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인간적으로 변하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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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1   |  발행일 2017-06-21 제30면   |  수정 2017-06-21
수십년간 삼성 라이온즈는
모범적 우등생만 모인 집단
인간미가 부족한 느낌 받아
이젠 가성비 높은 선수 활약
인간적인 팀으로 대변신 중
[동대구로에서] 인간적으로 변하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
유선태 체육부장

초등학교 때 장식장 안에 들어가 있는 조그마한 텔레비전을 통해 야구를 처음 봤다. 호타준족의 장효조에 반했다. 묵직한 강속구를 던지던 미남의 황규봉을 흠모했다. 마치 마구와 같은 공을 던지던 왼손투수 이선희는 그냥 신기했다.

우리나라에 컬러 텔레비전이 막 보급될 즈음인 1982년 봄,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기자는 자연스럽게 지역 연고팀인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 됐다. 서울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이만수가 사상 첫 홈런을 치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확인하고는 흥분했다. 10회말 끝내기 만루홈런을 때린 상대팀(LG트윈스 전신인 MBC청룡) 선수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고3 수험생 시절, 야간 자습시간에 한쪽 귀에만 이어셋을 꽂고 몰래 라디오 야구 중계를 듣다 선생한테 들켜 흠씬 두들겨 맞았다. 몇 년이 지난 뒤 군(軍) 일병때 내무반 청소를 하면서 삼성-해태전을 훔쳐보다 삼성의 한 선수가 역전 홈런을 치는 바람에 괴성을 질렀다. 그날 기자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케이블 방송이 없던 시절, 한참 중계하다 “정규방송 관계로 중계방송을 마치겠습니다. 자세한 경기 결과는 뉴스 시간에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캐스터가 멘트하거나 자막을 올리며 중계를 접어버리는 지상파 방송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혹이나 경기가 막상막하로 진행될 때면 그 정도는 더 컸다.

삼성 라이온즈가 이기면 괜히 좋다.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그들이 승리하는 날, 여러 경로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도 다음 달 아침에 발행되는 신문에서 그 내용을 찾아 읽었다. 오후에 발행되는 지역 신문에서도 그 내용을 꼭 챙겼다.

수단이 다를 뿐 삼성의 승리를 곱씹어 보려는 이 같은 행동은 그 후에도 지속됐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2000년대 중·후반엔 밤늦은 시간에 방송하는 텔레비전에서, 2010년대부터는 모바일에서.

반면 혹이나 지는 날이면 애써 경기 관련 기사를 외면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놓고 여기다 지금을 덧붙여 보면 기자에게 삼성 라이온즈는 결코 가볍지 않은 존재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늘 아쉬움이 있었다. 출범 초기부터 삼성은 거의 대부분 시즌을 리그 상위에 속한 팀이었다. 이길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월등히 많았다. 선진적인 구단 운영으로 한국 야구를 업그레이드시킨 주역이었다. ‘모범적인 우등생’들만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너무 반듯했다. 그래서 덜 인간적이었다.

최근엔 달라보인다. 삼성이 석 달 동안 꼴찌를 달렸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보기 안쓰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달 들어 챙긴 승수(勝數)의 상당수가 역전승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분명 꼴찌팀이긴 한데 분위기는 밝고 즐거워 보인다.

삼성의 행보가 더욱 극적인 건 그 중심에 낯선 이름의 그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2군에서 수년간 눈물젖은 빵을 먹었던 김헌곤과 김정혁, 한때 유망주였다 끝없이 추락해 봤던 장필준, 키 163cm KBO리그 최단신 선수인 김성윤.

이들은 유명 선수 기용에 집착하던 선수단의 판단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해주고 있다.

이들은 야구는 절대 돈과 이름값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그 기회를 잡아내는 그들을 보는 게 너무 좋다.

그래서 요즘의 삼성 라이온즈는 참 인간적이다.
유선태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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