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치산효령로 팔공산 앙망 라이딩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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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30   |  발행일 2017-06-30 제37면   |  수정 2017-06-30
계획대로 풀리지 않아 더 즐거웠던 ‘나홀로 방랑’
더위사냥 하러 치산폭포 납량라이딩
안내판 부실로 폭포 입수 계획 수포
대신 팔공산 환종주 앙망 코스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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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령면 화계리 농로에서 바라본 목가적인 팔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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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그늘이 있는 중앙선 신녕역 근처 완전리에서 우러러본 팔공산은 허리를 구부리고 일하는 늙은 농부가 떠받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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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산효령로 신녕면 부산리의 부산교 근처를 지나다 뒤돌아본 팔공산 자락 치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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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통면 신덕리에서 환종주 팔공산 앙망라이딩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오후 2시10분 출발하는 군위의성 버스를 타기 위해 북부정류장에 갔다. 발전이라는 이 시대의 담론과 역방향인 북부정류장 대합실은 승객들로 붐볐다. 연속되는 폭염에 기꺼이 비를 얻어맞겠다는 마음의 대비를 하며 치산폭포를 향하여 더위 사냥길에 올랐다.

효령까지 가까운 것 같았는데 효령정류장에 내리니 1시간여 걸렸다. 치산효령로를 탔다. 신녕 24㎞ 부계 10㎞ 도로표지판을 보니 난코스는 아니라는 안도감이 생겼다. 길 옆으로 남천과 상주영천고속도로가 달린다. 오후 3시15분 메기 매운탕으로 유명한 거매리에 들어섰다. 도로 좌우에 모를 심은 푸른 논들이 가지런하다. 오겹살을 한 팔공산 금매리 어느 농가를 지나다 전주 옆에 피어난 6월의 꽃 접시꽃 정원이 아름다웠다. 에너지 문명전환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 팔공산하를 달리며 자연경관을 훼손하는 전주 이설 및 전깃줄 지중화를 비롯한 팔공산발 탈핵버전을 경관보호법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했으면 하는 간절함이 찌릿하게 느껴졌다.

요즘은 새들도 시대성을 반영해 가오 안 선다고 전깃줄 위에 잘 앉지를 않는다. 효령면 금매리 소나무숲에는 왜가리와 백로들이 집단서식을 하고 있다. 달리는 길에서 왜가리마을까지는 사정거리가 멀었다. 팔공산과 어울린 논들은 싱그러웠다. 새들은 인간과 불가근불가원의 거리에서 자유롭게 난다. 푸들이 되지 않고 독립비행을 할 수 있는 생존법이리라.

금매교를 넘어 1㎞ 반경 안 논둑엔 로드킬을 당한 고라니가 쓰러져 있었다. 시간만 있으면 밀봉해서 청와대로 발송해 동물애호가인 대통령의 로드킬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이끌어내고 싶었으나 준비가 안 돼, 경북도 120번 콜센터에 전화를 해 신고를 하는 선에 그쳐야 했다. 효령면 화계리엔 경북대 친환경농업교육센터와 경북농민사관학교가 농도경북의 자존심을 살려주고 있다.

영천 신녕으로 가려면 부계를 경유해야 한다. 상주영천고속 동군위IC 삼거리에선 한창 주변 정비공사를 하고 있었다. 부계에서 신녕 방면으로는 갈 일이 없어 난생처음 달리는 길이라 미지의 신세계였다. 사전 파악한 대로 창평저수지가 나왔고 11㎞거리에 캠핑촌 계곡과 가지각색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치산관광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치산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표지판엔 팔공산 동봉, 진불암, 수도사가 한지붕 세집안이다. 치산관광지에 꽂힌 것은 퇴계 선생에 의해 팔공산의 선경으로 떠올랐다는 가짜뉴스를 본 까닭이다. 그런데 퇴계는 생전에 이곳을 찾지 않았고 제자 황준량 신녕 현감에게 보낸 서문과 화답시로 인해 시인묵객들이 줄이어 폭포를 찾아 팔공산 제일의 명소가 됐다고 한다.

