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영남대는 어디로 갔는가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06-23   |  발행일 2017-06-23 제21면   |  수정 2017-06-23
[기고] 영남대는 어디로 갔는가

나는 낙동강 지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여름이 되면 여기저기 팔뚝보다 큰 물고기가 은빛 모래밭에 떠밀려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이 은어인지 준치인지는 모른다. 먼 바다로 갔던 물고기들이 고향에 와서 알을 쓸고 난 후 모래밭에 몸을 누인 것이다. 하늘도 그 물고기를 축복하여 따가운 햇살을 마음껏 퍼붓고 있었다. 어린 소년의 팔뚝보다 긴 그 물고기들은 생명 있는 것들의 마지막을 다했노라고, 자부심에 가득한 배때기를 내놓은 채 저승으로 가져 갈 강물 소리를 담는 듯했다.

나는 낙동강가의 강둑, 버드나무가 자라는 곳으로 자맥질을 해 손바닥만 한 붕어, 피리, 메기를 잡곤 했다. 논배미가 있는 웅덩이에 들어가서 팔보다 더 긴 민물장어를 잡아 자랑스럽게 엄마에게로 가곤 했다.

낙동강은 아름답다. 한국에서 가장 긴 강이다. 강폭이 500m, 심지어 1㎞에 육박하는 곳도 있었다. 등뼈는 꼿꼿해야 하지만 창자는 구불구불해야 영양을 제대로 흡수한다. 도로는 직선이 좋지만 강은 곡선이라야 물길이 땅을 더 많이 적신다. 이 강을 미래의 얼굴로 가꾸지 않고 4대강에 시멘트포장을 해먹었다. 강폭을 절반 이하로 죽이면서 깊게 팠다. 은빛 모래는 사라지고 썩은 시궁창만 고였다. 순천만에 가 보라.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그 강을 망가뜨릴 때 TK는 무엇을 했는가. 그 강변에 경북 지자체의 어떤 시장은 수㎞에 이르는 승마연습장을 만들었다고 자랑한다. 그게 어떻게 업적인가. 승마연습장보다 축구장을 더 많이 만들어야 했다. 일본이나 독일보다 더 많은 축구장을 만들 수 있었다. TK는 걸핏하면 자랑한다. 아무개 대통령, 아무개 장관이 우리 집안사람이라고. 그건 진정한 TK가 아니다. 당신들이 주체적 역사를 만들던 기억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본론으로 들어간다. 영남대는 경주 최부자 집안이 만든 대구대학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강탈한 것이다. 영남대의 하드웨어는 서울대에 육박한다. 영남대 학자들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전국에서 명성을 날리는 영남대 교수들은 없다. 거들먹거리는 TK가 죽여버린 것이다. 이한열 열사의 사진이 뜨는 곳은 연세대 교정이다. 또 다른 이 열사가 독재에 온몸을 바쳐 저항했더라면 영남대 교정에서 태극기를 두르고 피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이 한국현대사의 공간을 메웠을 것이다.

나는 영남대 시대를 꿈꾸곤 했다. 영남대가 주도하는 지성사와 영남대가 주도하는 역사의 현장 말이다. 얼마전 내가 그렇게 꿈꾸던 영남대 교정 속으로 예순이 넘어서 들어가 평탄한 교정 한가운데 섰다. 나도 모르게 어느덧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모름지기 대학이란 학문과 역사의 전당이다. 학문의 주체는 대학교수이며, 역사의 주체는 학생들이다. 영남대의 영혼들은 누구에 의해, 왜 어떻게 말살 당했을까.

임헌영이 그랬다. “경상도의 역사인식은 전라도보다 30년 뒤진다”고. 영남대의 본래적 지성은 SKY 못지않은데, 영남대의 지성을 질식시키고 그 위에 개발독재의 콘크리트를 발라 버린 것이다. 아스팔트에도 풀은 자란다. 그 풀이 자라 생명이 넘치는 땅을 만들겠다고 콘크리트를 깨야 한다.

먼 바다로 떠났던 물고기가 고향 강으로 돌아와 마지막 숨을 거두는 모래밭은 은빛으로 빛날 때 가능하다. 그래야 메기와 가물치가 퍼덕거릴 것이다. 자갈이 깔린 개울을 줄지어 오르는 쉬리의 번쩍거림, 저녁노을과 입맞추려 애쓰는 물고기들의 비상…. 아! 나는 낙동강 지류에다 발을 담그고 꿈꾸곤 했다. 노벨상을 받을 영남대의 지성들을. 순결한 역사의 은빛 모래 위에 말이다. 영남대 교정에서 훌쩍인 나는 용서받을 수 없는가.

중앙의 들러리가 되기를 자청했던 TK. 숨죽이는 것이 교양이고 기(氣)를 펴지 않는 것이 수도(修道)라며 스스로를 죽였던 당신들, TK는 반성하고 있는가. 송명호 (한학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