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책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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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8 07:56  |  수정 2017-06-28 07:56  |  발행일 2017-06-28 제23면
[문화산책] 책의 공간
김현진

며칠 전 책과 관계된 두 공간을 다녀왔다. 한 곳은 디자인 가구 수집가의 박물관이었고, 다른 한 곳은 편집 일을 하던 두 사람이 차린 서점이었다. 수집가는 자신의 평생 모은 가구들을 번잡한 홍대 거리에 특별한 공간을 꾸리며 그곳을 책과 연결하고 싶어 했다. 노련한 북 큐레이터와 공간 디자이너의 머리와 손을 통해서, 책은 그 공간의 분위기를 한층 더 깊이 있게 만드는 동시에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소재로 쓰일 예정이었다. 그래서 그 공간이 완성되면 마치 누군가의 서재에 초대 받듯이 한 작가, 책 한 권의 우주를 만나듯이 신비로운 공간 경험을 사람들에게 심어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했다.

다른 한 곳은 오후 다섯 시가 되어야 문을 여는 밤의 서점이었다. 밤에 문을 열어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까? 아니면 알베르토 망구엘의 저서명을 딴 것일까? 서점 이름은 왜 프랑스어로 지었을까? 책방 주인과의 만남을 앞두고 여러 생각들이 마구 샘솟았다. ‘블라인드 데이트’라고 이름 붙은 코너에는 겉면에 누군가의 손글씨 추천사와 가격만 적힌 책 봉투가 몇 개 있다. 무슨 책인지 모르고 추천의 글만 믿고 구입하는 것이다. 띠지 대신 책방 손님들이 직접 쓴 책 소개를 두른 책들이 책의 옆면이 아닌 정면을 우리에게 드러내고 있었다. 베스트셀러나 유행과 무관하게 오롯이 책방 주인과 손님들이 고른 책만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책 한 권을 마치 하나의 생명이나 우주처럼 여겨, 각각의 책이 어떻게 사람에게 다가갈지만을 깊이 생각한 곳이었다.

요즘 백화점 지하층은 식품 대신 책이 가득하다. 사람들을 오래 머무르게 하고 품위 있는 장소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선 책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이런 곳은 책을 이야기하고 만나는 곳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시간을 붙들고 분위기를 파는 곳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 같지만 막상 거대하고 빼곡한 책의 공간에서는 책을 권하는 이도, 나만의 책을 찾는 이도 점점 없어진다.

사실 우리는 책 자체보다 책의 공간이 주는 친밀감과 신비로움을 진심으로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독서가 세상과의 접점을 열어두는 독립성의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잘 읽는다는 것은 완전히 폐쇄된 공간에서 절대적으로 몰입하는 일이 아니라, 종종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때로는 책으로 얼굴을 덮어버리며, 책과 세상 사이를 방황하는 일, 그 방황 속에 방금 책에서 읽은 문장을 다시 새겨보는 일이다. 사색과 성찰을 위하여 책과 사람 사이, 책과 책 사이를 비워두는 일이 책의 공간에서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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