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午後의 傷心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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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30   |  발행일 2017-06-30 제23면   |  수정 2017-06-30
[조정래 칼럼] 午後의 傷心

“칠성 고가교 아래 신천둔치 벤치에서 친구들과 막걸리를 나누며 담소를 즐기는데 공익요원 3명이 오더니 술병을 뺏어 부어버리고, 그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져 … 손자뻘 되는 애들에게 수모를 두 차례 당했습니다. …광기어린 젊은이의 모습에서 과연 이 애들이 사회에 나와 올바른 생활이 가능할까 두렵기도 합니다.”

얼마 전 기자 앞으로 배달돼 온 한 통의 편지는 70대 후반의 한 어르신이 졸지에 당한 봉변과 그에 대한 황당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옛날 편지지 3장을 채운 글은 행간행간에 온통 억울함과 울분을 삭여 놓았다. 신분과 연락처를 밝히지 않은 것은 어디에서 함부로 하소연할 수 없는 참담함과 민망함의 숨김이리라. ‘당국에 한 말씀 드리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며 ‘못난 시민’이란 이름으로 재발 방지와 시정을 당부하기까지 상심(傷心)은 그러나 시종일관 감춰지지 않았다.

그 어르신의 서신을 받고 기자는 상당 시간 고민을 했다. 얼마나 상심이 컸을까,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궁리를 하면서. 성질대로라면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들을 색출해 한 대 때려주는 게 직성에 맞다. 우선 이 회초리 글로 젊은이들을 대신해 어르신들에게 사과를 드리고자 한다. 이유와 경위야 어찌됐든 어르신을 힘으로 겁박하는 건 패륜이다. 노사연은 ‘바램’에서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라고 노래했다. 천둥벌거숭이 왕싸가지들이 이런 이치를 알기나 할까, 삼우제(三虞祭) 전에는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할 터. 세월을 약 삼아 그저 익어갈 수밖에.

신천 둔치에서 음주가 법이나 기초질서에 어떻게 어긋나는지, 그 여부는 여기선 논외로 하자. 어르신들을 대하는 공익근무요원들, 바로 젊은이들의 태도가 문제이기에. 아무리 경로효친 사상이 땅에 떨어졌기로서니 손자들이 할아버지들의 막걸리 담소판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나. 직무에 충실한다 하더라도 도덕을 잃어서는 그 직무마저 무색해지는 것 아닌가. ‘옛 소련 시절 화단 관리 직원이 장대 같은 비가 오는 와중에도 시간에 맞춰 물을 주는 것 같은 멍청이 짓은 따라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그 어르신의 질타가 쟁쟁하다. 논리 비약적이긴 하지만 우리 젊은이들의 융통성 없는 막무가내가 공산국가 관료들의 교조적 태도와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푸념은 기원전부터 유전(流傳)해 왔다. 그러던 것이 근래에 들어서는 거꾸로 장년층이 ‘꼰대’로 젊은이들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이른바 ‘연령차별’이다. 하지만 노소 사이 이러한 공방은 세대 간 불통의 결과일 뿐 예의나 공경의 문제와는 무관하다. 사회적 약자로 보호받아야 할 어르신의 육체적 핸디캡이 근육에 의해 유린되고 농단 당하는 건 정의롭지 못하다. 아무리 약육강식 정글의 법칙에 의해 오염됐어도 인간사회라면 장유유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 윤리적 보루다.

어르신에 대한 핸디캡 인정은 미래의 자신에 대한 존중이다.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미래 형상을 보지 못하는 젊은이는 당달봉사나 다름없다. 젊음, 자랑하지 마라. 눈 깜짝할 찰나다. 아침의 떠오르는 태양이 눈부신 만큼 지는 해도 찬란하기 그지없다. 오후에 이른 어르신들의 육신과 생을 함부로 범접하지 말라. 정오를 넘긴 사람들은 알기 시작한다. 100세시대, 당대의 악업은 당대에 그대로 돌려 받는다는 걸.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 교수는 나이듦에 대한 젊음의 차별과 편견에 대해 이렇게 항변한다. 이 같은 오만과 선입견, 젊은 날의 부랑함은 늙은 날 ‘나이 값 못함’의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노래했다. 세태에 물들지 않은 동심의 경건함만으로 살아도 우리의 한평생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데…. 세상은 돌고 돌며, 젊은이들의 버릇없음은 어른들의 유산이다. 가수 서유석은 ‘너는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다’라는 곡을 쓰고,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라고 노래했다. 젊은이 출신, 어르신들 힘 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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