 드나드는 소리가 거칠게 들린다. 바닷물의 웅성거림이 기이하다 싶은 순간, 바위들의 갈라진 틈으로 그 소리가 드세게 크르릉거린다. 그러고는 순간적으로 그 틈으로 바닷물이 위로 뿜어져 나온다. 마치 용이 괴성을 지르며 뿜어내는 콧김 같다. 구멍을 들여다보던 사람들이 한순간 화들짝 놀라서 뒤로 주춤 물러선다. 바위 아래 용이 존재하는 느낌에 사로잡힌 둣한 겁먹은 표정들이다. 그러니 지금도 이곳이 동해의 용이 드나드는 아주 신령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게다.

#2. 호미곶 가까운 바닷가의 기암 장관

동해안의 단조로운 해안선이 남으로 내려오다 유일하게 곶(반도보다 작은 바다의 돌출부)을 형성한 지역이 호미곶이다. 행정구역으로는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과 1986년 구룡포읍에서 분리된 호미곶면으로 구분된다. 이 일대는 그 이름이 말해주듯 아홉 마리 용의 이야기들이 전해오는 곳들이 꽤 있다. 그중 한 군데가 구룡포읍 병포리에 있다. 진로종합식품 부근 해안 절벽. 구룡산맥이 흘러오다 멈춘 기암지대에 용이 드나든다는 바위로 된 문이 있다. 이곳을 예부터 구룡승천지지, 또는 구룡소라 했다.

신라 진흥왕 때 장기현감이 각 고을을 순찰 중 용주리(龍珠里: 현 구룡포6리, 옛 지명은 沙羅里)를 지날 때 별안간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현감은 급히 민가에 대피했다. 거기서 살피니, 용두산(龍頭山: 지금의 병포리) 해안 바다에서 용 열 마리가 승천하다가 한 마리는 떨어져 죽었다. 이에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한 포구라 하여 구룡포라 부른다고 한다.

용에 대한 또 다른 전설은 포항시 남구 연일읍 주변인 형산과 제산에서도 전해온다.

신라 때 장마가 지면 경주 안강 지역은 물론 경주 도심에 이르기까지 물이 고여 그 피해가 극심했다. 이에 한 왕자가 신에게 그 고인 물을 빼내 줄 것을 간청하는 백일 기도를 드렸다. 기도 마지막 날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말했다. “주문을 줄 테니 초아흐렛날 형산 밑에 가서 외어라. 그러면 너는 구렁이가 될 것이다. 구렁이가 된 너를 보고 용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너는 용이 될 수 있다.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면서 꼬리로 산의 꼭대기를 쳐라. 그러면 산이 갈라져 네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왕자는 신인이 시킨 대로 해서 큰 구렁이가 되었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구렁이 봐라”며 놀라 도망칠 뿐 한 사람도 용이라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왕자가 실망하여 있을 때 한 할머니가 우는 아이를 업고 가다가 그 아이를 달래기 위해 “자꾸 울면 저 구렁이가 널 잡아먹는다” 하고 겁을 주었다. 그러자 울고 있던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고 “할머니, 구렁이가 아니라 용이야, 용!”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구렁이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게 되었다. 오르면서 꼬리로 힘껏 산꼭대기를 쳤다. 천지가 진동하면서 산이 두 쪽으로 갈라져 안강 지역에 고여 있던 물이 빠져 큰 강을 이루었다. 지금의 형산강이다. 그때 잘려 나간 산꼭대기가 동해로 날아가다 떨어져서 영일만의 호미곶을 이루게 되었다 한다. 구룡포라는 포구의 이름은 음력 9월9일 용이 꼬리를 쳐서 산이 날아와 붙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란다.

#3. 지금도 여전히 용왕의 거처로 신성시해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으로 예부터 알려진 곳. 호미곶은 해맞이 명소로 해마다 정월 초하루 새벽에 크게 붐빈다. 뿐만 아니라 등대박물관이 있고, 인근 항구의 정취가 별다르다. 그 빼어난 풍경으로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잦다. 무엇보다 이 지역은 풍수적으로 대단히 중시되는 곳이기도 하다. 한반도 전체를 호랑이 형상으로 볼 때, 백두산은 호랑이 머리이고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천하의 명당이라고 한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는 국토의 동쪽 끝을 측정하기 위해 영일만 호미곶을 일곱 번이나 답사하여 측정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동쪽’임을 확인, 호랑이 꼬리, 곧 ‘호미’라 기록했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 지리지 편에서 자연 경관이 수려한 호미곶을 ‘대한 십경’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범 꼬리에서 구룡포항으로 가거나 만 안쪽인 포항으로 가는 해안도로는 볼거리가 많아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힌다. 구룡포와 호미곶, 그리고 영일만 해안 곳곳의 바위가 많은 지역은 여전히 살아있는 용의 서식지라고 사람들은 믿는다. 이 일대에 구룡산맥, 용두산, 용두귀운(龍頭歸雲), 용주리, 용왕당, 어룡곡, 구룡소 등 용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산재하는 건 옛날부터 이 지역이 용의 서식지로서 용왕의 신앙심이 대단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용은 물을 관장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져 왔다. 바닷가 사람들에게 용은 의미가 특별나다. 풍어를 기원하고 삶의 보금자리를 지키는 상징으로 용이 자주 등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용은 공포와 신비의 대상이지만, 바닷가 동네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민들의 삶 속에 뚜렷이 자리하는 영물이며 신앙의 대상이다. ‘용왕’이란 상징은 그래서 지금도 이 일대에선 여전히 살아있는 듯 여겨진다. 특히 구룡소가 있는 이 일대에서는 말이다. 구룡소가 있는 대동배 어촌에서는 용 신앙이 옛날부터 쭉 강하게 전해 내려왔다. 그 믿음의 표상으로, 구룡소의 용들이 여전히 극진하게 모셔지면서 신성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글=이하석<시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여/행/정/보=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대보초등학교 대동배분교(폐교) 앞 삼거리에서 서쪽 해안 방향으로 300여m쯤 가면 구룡소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이 가파른 편이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높은 바위 절벽에서 정해진 경로 밖으로 나가는 것도 삼가는 것이 안전하다. 또한 구룡소 일원은 어민들의 어장이기 때문에 함부로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공동 기획 : 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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