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24주·중독노래방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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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6   |  발행일 2017-06-16 제42면   |  수정 2017-06-16
하나 그리고 둘

24주
태아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면…


20170616

우리가 영화를 감상하면서 성숙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란 대개 그 행위 가운데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 생겨난다. 잘 연출된 영화는 종종 관객을 영화 속 인물에 이입시킴으로써 다른 성별, 다른 인종, 다른 세대, 다른 계급의 삶을 간접경험하게 하고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따라가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자기중심적 사고의 틀을 깨고 밖으로 나와 타인의 세계관과 소통하는 계기를 맞이한다. 무엇보다 우리(사회)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명제에 집요하게 물음표를 들이대는 영화라면, 그 질문들에 논리가 있다면 깊게 살펴볼 가치가 있다.


‘합법적 낙태’를 다룬 앤 조라 베라치드 감독 신작
주인공의 심리적 딜레마·격정적 고뇌의 시간 담아


앤 조라 베라치드 감독의 ‘24주’는 관객들을 딜레마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좋은 예다. 유명 코미디언 ‘아스트리드’(줄리아 옌체)는 첫 아이를 출산한 후에도 자신의 커리어를 놓지 않고 열심히 무대에 선다. 가정과 일에서 느끼는 그녀의 만족감은 곧 다른 이들을 웃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몇 년 후, 배 속의 둘째 아이가 다운증후군일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통보받고는 고통스러워한다. 이런 경우 낙태는 합법이지만 생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아스트리드는 출산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러나 아이가 심장까지 많이 나쁘다는 말을 듣자 공황 상태에 빠진다. 그녀는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스트리드의 상황은 복합적이다. 일단 본래의 신념대로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으나 다운증후군과 더불어 심장병까지 수발하기에는 그녀의 정신적 고통이 너무 심하다. 장애를 갖고 살아갈 아이의 행복도 걱정이다. 기본적으로 아스트리드의 딜레마는 태아의 생명을 인공적으로 처리하는 것에 대한 가책에 있지만 여기에는 낙태에 대한 생명윤리학적 주석 외에 과연 우리 사회가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모두 갖고 태어난 한 인간이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곳인가 하는 철학적, 사회학적 주석 또한 깔려 있다. 아이뿐 아니라 그를 건사해야 할 책임을 지는 부모의 행복권이라는 주제까지 더해지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아스트리드의 주변인들의 반응에서 볼 수 있듯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곧 장애인 가정을 고립시켜 그들만의 문제로 만들고 일반 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외면하고 싶지만 합법적 낙태란 결국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자기 기준으로 만들어 놓은 ‘제도’의 일부 아니겠는가. 낙태를 ‘합법적 살인’으로 바라보는 입장은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

아스트리드의 선택을 바라보는 것이 괴로운 이유는 그녀의 상황에서 어떤 ‘올바른’ 판단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지, 만약 있다 해도 그녀에게 그 선택을 권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즉 ‘내가 그녀라면’이라는 가정을 통해 관객들의 가치관 또한 벌거벗겨진다. 감독은 아스트리드를 통해 타인을 쉽게 판단하는 태도에 경종을 울리고, 때로는 변명 이상의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도 있음을 말해준다. 다큐멘터리처럼 연출된 종반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지점에서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그러나 선택의 결과와 그것을 책임지는 주인공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데는 적절한 방식으로 보인다.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이 영화에 대해 계속 말하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103분)


중독노래방
그 지하 노래방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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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진 건물 지하에 있는 ‘중독노래방’(감독 김상찬)에는 손님이 거의 없다. 혼자 노래방을 지키고 있는 ‘성욱’(이문식)은 임차료와 관리비도 내지 못해 독촉에 시달리는 처지다. 이 곳에 노래방 도우미 ‘하숙’(배소은)이 들어오면서 가게는 조금씩 활력을 띤다. 좀처럼 생각을 알 수 없는 게임 중독자 하숙과 성욱은 라면을 함께 끓여 먹으며 ‘식구’가 된다. 이 동네에 연쇄 살인범이 출몰한다는 흉흉한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프로 노래방 도우미 ‘나주’(김나미)가 제 발로 찾아오고, 오갈 데 없는 청각 장애인 ‘점박이’까지 신세를 지게 되자 중독노래방은 방방마다 만원이 된다. 말 못할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 소위 소외 계층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모여 대안 가족을 이룬다는 서사가 따뜻하고 뭉클하다.


사회적 약자들이 모여 대안 가족을 이룬다는 서사
기발한 전개와 환상적 미장센, 배우들 호연 재미



제한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을 벽돌 쌓듯 척척 진행시키는 스토리텔링에 지루할 틈이 없다. 어둡기만 했던 동굴 같은 노래방에 한 사람씩 가족이 늘어나면서 조명이나 세팅 등 미장센이 조금씩 바뀌는 모습이나 배우들의 호연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전혀 다른 성격의 노래방 도우미로 분한 배소은과 김나미는 앞으로 주목해볼 만한 배우들이다. 그러나 연기력과 별개로 여성 캐릭터들은 불편하다고 평할 수밖에 없는데, 두 여성의 고통이 공히 남성 폭력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남성의 쾌락을 위해 종사하고 있다는 모순 때문이다. 그것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비극적 운명을 대변해 준다고 하기에 2017년도는 너무 미래에 와 있다. 이러한 불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판타지적 느낌을 강조한 미술, 음악 등 저예산 영화에서 시도할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의 조합이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장르: 미스터리, 판타지,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106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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