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저만 왜 여친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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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9 07:27  |  수정 2017-06-19 07:27  |  발행일 2017-06-19 제15면
[행복한 교육] 저만 왜 여친이 없어요?

쉬는 시간, 중1 남학생 교실은 말 그대로 생태 현장이다. 개체마다 살아가기 적합한 환경을 구축하려고 새로운 헤게모니 다툼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훈이가 또 교무실 내 자리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다. “왜 저만 여친이 없어요? 이건 불공평하잖아요. 나는 키도 크고 이만하면 잘생겼잖아요.”

벌써 몇 번째다. 툭하면 친구들과 다투고 수업시간에 벌떡벌떡 일어나고, 수업을 듣다가 자신의 관심사와 맞아떨어지는 이야기가 나오면 계속 집요하게 질문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한쪽 팔을 뻗어 팔베개를 하고 비스듬히 누워 활동을 하라고 하면 갑자기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오늘은 여학생과 관련된 사건이다. 바야흐로 사랑의 계절인지 같은 학교 내 커플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훈이의 심사가 뒤틀린 것이다. 얼굴이 뽀얗고 예쁘장한 여학생이 자기에겐 도통 관심 없고 다른 남학생과 생글생글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 질투심이 폭발한 것이다.

사실 훈이는 배정 후 초등학교로부터 관심을 필요로 하는 학생으로 중학교에 연계되어 담임 선정부터 교우관계까지 배려하여 학반 편성을 했다. 훈이의 부모님이 근거리의 큰 학교를 두고도 특수학급도 없는 당시 내가 근무하던 학교를 희망한 건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학생 수가 적어 학생과 교사들이 이 애의 특성을 알고 고려해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초등학교 때는 어머니가 학교에 출근하다시피 아들의 뒤치다꺼리를 했지만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매일같이 발생되는 문제로 전문가 진단을 받아보기를 권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의 저항은 분노와 통곡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던 여학생의 뒤를 몰래 따라갔다가 일이 커져 버렸다. 여학생은 기겁을 해 부모에게 말했고 부모는 훈이의 전학을 요구하며 강하게 나왔다. 봄바람이 향긋하게 부는 어두운 저녁, 좋아하는 여학생을 기다리다가 흠칫흠칫 골목 사이로 가슴 설레며 따라갔던 행동이 상대방 부모에게는 몸서리 처지는 도발이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어렵게 설득하여 전문적인 검사를 받았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일종으로 경계선상에 있었다. 이후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어머니의 예측대로 작은 학교였기에 모두의 고충과 이해 속에 중3이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세월 동안 마음이 곪아 갔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보건의료 정책 1호’로 추진하는 ‘치매국가책임제’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치매국가책임제는 환자 가족이 오롯이 짊어졌던 경제적, 정서적 부담을 지역사회 인프라와 건강보험 제도를 통해 국가와 사회가 나눠 지겠다는 치매 관리 패러다임의 변화다.

내 아이를 내가 책임지고 키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회, 국가의 전문적인 도움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부모는 하루에도 수천 번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리며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이라는 희망으로 무너지는 스스로를 고문한다. 이들 부모에게도 국가사회의 도움이 절실하다. 심각한 저출산의 국가적 위기가 아이 키우기 힘든 세상과 맞물려 있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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