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문재인의 맞절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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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8   |  발행일 2017-06-28 제31면   |  수정 2017-06-28
20170628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이다. 취임 후 2달 가까이 70~80%를 오르내린다. 한국정치에 여론조사가 본격 도입된 후 거의 처음이다. 역대급이다.

기록적 지지율은 진짜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넘어 아무래도 갓 태어난 정권에 대한 덕담의 성격도 있다. 문재인 정권의 정책적 노선은 아직 수면하에 있다.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란 이념적인 것에서부터 무상급식, 무상교육 같은 복지의 크기와 범위, 노동자와 기업주를 둘러싼 갈등의 처리에 이르기까지 첨예한 사안에 대한 정책이 정형화되면 지지율은 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은 현재로서는 통치 스타일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크게 보면 탈(脫)권위주의고, 다소 좁게 보면 밀레니엄시대 지도자의 몸가짐이다.

그는 우선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이건 작게 볼 일이 아니다. 사실 혁신이다. 예를 들면 구중궁궐 같은 대통령 관저를 떠나 참모들이 지근에 포진한 청와대 비서동(여민관)에서 일을 한다. 마땅히 당연한 것인데도 우리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대통령은 커피를 직접 따르기도 하고, 또 참모들의 빈 커피잔을 채워준다. 넥타이도 풀고 옷 소매도 걷어올린다. 대통령 출국길에 인사하러 줄줄이 공항에 나올 필요가 없다고도 주문했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슬픈 유족을 껴안고, 참전 노병들을 향해 큰 절을 올린다. 장·차관들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과거 대통령들의 꼿꼿했던 허리를 거의 90도 굽혀 맞절까지 한다. 시민 셀카에 응하고, 취임 당일 차에서 내려 과감하게 몸을 드러냈다. 그의 스타일이 며칠 동안의 이벤트가 아니란 점은 청와대 앞길을 근 50년 만에 그것도 24시간 개방한 데서 증명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다수의 장관들과 어색할 수밖에 없는 동거 내각 회의를 이끌면서 “우리 장관님들은 엄연히 문재인정부의 내각”이라고 한 것도 첨가된 유머와 여유다.

자유한국당의 이철우 의원(김천)은 ‘문재인정부가 지금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스타일 정치와 쇼를 잘한다. 맞절도 잘한다”고 답했다. 비틀어진 논평이지만 사실 크게 틀린 말도 아니다. 스타일로만 5년 내내 지속할 수는 없다. 앞으로 진정한 진검승부가 기다릴 것이다. 이철우 의원의 논평도 그런 차원일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도자의 스타일, 좀 어렵게 표현하면 그들의 행위양식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 패망의 근원에는 지도자 그룹, 즉 양반들의 권위주의와 허위의식이 자리한다. 양반은 몇 끼를 굶더라도, 옷에 똥칠을 해도 주자학의 이념을 고민하고 있다고 허세를 뜬다. 여기서 그치면 그들만의 실패로만 끝나겠지만 백성을 향한 멸시는 역으로 양반전이란 연극적 조롱의 대상마저 됐다. 허위의식은 내 목을 잘라도 상투는 못 자른다는 데서 절정에 이른다. 상투는 끝내 잘렸지만, 하늘이 무너지지도 않는다.

권위적 스타일의 흔한 예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습성이다. 윗사람에게는 완전히 숙이고, 아랫사람에게는 뒷짐으로 째려본다. 그건 불행하게도 뿌리 깊은 한국적 폐해다. 왜 유독 대한민국에만 그렇게 많은 검은 승용차가 다니겠는가. 검은색의 세단은 권력의 상징으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빨강차를 탔다면 한국의 권력자들은 다 빨강차만 탔을지도 모른다. 군림하는 권위주의는 사회적 갑질로 끝없이 팽창한다.

문 대통령의 스타일 혁신이 설령 잘 짜인 각본, 행여 말썽 많은 탁현민 행정관의 시나리오에 따른 것일지언정 나는 중요하다고 여긴다. 정점의 권력자도 따지고 보면 평등하다는 신호다. 대통령의 탈 권위주의는 파급효과가 크다. 대통령도 저러는데 내가 이럴 수 있느냐는 경계심이다. 하급 관리에서부터 고위층까지, 기업간부에서 CEO까지 허리를 숙이고, 아랫사람에게 커피를 따라주고, 몸을 낮춰 귀를 기울이고, 슬픈 약자를 안아 줘야 한다는 나비효과다. 그건 좋은 전염이다. 모든 조직에 ‘윤허하여 주십시오’란 전 근대적 관습이 남아 있다면, 이 나라가 진화할 수는 없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지만, 어쩌면 습관이 의식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진정한 권위는 몸을 낮춘 탈권위 속에서 나온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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