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튼튼한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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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4   |  발행일 2017-06-24 제23면   |  수정 2017-06-24
[토요단상] 튼튼한 울타리
홍억선 한국수필문학관장

나는 교직경력 35년 차의 중등학교 선생이다. 길다면 긴 세월 동안 교육현장이 어떻게 흘러 흘러 왔는지 눈을 감지 않아도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그동안 우리 교육은 이런저런 일들로 주춤하기도 했고, 옆걸음도 있었지만 한 걸음씩 앞으로 발전해 가면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왔다. 외적으로만 보아도 50명이 넘던 교실이 절반 밑으로 떨어졌고, 선풍기 하나 없던 천장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지뢰밭을 걷는 듯 학교의 하루하루가 조심스럽기만 하다. 아침 일찍 대문을 나설 때마다 그 옛날 버스기사들 앞에 붙어 있던 ‘오늘도 무사히’라는 소녀의 기도상이 저절로 떠오른다.

사실 오늘 아침에도 전화를 두 통 받고 나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통화 내용을 여과 없이 옮겨본다면 첫 번째 전화는 대뜸 “그놈의 학교는 도둑놈들 키우는 곳입니까?”로 시작한 어느 부모와의 통화였다. 그렇게 화가 난 것은 학교 사물함에 넣어둔 학생의 교과서와 문제집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자식이 다니는 학교를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속이 받쳐올랐지만 “네, 확인해 보겠습니다” 하고 공손히 답변을 했다. 두 번째는 아침마다 학교 앞 길을 지나간다는 어느 외부인의 전화였다. 학생의 등교를 도와주는 학교지키미가 횡단보도를 막고서 느릿느릿 학생들을 건너가게 하는 바람에 차가 밀려 회사에 지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느려터진 노인네를 당장 내보내고 빠릿빠릿한 사람을 구하라고 호통까지 쳤다. 이런 일들이 어쩌다 있는 사례라면 다행이겠지만 요즘 어느 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일상이기에 정말 학교를 이렇게 막 대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며칠 전에 일어난 ‘초등학생의 휴게소 방치’라는 뉴스 역시 마음을 암울하게 한다. 그 보도를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덫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새 한 마리였다.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담임교사의 처신이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반론이 일기는 했지만 50대 중반의 한 중견교사의 좌절을 회복시키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지난해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기간제 한 분을 초빙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초임교사는 업무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학생과 훈육을 자청했었다. 이 업무가 어려운 까닭은 머리에 물을 들이고 얼굴에 화장을 하고, 옷을 줄여 입는 등의 규정위반 문제들로 아이들과 마찰이 잦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하루는 학교가 쑥대밭이 되었다. 훈육교사가 복장검사를 하면서 속옷 끈을 당겼다고 신고를 한 것이다. 성추행은 전가의 보도가 되어 학교를 뒤집었다. 외부기관이 들어와 온갖 조사를 마치고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스승이 되겠다고 사범대학을 졸업한 앳된 초년생 교사는 첫발을 디딘 지 몇 달 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우리 교육현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꽤 밝은 편이었다. 사제동행이라고 해서 교사들은 자기가 맡은 학생들을 데리고 교문 밖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주말이나 휴일을 가리지 않고 산행을 하고, 하이킹을 하고, 문화재를 찾아 나섰다. 방학 때는 바다와 계곡을 찾아 야영을 하면서 밥을 지어 먹고 밤새도록 울고 웃으며 평생의 추억을 만들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런 풍경들이 사라진 까닭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중학교에는 자유학기제라는 것이 있다. 3년 동안 한 학기는 중간고사니 기말고사니 하는 시험 없이 보낸다. 미리 자신의 적성과 재능을 찾아 진로를 탐색하고 미래를 준비하라고 특별히 정해 놓은 것이다. 이 좋은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수시로 교문 밖을 나가 체험학습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연예인이 되겠다면 방송국 견학도 해야 되고, 셰프가 되겠다면 요리학원에도 가봐야 한다. 소방서에도 가봐야 하고, 자동차 공장에도 가봐야 제 앞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학교는 자꾸만 나가기를 머뭇거리게 된다. 혹시나 해서 움츠러든다. 학교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허물어진 집은 튼튼한 벽돌로 새로 지을 수 있지만 교육은 한번 허물어지면 회복이 어렵다.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교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모두가 튼튼한 울타리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홍억선 한국수필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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