퇴계는 차운시 ‘次韻黃仲擧(차운 황중거) 幷序(병서)’에서, “듣기에 그대 선주암 폭포를 마침 찾아가게 되었다 하니, 그대 따라서 어느 때나 그 빼어나고 기이한 경치를 나도 가까이서 보게 되리?”(聞君方得仙巖瀑(문군방득선암폭) 相逐何時攬絶奇(상축하시람절기))라고 마무리 지었다. 가보고 싶다는 희망을 토로했을 따름이었다. 명소를 빛내기 위해 유명인의 명성을 끌어다 쓰는 민족적 타성이 전국의 천년고찰들을 의상대사가 창건하게 만들었다. 팔공산에 원효대사와 관계 맺은 절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1등만 기억하는 명품 대구경북이어서인지 알 수 없는 대구경북의 유명인 사랑병으로 집단적 스탕달 신드롬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명소는 유명인의 스토리텔링이 없어도 사람들을 끌어당기고도 남는다.

스님들은 왜 이렇게 멋진 곳에 부처님을 모실까? 사찰이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부대중이 머물 수 있는 곳에 불사를 하기 때문이란다.

수도사와 관련해선 조선 숙종 때의 여행가였던 정시한이 산중일기에 기록했다. 1688년 8월20일부터 28일까지 수도사에서 묵었던 그는 ‘산중일기’에 “수도사의 터는 건좌손향(乾坐巽向)으로 비록 평평한 곳은 아니지만 폭포머리 바로 위에 있어서 이것이 정기가 모이는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해서 평지로 이전했음을 시사한다. (건좌손향은 건방인 북서방향에서 손방인 남동방향을 바라보는 좌향을 말한다.) 캠핑촌에서 치산폭포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계속 올라가니 수도사가 나왔다. 수도사에서 길은 끝났다. 치산폭포를 안내하는 표지판은 숨바꼭질하는지 눈에 띄지 않았다.

두 사람의 치산계곡 캠핑족이 수도사를 잠시 구경하고 돌아간 뒤 이 잘 정돈된 비움의 사찰은 잠시 내 차지가 된 것 같았다. 주인도 손님도 없는 무인지경의 보화루 차실에서, 여행의 본질을 “계획도 정해진 목적지도 없는 자유로운 나그네길”이라고 설파하신 법정 스님의 글을 떠올렸다. 법정 스님께서 16세기말 시문(詩文)으로 널리 알려진 중국의 문사 도융의 여행기 ‘명료자유(冥廖子遊)’를 읽고 전해준 여행은 ‘방랑’이었다. 그래 계획한 대로 풀리지 않고 길을 헤매고 방황하고, 힘들고 배고프고 위험해도 자전거 여행은 ‘즐거운 방랑’이다.

“여행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스스로 느끼고 생각한 그 체험으로 자기 자신을 채워간다. 그러므로 여행은 독서보다 몇 갑절 삶을 충만하게 가꾼다”는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 글을 모바일북으로 다시 음미했다. 자전거여행을 준비하는 그대에게 체험적 여행관을, ‘오두막 편지’에 실린 여행 관련 글을 오려서 부친다.

“여행은, 즉 나그네 길은 더 말할 것도 없이 혼자서 홀가분하게 나서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단 하루가 됐든 이틀이 됐든 자신의 그림자만을 데리고 훨훨 가는 것이 가장 좋다.”

