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술 권하는 사회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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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9   |  발행일 2017-06-19 제31면   |  수정 2017-06-19
[월요칼럼] 술 권하는 사회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소설가 현진건이 1921년 ‘개벽’ 문학지에 발표한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 나오는 독백이다. 일제에 강제 점령당한 암울한 시기에 아무것도 할 게 없는 무기력한 조선 지식인을 남편으로 둔 아내는 매일 술로 위안 삼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고주망태가 돼 밤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누가 그렇게 술을 권하느냐”고 따져 묻는다. 그런데 “사회가 술을 마시도록 권한다”며 다시 집을 나가버린 남편의 답변에 혼자 이렇게 중얼거린 것이다. 사회가 술을 권한다고?

요즘 사회도 술을 권한다. 일제 강점기 같은 시대는 아니지만, 복잡다단(複雜多端)한 현대사회가 주는 스트레스가 갈증을 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몇 달간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그랬다.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에 실망하고, 심화되는 부의 양극화에 절망하고, 내수부진과 경기침체에 따른 수익감소에 상심했다. 나라 꼴은 말이 아닌데도 보수와 진보로 양분돼 극렬하게 싸우는 진영들을 보면서 갈증은 더 심해졌다. 굳이 우국지사(憂國之士)나 사회 개조의 선봉에 서지 않아도 울분을 달래고 근심을 삭힐 해소제는 필요하다.

지난 역사는 술의 높은 존재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주당(酒黨)이 아니어도 술은 적당히 즐기면 최고선(善)임을 다 안다. 하지만 너무 과하게 마셔 해로운 필요악(惡)으로 만들기도 한다. 백약 중에 으뜸이 되기도 하고, 만병의 근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명사들의 표현에도 잘 드러나 있다. 빅토르 위고는 ‘하나님은 물만 만드셨지만, 인간은 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로마 속담은 ‘첫 잔은 갈증을 면하기 위하여, 둘째 잔은 영양을 위하여, 셋째 잔은 유쾌하기 위하여, 넷째 잔은 발광하기 위하여 마신다’고 술의 특성을 논했다. 법화경에서는 더욱 심오하게 경고했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했다.

이처럼 술은 선과 악, 약과 병을 주는 양면을 지니고 있다. 술이 인간에게 주는 이로움을 간파한 선각자들의 표현을 보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심을 없애는 데는 술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했다. 키케로는 ‘술을 마시지 않는 인간으로부터는 사려분별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보들레르는 ‘근로는 나날을 풍요롭게 하고, 술은 일요일을 행복하게 한다’고 했다. 백거이는 ‘죽은 후 북두성에 닿을 만한 돈을 남기더라도 생전의 한 두루미 술만 못하다’고 술꾼다운 명언을 남겼다.

술의 해악을 경계하는 경구도 넘쳐난다. ‘술을 마시면 말에 날개가 돋쳐서 방약무인하게 뛰논다’(헤로도토스). ‘입술과 술잔 사이에는 악마의 손이 넘나든다’(킨트). ‘술은 범죄의 아비요, 더러운 것들의 어미다’(잉거솔). ‘음주는 일시적인 자살이다. 음주가 주는 행복은 단순히 소극적인 것, 불행의 일시적인 중절에 지나지 않는다’(러셀). ‘사람은 체면있는 신사로서 술집에 들어갔다가 중죄인으로 술집에서 나온다’(글롭스). ‘알코올은 인간의 불을 끄고, 그 동물에 불을 붙인다’(카뮈).‘두번 아이가 되는 것은 노인만이 아니다. 취한 사람도 마찬가지다’(플라톤).

중국의 석학 임어당은 ‘생활의 발견’에서 술 마시는 자세를 간단하게 정리했다. 그는 ‘공식석상에서 마시는 술은 천천히 한가하게 마셔야 한다. 마음을 놓고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은 점잖게 호탕하게 마셔야 한다. 병자는 적게 마셔야 한다. 마음에 슬픔이 있는 사람은 모름지기 정신없이 취하도록 마셔야 한다’고 했다. 어떤 애주가는 술의 건강학을 한시풍으로 표현했다. ‘찬 술은 위를 상하게 하고(冷酒傷胃), 독한 술은 간을 상하게 한다(毒酒傷肝). 그런데 술을 안 마시면 마음이 상한다(無酒傷心). 그래서 맥주와 소주를 섞어 양쪽의 독성을 중화시킨 폭탄주는 몸에 좋다(爆酒補身)’. 술 권하는 사회에 적합한 사자성어다. 이제 새 정부 출범으로 시작된 ‘나라 바로 세우기’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돌아가는 모양을 보니 주당들이 술 마실 핑곗거리는 여전히 많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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