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흥의 음악칼럼] ‘Happiness Is’ 융첸 라모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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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30   |  발행일 2017-06-30 제39면   |  수정 2017-06-30
지금 이 순간 우리의 행복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전태흥의 음악칼럼] ‘Happiness Is’ 융첸 라모 노래
융첸 라모
[전태흥의 음악칼럼] ‘Happiness Is’ 융첸 라모 노래

얼마 전 세계 바둑계의 일인자라는 중국의 커제가 구글에서 개발한 알파고라는 인공지능과의 바둑 대결에서 완패했다. 많은 언론은 나날이 발전하는 인공지능 앞에 인간이 설 자리를 빼앗기는 우려를 넘어 인간과 생각하는 로봇의 전쟁을 다룬 공상과학영화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 아니냐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고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새롭게 만드는 길이라며 떠들기도 했지만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이 과연 인간을 이롭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는 아무도 선뜻 그렇다고 답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사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제는 적수가 없기 때문에 바둑계에서 은퇴를 한다는 그 선언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한경쟁에 내몰린 인간에게는 어느 순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위한 창의성보다는 개인의 이해관계나 이익이 더 중요해졌고 그것은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적 이해, 즉 동질의 집단성만이 강조되는 시대가 되기 시작하면서 세계는 결국 불확실한 미래를 맞았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는 불합리한 현실은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만을 가르치는 사회에서 기인한다. 얼마 전 클래식 음악 동호회에서 이런 주제로 토론이 열린 적이 있다. 현대음악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에 대한 이유를 찾다가 결국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나 행복, 희망을 말하지 않는 사회적 현상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토론에 참여한 한 사람은 우리가 받아왔던 교육에 대해 흥미로운 의문을 제기하면서 음악의 아버지 바흐, 음악의 어머니 헨델, 음악의 악성 베토벤 같은 단답형 주입식 교육이 즉흥적이고 단말마적인 음악, 즉 개인의 욕구에만 맞춘 음악적 경향을 만든다고 한탄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음악의 아버지, 어머니가 바흐나 헨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배우고 믿어왔다. 백번 양보해서 서양음악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말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규정은 엉터리다. 당대의 가장 유명한 음악가였던 헨델이 이름도 없이 시골에서 음악을 작곡했던 바흐와 견주어 음악의 어머니라고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24명이나 되는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거의 날마다 음악을 작곡해야 했던 바흐였기에 음악의 아버지로 표현한 것이라고 헨델은 이해할 것이라는 우스개에 모두 쓴웃음을 지었던 것은 단답형으로 줄 세우기를 요구하는 학교 교육이 음악의 역사를 거꾸로 뒤집고 헨델의 성별까지 바꾸어가며 오답을 정답으로 강요해 온 탓이었다.

토론이 끝나갈 무렵,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음악 한 곡씩을 추천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추천한 이는 그 애잔한 선율 속에 담긴 바흐의 고된 노동을 이야기했고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추천한 이는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주류가 되고 싶었던 그의 욕망과 좌절이 그 곡 속에 담겨있음을 말했다. 나는 서양음악이 아니라 티베트의 여가수 융첸 라모의 ‘Happiness Is’ 노래를 추천했다.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한 이후 1965년 티베트 라싸에서 태어난 융첸 라모(Yungchen Lhamo)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만나기 위해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인도의 다람살라로 간 이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마을의 한 스님이 지어줬다는 ‘음악의 신’이라는 뜻을 지닌 그녀의 이름을 딴 융첸 라모 협회를 설립해 티베트 여성들의 복지와 교육을 위한 일을 하면서 티베트의 독립을 염원하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그녀는 1998년 ‘Coming Home’이라는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하면서 ‘티베트의 영혼을 노래하는 목소리’라는 칭송을 받았다. 2005년 한국을 방문해 전통 티베트 음악을 선보였던 그녀는 악기 없이 목소리만으로도 영혼을 울리는 노래를 들려준다. 그녀는 빼앗긴 자신의 조국 티베트가 처한 현실 앞에 티베트인들이 보여주는 평화의 몸짓인 오체투지처럼 노래로 티베트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그녀가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노래에 담겨있는 메시지보다는 노래를 듣는 청중 개개인이 직접 듣고 느낀 바에 맞춰 이해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녀는 노래한다.

토론의 끝에 “노래가 세상을 구원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노래가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던 것은 2004년 세 번째 인도 배낭여행 중에 만났던 그녀의 노래 때문이었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 머무는 동안 게스트하우스 옆의 음반가게에서 만난, 서울의 대학에서 2년간 약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티베트 전통의학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티베트 아가씨는 융첸 라모의 노래 ‘happiness Is’를 “티베트인들의 불심은 단순히 자신만을 위해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것이며 다른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함께 나아가기 위한 것이며 그것이 행복”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아버지의 고향 티베트로 돌아가 가난한 이웃들의 아픔을 치료하고 함께 노래하며 살고 싶다던 그녀를 가끔 생각한다.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그녀의 꿈은 어쩌면 기술 문명의 우위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세상의 수많은 폭력 앞에 싸우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닐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의 행복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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