치산계곡에 입수해 한여름 더위를 식혀 보고 팔공산의 진경 치산폭포 구경하러 나선 라이딩은 수포로 돌아갔다. 새소리만 들리는 절집에서 주지스님이 된 기분에 고독송으로 장장 22분짜리 ‘Hanshan Temple’을 틀었다. 흡사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팀 로빈스가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를 교도소 내에 울려 퍼지게 한 것 같은 뿌듯함이 살아나는 자전거 여행은 나홀로 방랑이라는 생각과 함께 내 영혼이 구천을 떠돌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수도사에서 치산캠핑촌을 나와 신녕 면소재지 가는 길은 자연스럽게 팔공산을 우러러보는 환종주 앙망라이딩으로 변했다. 치산리 마을에 있는 250년 된 느티나무 아래 마을노인들의 그림을 담아보려 몇 차례 시도했으나 수확이 변변찮았다. 못 보고 온 게 남아서 그런지 속도가 붙지 않았다. 달리다 말고 부산교 근처에서 치산리를 뒤돌아본 팔공산 자락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산내들은 일품 경관이었다.

치산리에서 옛 관아가 있던 신녕까지는 말을 타는 기분이었다. 치산계곡과 신녕을 달리면서 퇴계 문인으로 알려진 황준량이라는 영남선비를 톺아보게 되는 행운을 누렸다. 온유돈후하신 퇴계 선생께 큰절을 올리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퇴계가 영남의 정통이자 조선의 왕인 까닭은 만고의 역사에 빛나는 인물들을 저렇게 푸르게 씨를 뿌려놓았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이 구태의연하게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를 롤모델로 하긴 어려워졌다. 집권하지 않고 조선을 경영한 퇴계정통을 복원하는 것이 발에 떨어진 백년대계다.

“청렴으로 몸을 지키고 사랑으로 백성을 대하고 마음은 공익에 두고 일은 부지런해야 한다”는 황준량의 ‘거관사잠(居官四箴)’을 읽으며 현실 정치행정의 난맥을 달랜다. 신녕 현감 황준량은 단양군수로 부임해서 “관(官)은 백성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는데, 백성을 이 지경으로 내버려둔다면, 관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는 명문 ‘단양진폐소(丹陽陳弊疏)’의 주인공으로 기초자치단체장의 롤모델로 조명되고 있다.

팔공산을 우러러보고 달리니 우러러볼 인물이 보름달처럼 떠올랐다. 치산계곡 놀러왔다 돈 벌어 가는 듯한 횡재수가 신령하게 펼쳐졌네! 중앙선 신녕역 근처 완전리에서 늙은 농부의 꿈을 살펴보았고, 청통면 신덕리에선 팔공산의 화룡점정이 된 순간을 만났다. 등산의 즐거움이 팔공산에 올라 조망하는 것이라면 라이딩의 즐거움은 팔공산 환종주 포토바이킹이다.

불볕더위 식힐 납량라이딩을 위해 치산계곡 가는 라이딩에 도전했다. 치산관광지에 가면 치산폭포를 잘 찾아갈 수 있을 줄 믿고 갔는데 안내판이 제대로 서 있지 않아 계획은 실종되고 말았다. 대충 준비하면 맨땅에 헤딩해도 안 되는 것이 있고…. 그런데 팔공산 환종주 앙망라이딩이라는 새로운 포토바이킹 코스를 얻게 되었다. 목표에 도달하지 않아도 더 좋은 결과를 얻은 포토바이킹이었다. “좋은 여행은 목적지 보다도 그 과정과 도중에서 보다 귀한 것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오두막편지’를 치산효령로에 바친다. 팔공산 자락 군위 효령·부계·산성, 영천 신녕·청통은 그 빼어난 경관으로 한몸 덩어리 인드라망이었다.

☞ 라이딩 코스

북부정류장 군위의성 버스로 효령까지 점프. 효령버스정류장-효령 거매리-금매리-화계리-동군위IC 앞 삼거리-부계면사무소-(영천 신녕 방향 이정표 따라) 창평저수지-백학삼거리-전귀리-신녕면 치산리-치산관광지-수도사-치산캠핑촌-부산교-화산교-신녕삼거리-신녕면사무소-신녕역-대전교차로-화룡삼거리-장수로-청통면 신덕리-북영천 삼거리-금호-하양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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