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지방분권이 정의다’ .2] 87년 체제를 넘어 지방분권 체제로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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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9   |  발행일 2017-06-19 제3면   |  수정 2017-08-25
지방분권헌법 시대적 요구…사회·경제구조 민주화 초석
20170619
1987년 10월27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가 합의에 의해 마련된 대통령 중심직선제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당시 개표장 모습. 연합뉴스

우리 역사에서 ‘1987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민주화 열망이 분출하면서 비로소 개헌이 됐고, 민주주의의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이제 ‘87년 체제’를 뛰어넘고 발전시켜 새로운 지방분권 체제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방분권은 1987년 체제 극복부터

현행 대한민국의 헌법은 1987년에 개정된 것이다. 최근 학계와 정치권에서 그 어느 때보다 ‘87년 체제’의 의미와 한계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 논의 끝에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다시 한 번 헌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각계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9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우천법학관에서 열린 ‘6월 민주화운동 30주년: 동아시아의 민주화와 헌법’이란 주제의 국제학술대회에서 장진호 광주과학기술원 교수(기초교육학부)는 “87년 체제의 한계는 신자유주의가 심화한 ‘97년 체제’에 의해 본격화됐다”며 “민주화 이행 초기 정치 민주화에 초점이 맞춰지고 역량이 집중되다 보니 사회경제적 구조의 민주적 대안에 대한 적극적 모색이 방기됐다”고 지적했다.


87년 개정 헌법 자치·분권 미흡
제8항의 117·118조 두 조항뿐
지방을 중앙의 하급기관 취급
역할·권한 제한…자생력 못키워

지방단체라 부르는 것도 차별
중앙과 똑같이 정부로 불러야
영·호남 지칭하는 지역주의도
분권 계기로 긍정 의미로 써야



지난달 서울과 광주지역 단체장 등이 모인 가운데 진행된 ‘87년 체제’를 주제로 한 좌담에서도 호남지역 한 단체장은 ‘87년 체제의 한계는 87년 헌법의 한계’라고 규정했다. 이 단체장은 “87년 체제에선 형식적인 민주화는 됐지만 실제 정치영역, 사회영역, 경제영역에선 (민주화가) 잘 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87년 체제(헌법)의 극복을 논하는데 있어 분권(分權), 특히 지방분권은 매우 중요한 화두이자 지향점이다. 이는 현행 헌법상 지방정부의 역할과 권한이 워낙 제한적인 탓에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 지자체의 자생력을 키우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문제 인식에서 비롯된다. 지방분권 개헌 주장이 잇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헌법’은 한 국가의 구성원리를 담고 있으며,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법이다. 가진 자든 못 가진 자든, 강자든 약자든 국민이라면 헌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도 헌법 수호의지가 없다는 이유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처럼 헌법의 영향력은 광범위하고 막강하다. 따라서 헌법은 시대정신과 현실을 반영하고 있어야 한다. 현실과 규정(헌법)의 조응은 민주국가에 있어 무척 중요한 문제다. 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의 경우 지방자치와 분권에 대한 보장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지역 학계와 지자체, 시민단체 등에서 계속 제기돼 왔다.

우선 현행 헌법 속 지방자치 관련 규정은 제8항의 단 두 조항뿐이다. 헌법 제117조와 제118조에 규정된 지방자치 관련 내용은 딱 넉 줄이다. 제117조는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118조에는 ‘지방자치단체에 의회를 둔다. 지방의회의 조직·권한·의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임방법 기타 지방자치단체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돼 있는 게 전부다.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지방분권개헌국민회의는 “현행 헌법이 지방자치를 규정하고는 있지만, 지방정부를 자치의 주체로 인정하고 지위를 보장하기보다는 중앙정부의 법령을 집행하는 하급기관으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헌법 제117조의 경우 언뜻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입법권을 보장하는 듯 보이지만, ‘법령의 범위 내’라는 단서가 있어 자치입법권이 제약받고 있다. 또 헌법 제118조 역시 조직 법정주의를 통해 지방의 조직 자율성에 제약을 두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방정부를 지칭하는 명칭도 문제다. 우리 헌법은 ‘지방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라는 표현을 쓴다. 최근 열린 지방분권 관련 정책토론회에서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의 공공기관을 총칭해 중앙정부라고 부르듯이 지방자치기관도 지방정부라고 부르는 게 자연스럽다. 국가나 지방이나 같은 성질의 공공단체지만 유독 지방에 대해서만 단체라고 부르는 것은 지방을 깎아내리는 의미로 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주의’ 긍정적 의미로 쓰여야

지난달 치러진 대선에서 또다시 고개를 내민 것이 있다. 평소 땐 잠잠하다가도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그 힘을 발휘하는 ‘지역주의’였다. 특히 영남과 호남, 호남과 영남의 지역주의는 뿌리 깊다. 굴곡진 역사에서 비롯된 지역 간 감정의 골이 한 번에 메워질 수 있겠느냐만은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영남도 호남도 모두 지방이라는 점이다. 모두 ‘기울어진 운동장’에 의해 피해를 보고 있다.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외치는 데에는 경상도와 전라도가 따로 없다.

현재 경상도의 단체장도, 전라도의 단체장도, 경상도의 학자도, 전라도의 학자도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외치고 있다. 더 나아가 지방분권 개헌이 되면 그동안 부정적 의미로 쓰이던 ‘지역주의’가 긍정적 의미로 쓰이게 될 것이란 기대감도 크다.

이창용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상임대표는 “그동안 지역주의라는 표현이 나쁜 의미로만 쓰인 것 같아 안타깝다.”며 “앞으로 제대로 지방분권이 된다면 지역주의는 굉장히 긍정적인 의미로 쓰일 것이다. 다양한 지역색을 인정하고, 지역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존중하는 쪽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방분권 운동 측면에선 오히려 영남과 호남 간의 민간협력이 잘 이뤄지고 있다. 같은 지방이라는 처지에다 지방분권의 필요성과 본질을 서로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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