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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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0 07:50  |  수정 2017-06-20 07:50  |  발행일 2017-06-20 제25면
[문화산책] 영화관
김한규<시인>

어릴 때 시골에 들어오던 가설극장을 기억한다. 영화를 튼다는 소리가 확성기에서 터져 나오고 포스터가 나붙으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박노식이나 문희 같은 배우들이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그러나 아이들은 돈이 없었고 개구멍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어떤 식으로든 천막 안으로 기어들었다. 영사막에 펼쳐지는 영화는 신세계였다.

그 신세계가 이제는 완전히 산업이 되었다.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으로 투자자들의 구미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영화관은 ‘멀티플렉스’라고 하는 복합상영관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많은 영화들은 남녀노소가 아니라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다. 소비층을 겨냥하는 목적이다. 그러니 영화관이 지방의 소읍에서 빠져나간 지가 오래되었다.

지난 일요일에 마을에서 매실을 따고 있는 할머니를 거들었다. 올해 85세인 할머니는 매실 딸 사람이 없어 이젠 농사를 못 짓겠다고 하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영화 얘기까지 나왔다. 할머니도 그 가설극장은 또렷이 기억했다. 그러나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물론 도시의 복합상영관 또한 가 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소외’라는 낱말을 모르셨다. 역설적으로 그런 말을 모르는 것을 소외시키는 쪽은 더 바란다고 할까.

도시생활에 아주 지쳐서 어떤 결심을 하거나 노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시골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은 자동차를 이용해서 도시의 영화관을 찾기도 한다.

평생을 시골에서 살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 흔한 영화조차도 구경하지 못한다. 물론 텔레비전이 있지 않느냐 할 수 있겠지만 영화관은 다른 성격이다.

한때 하동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송림영화제’를 몇 해 한 적이 있다. 여름밤 야외에 영사막을 설치하고 사흘간 영화를 틀었다. 물론 무료였다.

아이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영화를 보았다. 사실 연령제한 없이 즐겨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영화를 틀었고 날마다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제 영화의 배급과 상영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와 상영관 방식으로 대립하는 것 같다. 아마도 자본의 이익과 수요층의 변화에 따라 재편될 것이다. 그럴수록 점점 소외되는 사람들은 늘어날 것이다. 이른바 문화 빈곤층이라 할 수 있다.

한 시절, 영화의 전성기를 같이 누렸던 세대가 이제는 소외되고 빈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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