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치킨게임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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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1   |  발행일 2017-06-21 제31면   |  수정 2017-06-21

1950년대 미국에선 갱 집단과 젊은이들 사이에서 담력을 과시하는 위험한 게임이 유행했다. 게임 방법은 간단했다. 양쪽 참가자가 차를 타고 도로에서 서로를 향해 맹렬한 속도로 마주 달리는 것이었다. 러시안 룰렛처럼 목숨을 건 광기어린 게임이지만, 충돌사고로 죽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두 명 중 누군가는 충돌하기 전에 운전대를 꺾기 마련이었다. 충돌을 먼저 피한 패배자는 겁쟁이라는 뜻의 ‘치킨’으로 낙인찍혔는데, 여기에서 치킨게임이란 말이 유래됐다.

서로 간 한 치 양보 없는 사생결단의 치킨게임은 국가 간에도 종종 벌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62년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던 소련과 이에 반발한 미국의 힘겨루기였다. 자칫 핵전쟁으로까지 비화될 뻔했던 이 치킨게임은 소련이 꼬리를 내려 미국의 승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에도 미국과 소련 간의 맹목적인 군비 경쟁은 더욱 심해졌는데, 이를 빗댄 치킨게임이란 용어도 그 즈음부터 세계적으로 통용됐다. 물론 요즘 국가들 중에는 ‘너 죽고 나 죽자’식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는 북한이 치킨게임의 최강자라고 할 만하다.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치킨게임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벌어진다. 사회가 각박해지고 생존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그럴 것이다. 그런데 요즘 국내 치킨업계를 중심으로 또 다른 형태의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이 게임에는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주·양계업자·소비자 등이 참여하는데, 언제나 승자는 치킨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프랜차이즈 본사뿐이었다.

치킨업계의 치킨게임은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횡포를 부리는 머니게임이다. 업체들은 치킨 인기가 치솟자 온갖 핑계를 대가며 부지런히 가격을 올렸고, 급기야 1마리 2만원 시대를 열었다. 그럼에도 그 이득은 철저히 본사가 독식하는 바람에 가맹점주와 양계업자는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또 소비자들은 잠시 기름에 튀겼을 뿐인 닭이 왜 그렇게 비싼지를 납득하지 못한다. 최근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치킨 값을 더 올리려다가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자 일단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치킨공화국 주민의 입맛을 담보로 한 불공정한 치킨게임이 언제 다시 벌어질지 알 수가 없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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