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지방분권이 정의다’ .3] ‘in 서울’ 부추기는 지방대 차별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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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7   |  발행일 2017-06-27 제3면   |  수정 2017-08-25
“지방대학 나온 게 죄냐”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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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되면서 각 지역을 대표하는 대학들의 위상도 덩달아 추락하고 있다. 노무현정부 당시 균형발전을 위해 ‘SKY’로 불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지방이전이 추진될 정도로 서울권과 지방의 대학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경북대·영남대·계명대 제공)

지방 대학의 위상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은 ‘지방의 추락’과도 연관성이 깊다.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된 탓에 지방 대학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지방 대학 출신자들이나 재학생들은 지방 대학 나온 게 죄냐고 묻는다. 중앙집권체제와 수도권 초(超)집중화의 폐해가 지방의 교육현장에까지 뻗쳤다. 대학도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멍에를 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외국에서만 알아주는 지방 국립대

직장인 안모씨(여·34)는 지방의 한 국립대를 졸업했다. 안씨는 서울의 사립대에도 합격했지만, 소신껏 지방 국립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자신이 졸업한 대학에 대한 우리나라와 외국의 반응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최종학력 ‘in서울’ 아니면 불안
지방대 취준생 70% “취업 불리”
“대기업 등 고연봉 직장 가려면
서울로 대학원 가야하나 고민”

좋은학교 찾아 젊은층 떠나고
경쟁력 잃은 지방은 소멸 위기



그는 “여행이나 봉사활동을 위해 몇 차례 외국에 나간 일이 있는데, 그곳에선 내가 졸업한 대학명 중간에 ‘National University’(국립대학)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신뢰도가 꽤 높았고, 자연스레 출신 대학에 대한 자긍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에선 당당했던 ‘National University’가 한국에선 ‘그냥 지방 대학’일 뿐이었다. 안씨는 “한국에서 졸업 대학을 말하면 ‘그래 봤자 지방대’라는 반응이 많았다. 같은 지방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방 대학에 대한 이런 인식을 과연 누가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대구지역 한 사립대를 졸업한 최모씨(26)는 서울 소재 대학의 대학원에 가야 할지 고민이다. 취업을 위해선 최종학력이 ‘in 서울’이어야 할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최씨는 “지방대를 졸업해 공무원이 되거나 운 좋게 대기업에 취업하지 않으면 ‘저임금에 복지도 형편없는’ 직장에 눈높이를 낮춰 취업을 하는 경우가 주위에 많았다”며 “서울의 대학원에 가야 할 것 같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도 든다”고 말했다.

지방 대학 스스로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영남대 한 관계자는 “점차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학생 수 자체가 줄고 있는 데다, 그마저도 과거엔 지방대에 입학하던 학생들이 너도나도 서울로 가는 추세다 보니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동대 박찬용 교수(경제학과)는 “지방대를 살리는 것도 지역균형발전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방 학생이 출신지 대학에 입학할 경우 학비를 무료로 해준다거나 대폭 깎아주는 등 지역 학생 유출을 막을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학 소재지와 취업의 상관관계

대구 수성구의 한 유명 입시학원. 이 학원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학원 홈페이지에 올린 합격수기는 대부분이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대학’을 비롯한 서울의 소위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간간이 지방대도 있긴 했지만, ‘의대’ 혹은 ‘교대’밖에 없었다.

지방 대학 출신자의 서러움은 취업을 준비할 때 증폭된다. 지방 대학 출신 취업준비생 10명 중 7명은 자신이 졸업했거나 재학 중인 대학의 소재지나 명칭 때문에 취업에 불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온라인 취업포털이 최근 취업준비생 1천78명을 대상으로 ‘출신 학교 및 소재지에 따른 취업 전망’을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출신 학교 소재지 때문에 취업에서 불리할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 결과, 지방 군소도시 소재 대학 취업준비생의 66.0%가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인천·경기 등 수도권 소재 대학 취업준비생은 46.4%, 서울 소재 대학 응답자는 31.9%만이 ‘그렇다’고 답해 상대적으로 대학 소재지에 따른 취업부담이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지방 대학을 나온 것이 취업 시 어떤 점에서 불리할까. 이 질문에 대해선 지방 취업준비생의 39.2%가 ‘대학 소재지와 학교 이름만으로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 답했다.

◆사라지는 지방 초·중·고

위기에 몰린 것은 비단 지방 대학뿐만이 아니다. 지방의 초·중·고교는 존폐 위기에 놓여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국내인구이동 결과’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경북지역 0~9세 인구의 순이동률은 -0.5%, 9~19세 인구는 -0.1%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영유아와 학령인구가 경북을 떠나는 비율이 경북에 전입해 오는 비율보다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경북지역민의 주요 전출지는 대구·경기·서울 순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경북에선 신입생이 없는 학교 수가 계속 늘고 있다. 경북지역에서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는 2014년 14곳, 2015년 15곳에서 지난해 19곳으로 늘었다.

학생 자원의 고갈로 여러 학교를 묶어 새로운 명문학교로의 통합을 시도하기도 한다. 봉화군의 경우 4개 중학교(명호·법전·상운·재산)를 합친 학생이 73명밖에 안 돼 26일부터 청량중 한 학교로 통합됐다. 대신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전국에 몇 안 되는 기숙형 중학교로 거듭났다.

악순환은 반복된다. 지방의 학교들이 학생 수 부족으로 폐교되거나 통폐합되면, 그곳에 살던 젊은 층은 또 학교가 없으니 고향을 떠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학교를 찾아 젊은 층이 떠나버린 지방은 점점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고, 이는 지방소멸의 중대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방의 쇠락은 이처럼 지방사회, 교육, 경제 전반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반드시 지방을 살려야 하는 이유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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