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자와 가위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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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03 07:44  |  수정 2017-09-05 10:25  |  발행일 2017-07-03 제18면
20170703

중3 학생의 엄마가 아이의 고교 진학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찾아왔다. “선생님, 요즘 잠이 안 옵니다. 당장 어떤 고등학교에 보내야 할지 고민입니다. 자사고, 외고 같은 학교는 없앤다고 하고, 수능은 절대평가로 바꾼다고 하는데 우리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어떻게 될지를 알아야 학교를 결정할 것 아닙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아이와 학부모들이 더 행복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진통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기본에 충실하고 실력 있는 학생이 손해 보는 제도는 없을 것입니다.”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답변에 엄마는 엄청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며 반발했다. “대한민국 모든 학부모에게 물어 보십시오. 내 아이가 대학 가고 난 뒤에 아무리 좋은 제도가 나온다고 해도 별로 관심 없다고 할 겁니다. 내 아이에게 적용되는 현재, 지금, 오늘의 제도만 의미가 있어요. 그 외에는 다 남의 일에 불과합니다. 내 아이가 왜 실험실의 쥐가 되어야 합니까. 그게 불만입니다. 속물이라 해도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선생님의 생각은 무엇인지도 한 번 말씀해 보세요.”

자녀의 공부나 생활 습관, 진로 관련 문제에 도움을 청할 때는 다양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비교적 만족할 수 있는 답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교육 제도와 관련된 질문을 할 때는 난감해진다. 그런데도 상담하러 온 사람은 그 순간 떠오르는 모든 것에 대해 묻는다. 그 엄마가 또 질문을 했다. “왜 학생들이 공부 열심히 안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고칩니까? 요즘 아이들 한 번 보세요. 인문계는 과학 과목, 자연계는 사회 과목을 제대로 안 배우니 신문이나 잡지를 읽어도 이해를 못합니다. 공대 가는 학생이 물리 안 하고, 의대 가는 학생이 화학 안 해도 되는 세상 아닙니까. 공부하기 싫고 적성에 맞지 않는 학생에겐 잘 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주고, 공부 좋아하고 또 공부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학생들은 죽도록 공부하게 해서 서로 실력 차이가 날 수 있는,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정당하게 평가를 받게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결국 상담은 만족스럽지 못하게 끝났다. 내면의 불만을 쏟아냄으로써 마음이 일시적으로 후련해지는 카타르시스 효과는 있었을지 모르겠다. 이 땅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이렇게 마음 고되고, 힘 쓰이고 돈 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교육 당국은 어느 정도 헤아리고 있을까.

“열 번 재고 가위질하라” “자(尺)질 자주 하는 며느리는 써도 가위질 잘하는 며느리는 못쓴다”는 속담을 떠올려 본다. 우리 조상들은 자식에게 가위, 칼, 빗자루 같이 무엇을 자르거나 쓸어내는 데 쓰는 도구를 다룰 때는 특별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자식이 새로 살림을 날 때도 가위는 물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교육제도 개혁은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와 그 가정의 행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가와 국민 개개인 모두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 교육 당국은 가위질하기 전에 다양한 견해에 귀 기울이며 자(尺)질을 충분히 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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