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처지 바뀌었다고 제도 탓하면…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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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9   |  발행일 2017-06-19 제30면   |  수정 2017-06-19
야당때 활용했던 인사청문회
이젠 ‘참고용’이라는 文정부
높은 지지율 기댄 여론정치는
민심 변하면 한순간에 물거품
협치 초심 되새겨 봐야 할 때
[송국건정치칼럼] 처지 바뀌었다고 제도 탓하면…

우리나라에서 고위공직자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건 김대중정부 때인 2000년 6월이다. 당시 청문회 대상은 국회가 임명동의권(인준 표결)을 행사하는 국무총리와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대법관 13인 등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시절인 2003년 1월엔 권력기관장(국정원장·국세청장·검찰총장·경찰청장)이 청문 대상에 추가됐다. 이어 노무현정부 임기 중반인 2005년에 모든 국무위원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앙선관위원으로 확대됐다. 특히 국무위원은 대통령이 행사하는 공직 인사권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국회의 견제력이 대폭 확장된 의미가 있었다. 다만 국무위원(현재 기준 17명)과 권력기관장들은 해당 상임위별로 실시되는 청문회 이후 국회 본회의 표결을 거치지 않는다. 상임위는 후보자들의 공직 적격 여부를 판단하지만 대통령은 이를 법적으로 지킬 의무는 없다.

그럼에도 국무위원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출범한 정부에선 조각(組閣) 단계에서만 각각 3명씩의 국무위원이 낙마했다. 이명박정부에선 이춘호 여성부, 남주홍 통일부,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언론검증과 국회 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박근혜정부 때도 김용준 총리,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끝내 임명하지 못했다. 흠결이 드러났더라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법적 권한을 갖고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언론의 비판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국정현안과 연계한 야당의 정치투쟁이 낳은 결과였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는 차관급과 청와대 참모들 중에도 같은 이유로 ‘내정’ 단계에서 멈춘 인물이 더러 나왔다.

두 정권에서 제1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문재인정부를 탄생시킨 지금도 그런 상황이 되풀이 중이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허위 혼인신고, 그릇된 여성관, 아들의 고교 퇴학처분 취소 의혹 등으로 ‘1호 낙마’를 기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18일) 여러 의혹과 자질논란에 휩싸인 강경화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했지만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아슬아슬하다. 이미 청문대상이 아닌 안현호 청와대 일자리수석, 김기정 국가안보실 2차장의 내정이 철회되기도 했다. 새 정부의 산뜻한 출범이 인사청문회와 언론검증의 벽에 부딪치자 여권 내부에서 ‘청문회 제도 개선론’이 이런저런 방향으로 제기된다. 인사청문회는 문 대통령이 규정한 ‘민주정부’ 1기인 김대중정부에서 도입되었고, 2기인 노무현정부에서 확대된 제도다. 자신들이 야당일 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던 청문회 제도를 이제 처지가 바뀌었다고 뜯어고치자고 한다.

물론 제도가 잘못됐다면 고쳐야 한다. 다만 지금까지 야당의 역할에 활용해 왔던 제도 자체를 깡그리 부정하면 순수성이 의심받고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청와대 고위 참모는 “인사청문회는 참고자료일 뿐 국민여론을 보고 가겠다”고 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을 강행하면서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미 검증을 통과했다고 감히 말씀드린다”고 했다. 야당이 강경화 장관 임명 강행을 비판하자 문 대통령은 “대통령과 야당 간의 승부, 정쟁이 아니다”라고 했다. 고공행진 중인 초반 국정운영 지지도를 믿고 ‘마이웨이 국정’을 이어가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야당과의 협치는 포기하고 여론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이 읽힌다. 만일 이런 인식이 오만(傲慢)으로 비쳐지면 지지율은 하루아침에 폭락할 수도 있다. 그러면 새 정부는 고립된다. 인사는 이제 첫 단추를 끼웠을 뿐이고, 앞으로 할 일이 태산 같기에 문재인정부의 상황인식이 걱정스럽다. 국정운영에도 국민 눈높이에 맞는 상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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