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가야사 복원 서두를 일인가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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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6   |  발행일 2017-06-26 제31면   |  수정 2017-06-26
[월요칼럼] 가야사 복원 서두를 일인가

새 정부가 닻을 올리기 무섭게 또 역사 논쟁이 뜨겁다. 박근혜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나라를 둘로 갈라놓더니 이번에는 잠자던 가야사가 ‘뜬금없이’ 도마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고대사 가운데 삼국사 전의 역사가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국정과제를 정리하면서 가야사 부문을 꼭 포함시켜 달라”고 주문한 발언이 발단이다. 문 대통령은 가야사 연구·복원이 영호남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자 국토부도 즉시 화답했다. 가야문화권 개발을 지역개발 및 지원에 관한 법률상 ‘지역개발사업’으로 지정해 지원하겠다며 팔을 걷고 나섰다.

문 대통령의 가야사 복원 언급은 그동안 신라사에 가려있던 ‘제4의 제국’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촉매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최고 권력이 국정과제 채택을 직접 지시하면서 공직사회에서는 이미 ‘대통령 관심사항’으로 굳어졌다. 지자체들도 가야와의 이런저런 인연을 내세우며 장밋빛 개발 청사진을 쏟아내고 있다. 하나같이 잃어버린 가야의 문화를 재조명하고 유적을 복원·정비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여기에는 이명박정부의 녹색성장이나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처럼 가야사로 포장하면 국비 확보가 용이할 것이라는 인식도 깔려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경남도는 벌써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시·군 관계자와 함께 긴급 전략과제 발굴회의를 열고 전담조직 신설을 추진하는 등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김해시도 가야역사문화도시 육성을 위한 5대 핵심과제를 발표했다. 2천억원을 들여 2025년까지 가야왕궁을 복원하고, 230억원의 예산으로 고인류박물관을 건립하는 계획 등이 담겼다. 인근의 합천군, 함안군, 창녕군뿐만 아니라 전라도 동부지역 지자체도 가야문화 개발 사업에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대가야의 터전인 고령군과 경북도 역시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가야사를 앞으로 어떻게 연구·복원할지 방향이나 매뉴얼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구난방식 개발 계획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자칫 토목공사나 이벤트성 사업으로 변질돼 예산 따먹기 경쟁만 부추기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알고 보면 가야사 복원사업의 원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인 2000년부터 2004년까지 1단계 가야사 복원에 1천290억원을 쏟아부었다. 예산의 대부분은 금관가야 김해 쪽에 집중됐다. 공교롭게도 당시 김 전 대통령과 실세인 김종필 국무총리, 김중권 비서실장은 모두 김해김씨였다. 김해는 문재인정부에서도 상징적인 곳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고, 김해를 지역구로 둔 현역 국회의원 2명과 김해시장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대선때 문 대통령이 김해서 얻은 득표율은 46.5%에 달한다. 당연히 이번 가야사 복원 관련 예산도 편중 지원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경북의 3대 문화권 문화생태관광 기반조성 사업이 예산 감축 등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문 대통령의 가야사 관련 지시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진지한 대화도 없이 특정 시기의 역사를 연구·복원하도록 관여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개입이며 연구자들을 무시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권력이 역사해석에 개입하면 제2의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비화될 수 있다고 충고한다. 사실 뚜렷한 근거도 없이 가야사 복원사업으로 영호남의 벽을 허물고 통합의 물꼬를 트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정치 논리나 다름없다.

가야사 재조명은 공약 실천하듯 서둘러서 될 일이 결코 아니다. 더구나 대통령의 한마디에 1천500년간 잠들었던 역사가 하루아침에 깨어날 리도 만무하다. 문헌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오랜 기간 발굴과 학술적 성과가 쌓여야만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일이다. 임기 내 성과에 집착해 토목사업에만 투자할 게 아니라 멀리 내다보고 튼튼한 연구기반을 구축하는 일이 우선이다. 체계적 연구나 명확한 기준 없이 무분별한 발굴과 복원이 이뤄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발굴이 곧 파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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