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머리 좋아지는 X 한 뚝배기 하실라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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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6 07:43  |  수정 2017-06-26 07:43  |  발행일 2017-06-26 제17면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머리 좋아지는 X 한 뚝배기 하실라예!

2005년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65세 이상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사회)에 진입한 이래 이탈리아, 독일, 스웨덴이 그 뒤를 이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였습니다. 내년쯤 프랑스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이라 하며, 한국은 2025년쯤 진입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최근 ‘랜셋’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2030년 한국에서 태어나는 여성과 남성은 각각 91세와 84세의 기대수명을 가질 것이라 예상했는데, 이 수치는 세계 1위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의 목표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 변화에 발맞춰 많은 과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인가를 연구하고 있는데, 최근 이에 관련된 매우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이 연구는 독일 막스프랑크연구소의 라카르도 발렌자노 박사 연구팀이 ‘bioRxiv’ 잡지에 발표하였는데, 늙은 물고기에게 젊은 물고기의 대변을 먹이면 수명이 연장된다는 연구입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대변 속 장내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 microbiome)때문입니다.

장수연구와는 조금 다른 분야이긴 하나 비만에도 장내 미생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보고가 있었습니다. 장내 미생물 연구 전문가인 미국 워싱턴의과대학(세인트루이스 소재) 제프리 고든 교수 연구팀이 2006년 ‘네이처’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정상체중의 쥐에 뚱뚱한 쥐의 대변을 이식하면 뚱뚱해지고, 날씬한 쥐의 대변을 이식하면 날씬해진다고 합니다. 고든 교수 연구팀은 2014년 ‘셀’에 다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데, 매우 흥미롭게도 대변이식 효과는 쥐의 대변이 아닌 사람의 대변을 이용한 실험에서도 재현되었습니다. 즉 정상체중의 쥐에 비만인 사람의 대변을 이식하면 뚱뚱해지고, 날씬한 사람의 대변을 이식하면 날씬해진다고 합니다.

이런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이미 미국 보스턴에 대변은행격인 ‘오픈바이옴’이란 비영리기관이 열려,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수집하고 이를 정제하여 난치성으로 알려진 C-디피실리(Clostridium difficile) 감염으로 고생하는 환자를 치료하는데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연간 1천만원 정도의 금전적 보상도 주고 있다고 하니 이제 정말 옛 속담처럼 약에 쓸 대변을 어렵게 찾아다닐 날도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또 보건소가 헌혈 대신 헌변을 위해 우리 곁을 찾는 일도 보게 되겠습니다.

장내 미생물 연구는 단순히 비만이나 장수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뇌활동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예측하는데, 실제 캐나다 맥마스터대학의 프레미슬 베르식 교수 연구팀이 2015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지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장내 미생물 환경에 따라 불안증세나 우울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합니다. 즉 불안증세나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이를 완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장내 미생물을 잘 이식해주면, 약물 없이도 증세를 호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죠.

명색이 향기박사인 제가 기분좋은 월요일 아침부터 전혀 향기롭지 않은 대변 이야기를 많이 하여 좀 죄송합니다. 그러나 대변을 만드는 우리 장내 미생물의 역할은 전혀 향기롭지 않은 환경에서 향기로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수고하는 우리 주변 많은 의인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또 우리 과학자들의 계속된 노력으로 장내 미생물이 우리 뇌에 미치는 역할이 모두 밝혀진다면, 어쩜 가까운 미래에 우리 학부모님들은 “자녀들 머리 좋아지는 X 한 뚝배기 하실라예!”하는 TV광고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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