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창(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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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2 07:50  |  수정 2017-06-22 07:50  |  발행일 2017-06-22 제23면
[문화산책] 창(窓)
김향금 <대구현대미술가협회장>

나는 창이 좋다. 창을 너무 좋아해서 우리 집에는 커튼이 하나도 없다. 그 덕에 햇살이 강한 한여름이 되면 집안에서도 피부가 탄다. 이쯤 되다보니 작업실을 옮기면서도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전망 좋은 큰 창이 첫째 조건이다.

창을 좋아하다보니 예전에 머물렀던 화실에 창이 무려 20개나 되던 공간도 있었다. 빛바랜 연푸른 바다 빛깔의 페인트가 칠해진 목조건물을 보는 순간 나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은 마루가 길게 놓여진 그 일본식 목조건물의 창은 좌우 9개씩, 입구에 있는 작은 창과 함께 멀리서 입구를 바라보고 있는 창 하나를 더하면 총 20개의 아름다운 창을 가지고 있었다. 나무창에 푹 빠져서 좁은 철제계단도 마다않고 덜컥 계약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 공간에서 정신적으로 여유로웠다. 덕분에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왕성한 작업을 하였던 가장 행복한 기억이 담긴 작업실이었다.

그러나 창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나의 시점은 창 너머에 있다. 그리고 그 시점은 언제나 작업과 연결되어 있다. 화가는 전시장을 의미하는 ‘화이트 큐브’라는 의식적 공간에 그림을 건다. 오랜 세월 일상적인 모습처럼 그림을 걸어왔지만 그림을 거는 순간의 기대와 흥분은 언제나 온전한 처음과 같다. 번데기가 탈각을 하는 그 순간처럼 처음이다. 그리고 나는 공간에 창을 내듯이 작품을 건다. 작품과 공간과의 관계를 고려하고 그 관계 속에서 작품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킨다. 어떤 창을 내느냐가 어떻게 작품을 걸 것인가와 같다. 창의 크기에 따라 공간의 이미지도 바뀐다. 같은 공간에 크게 나있는 창과 가로로 길게 낸 창과 작은 창을 하나만 놓았을 때 완전히 이미지가 바뀌듯이, 똑같은 작품이라도 작품이 걸리는 높이와 위치, 여백에 따라서 작품의 격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삶이 총체되어있는 키워드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컨대 ‘창’이라고 하겠다. 창을 통해서 내다보는 풍경은 내 안의 심상이기도 하면서 작가의 의식이기도 하다. 형태에 대한 집착은 작가의 철학적 개념에 대한 개연성을 내포하고 있다. 느끼기에 볼 수 있고 보기에 의식하듯이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오래된 기와지붕과 축대며 담쟁이들까지도 내가 선택한 풍경이며 내가 투영하고자 하는 세상이다. 그것은 나만의 창을 통하여 예술가로서 오롯이 살고자 하는 지독한 고집이기도 하다.
김향금 <대구현대미술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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