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전통서원이 빗장을 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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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7   |  발행일 2017-06-27 제30면   |  수정 2017-06-27
서원은 교육의 오래된 미래
청소년 교육장으로 활용해
선현의 기상·덕행 가르치면
청렴·선명하며 정의로운
미래 세대 양성에 도움될 것
[3040칼럼] 전통서원이 빗장을 열면
이현경 밝은사람들 기획제작실장

몇 해 전 일입니다. 그때만 해도 전통서원은 산 좋고 물 맑은 곳에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대구시내에 이끼 낀 골기와를 얹고 있는 서원이 20여 곳이나 있다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알았습니다. 고층아파트 숲에 가려져 있는 서원도 여러 곳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리스트를 뽑아 들고 주말마다 가까운 곳부터 한 집 한 집 찾아 나섰습니다. 처음엔 가벼운 호기심이었지요. 그런데 성지 순례하듯 이곳저곳 카메라에 담고 다니면서 뜻밖의 공부(?)가 시작됐습니다.

수성구 상동의 주택가 한가운데에 있는 봉산서원은 정묘호란 때의 의병장 손린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는 용맹스러운 의병장이자 지극한 효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그리고 달성군 화원읍 인흥서원에서는 고려 때 문신인 추적을 배향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사람 도리의 기본이 되는 내용을 골라서 엮은 명심보감 목판 서른 한 장이 소장돼 있습니다. ‘착한 것을 보거든 목마른 듯 달려 들고, 나쁜 말을 듣거든 귀 어두운 듯 못 들은 체하라’ ‘잠시 참으면 백날의 근심을 피할 수 있느니라’ 이런 가르침들이 갈피마다 새겨져 살아 있습니다.

이처럼 서원에는 옛 어르신들의 깊은 학문과 효성, 헌신적 사랑과 배려, 불같은 용맹, 그리고 올곧은 선비정신과 굳건한 애국심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관리가 허술한 일부 서원에는 구석구석 거미줄이 얽혀 있고 마당엔 잡초가 무성했습니다. 들어가서 사진 몇 장 찍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서원들이 그저 비바람을 버텨온 ‘오래된 옛 집’으로 머물지 않도록 이 시대에 그 가치와 정신을 좀 되살리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인 우리 청소년들이 마음 내어 찾아갈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입시 위주의 건조한 학교교육에다 핵가족·맞벌이 부모의 온실교육, 그리고 매우 빠른 속도로 디지털화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바른 인성교육’은 우리가 절대로 놓치지 않고 끝까지 끌어안고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신문을 보다가 몇 해 전 대구시내 전통서원 24곳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그 아쉬움들이 다소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달서구 이곡동의 병암서원에서는 청소년을 위한 인성교육의 장으로 공간을 개방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북구 산격동에 있는 구암서원에서는 ‘서원, 빗장을 열다!’라는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한복을 차려입은 학생들이 단정하게 앉아서 전통예법을 배웁니다. ‘한옥체험’ ‘전통의례’ ‘국악공연’ 등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합니다. 서원이 이처럼 동네 아이들의 인성교육과 전통문화 체험의 장으로 이 시대에 거듭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속에 걸어뒀던 빗장이 열리면서 서원의 그 인문적 가치가 이 시대와 소통을 시작한 것이지요. 전통서원은 지금 우리에게 “옛 선비의 올곧은 기상과 두터운 덕행을 본받으라. 가난해도 청렴하라. 의리를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고, 어버이를 받들어 섬김에 한 치도 소홀해선 안 된다”라는 서릿발 같은 지적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달성의 이양서원에 모셔진 곽안방은 세조 때 ‘청백리 7인’ 가운데 한분이지요. 평생을 얼음처럼 맑게 살았습니다. 임기를 마치고는 한 필의 말로 소문 없이 돌아오니 사람들이 태수의 행차인 줄 몰랐다고 하지요. 그가 익산에서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 노비가 헌 열쇠 하나를 허리춤에 차고 오는 것을 보고 “이것 또한 나라의 물건이니 어찌 작고 큰 것을 따지겠는가”라면서 곧바로 돌려보냈다고 전합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가끔씩 가까운 서원의 대청마루에 올라앉아서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자란다면, ‘서원’은 이 시대에 살아있는 겁니다.

우리는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때마다 줄줄이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등에 걸려 쩔쩔매는 모습을 매우 참담한 마음으로 지켜봅니다. 보다 청렴하고 선명하며 정의로운 미래세대를 위한 시대적 고민이 절실합니다.
이현경 밝은사람들 기획제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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