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진의 정치풍경] 신(新) 자린고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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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2   |  발행일 2017-06-22 제30면   |  수정 2017-06-22
20170622

제가 몇 년 전 연수를 받으러 미국에 1년간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들의 자린고비 소비생활 방식이었습니다. 식당에서 한 접시도 안되는 식사를 시켜 놓고 몇 시간 동안 노닥거리는 손님들, 거기에 조명은 왜 그리 어두운지. 길거리는 온통 시커멓습니다. 가로등이 없거나 드문드문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죠.

노트북이 고장 나서 수리 센터에 간 적이 있습니다. 한 달이 지난 후 어디어디 부품이 고장 났는데 그걸 고치려면 언제까지 무슨 은행에 입금하라고 통보가 왔습니다. 또다시 2주일이 지난 후에야 물건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밤에 출출할 때 배달음식을 시켜볼까 해서 찾아 봤더니 그런 업종이 아예 없었습니다. 차를 몰고 식당가에 가 봤더니 완전히 암흑이었습니다. 24시간 영업하는 마트가 한둘 있기는 했는데 히스패닉 사람들이 지친 모습으로 영업을 하고 있어서 그쪽이나 이쪽이나 서로 서투른 영어 탓에 의사소통에 곤란을 겪은 경험이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3년 내에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린다고 공약했습니다. 원전을 이용한 에너지공급정책을 안전을 생각해서 대폭 축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문 대통령의 약속대로라면 5년 후 우리의 민생은 어떻게 될까요? 지금처럼 불야성인 대한민국의 야경은 과거지사가 될 것입니다. 각종 서비스업이 수지가 안 맞아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택배는 고급업종이 되고 배달음식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입니다.

성장이 정체되고 인구가 고령화되는 우리 경제현실을 감안하면 환경과 노동을 우선하는 이런 식의 생활방식도 나쁘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국민들이 기존의 에너지 다소비생활방식에 너무 익숙해 있습니다. 명분이 현실을 이길 수 있을까요? 둘째로 일찍이 자린고비식 생활방식을 채택한 서구 유럽에선 노동과 화석에너지라는 두 가지 큰 전통적 생산요소를 대체할 수 있는 숙련된 기술과 문화자본이 오랫동안 측적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잘못하면 선진생활방식이 도입되는 것이 아니라 “속았다!”고 분노하는 국민의 심판을 정책 당사자들은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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