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규홍의 시시콜콜 팝컬처] 작은 결혼식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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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6   |  발행일 2017-06-16 제39면   |  수정 2017-06-16
‘스몰웨딩’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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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며 화제가 됐던 ‘고아 커플 지하철 결혼식’ 동영상. 하지만 이 사건은 실제가 아니라 대학교 연극동아리 학생들이 펼친 퍼포먼스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씁쓸한 해프닝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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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회적 인식 변화로 작은 결혼식 문화가 조금씩 자리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작은 결혼식을 원하는 많은 이들은 곧 ‘두 집안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란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이제는 제법 몇 년이 지난 일이다. 인터넷에 ‘지하철 결혼식’이라는 이름으로 퍼져나간 동영상이 있었다. 화면 속에는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있고, 두 사람은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같은 칸에 타고 있던 여러 사람들에게 뭔가를 선언하듯 이야기한다. 사연인즉슨 고아로 자라난 이들은 궁핍한 상황 때문에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대신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속에서 소박한 결혼반지를 끼고 처음 마주친 여러 사람들에게 격려와 축하의 박수를 받는다. 새신랑은 활짝 웃으며 힘차게 말을 이어나가지만, 신부가 되는 아가씨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세 번 주례와 약 열 번의 사회를 본 나
쇼 같은 결혼식과 ‘증거’사진찍기 보며
오래 전 화제였던 ‘지하철 결혼식’기억

최근 미니멀리즘과 함께 작은 결혼 주목
하지만 축의금 문화 등 쉽지만은 않아
비공개·럭셔리의 극단 치닫는 경우도


이 동영상은 빠른 시간에 퍼져나갔고, 이걸 본 네티즌 가운데 누군가는 응원 사이트를 개설하고 부조금을 모으는 움직임까지 벌였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진짜가 아닌 연극이었다. 지하철에서 벌어졌던 그 결혼식은 어떤 대학교 연극동아리가 밸런타인데이 즈음해서 벌인 일종의 연습 반, 실험 반으로 벌인 이벤트였다. 연극을 벌인 측도 자신들의 예술행위가 그처럼 뜨거운 반응을 가져올지 몰랐고, 이에 더 난감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판단으로 사실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을 사실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크게 실망했고 개중엔 이 퍼포먼스를 사기극이라고 부르며 날 선 반응을 보였던 사건이었다.

따지고 보면 우스운 일이다. 우리는 없는 시간을 쪼개어 드라마를 챙겨보고, 적잖은 돈을 써가며 영화관 나들이를 한다. 연속극과 영화는 죄다 사실이 아닌 허구다. 그런 거짓된 기록을 보고 느낀 재미와 감동 앞에선 만족하고, 인터넷으로 본 지하철 퍼포먼스에는 다른 반응을 보였을까? 예술사회학에서는 쉽게 설명이 될 법한 이 상황은 무엇보다 예술작품이나 문화 콘텐츠 감상이 마치 무대 위 마술처럼 보는 이들에게 ‘속을 준비’를 요구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된다. 이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잡음이 생긴다. 지하철 결혼식을 둘러싼 헛된 질책은 대부분 거기에 참여한 이들과 큰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런 비연관성만큼이나 그들에게 없었던 건 예술에 대한 기본 교양이었겠지만 말이다.

진짜 결혼식 이야기를 해보자. 이것만큼은 내가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옛날 영화 제목 비슷하게 난 3번의 결혼 주례와 10번에 가까운 사회를 본 사람이니까. 혼주와 신랑과 신부가 들어오고, 맞절하고, 혼인 서약과 성혼선언이 낭독되고, 지루한 주례사와 어색한 축가가 이어진다. 그다음으로 가슴 뭉클한 장면이 벌어지는데, 신부와 친정부모와의 인사다. 그리고 결혼식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을 만한 신랑신부 행진으로 식은 마무리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도 낱낱의 이벤트가 모여서 완성되는 일종의 쇼가 아닌가. 만약 결혼이 영화처럼 흘러간다면 신랑신부는 행진 세리머니를 끝으로 식장 밖에 대기한 차를 차고 허니문여행을 가야 맞다. 하지만 수십 분의 결혼식은 감독의 컷 사인이 울려 퍼지는 것처럼 다시 원 위치에 돌아가 기념촬영을 마무리해야 한다. 이미 하객들은 식권이나 답례품을 쥐고 빠져나가 썰렁한 식장에서 연출되는 사진은 역설적이게도 공식적으로 남는 결혼식의 가장 분명한 증거다.

이 모든 번잡함과 겉치레 없는 결혼은 불가능할까. 늘 그런 거지만 집안의 크고 작은 일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참견하는 친척이나 지인이 있다. 지하철 결혼식을 비난하던 네티즌처럼 별 상관도 없는 그 밉상들이 사라진 결혼식은 어떨까. 흡사 예금이나 보험처럼 부조 봉투를 챙겨야 하는 한국의 재테크는 언제 사라질까. 귀중한 주말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결혼식에, 주차와 뷔페 행렬 가운데 끼인 괴로움에서 해방될 순 없을까.

최근에 우리나라에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이른바 작은 결혼식 문화가 일종의 유행일 수도 있다. 그것은 집안 살림살이를 비우고 전화기 속에 저장된 번호를 지워나가는 미니멀리즘이 키워낸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가 보기에 작은 결혼식은 첫째, 결혼 당사자와 가족들이 공감하는 개인주의 가치와 둘째, 적당한 경제력 셋째, 서구 생활양식에 대한 자아도취적인 동경이 버무려진 문화다. 진심으로 축복해주는 사람들 속에서 치르는 작은 결혼식을 희망하는 젊은 세대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결혼이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두 집안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사실 때문에 걸림돌도 만만찮다. 작은 결혼식은 양가의 허락 말고도 보통 결혼식만큼의 또 다른 여러 거추장스러운 일을 각오해야 한다. 꽤나 오래 전의 일이긴 한데 주변에 아는 한 사람은 작은 결혼식을 벌이고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공개 결혼식을 해야 했으니, 황당하지만 웃을 일도 아니다.

작은 결혼식은 비밀스러움과 고급스러움을 향할 수밖에 없다. 일찍이 스타들의 결혼식이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되어 비공개로 진행된 예가 많았다. 1985년에 로스앤젤레스 말리부 해안가 절벽에서 펼쳐진 가수 마돈나와 배우 숀 펜의 작은 결혼식은 완전히 엉망진창이 된 예식이었다. 이들의 예식 장면을 취재하려는 방송국 기자들이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을 덮었고, 이에 화가 치밀어 오른 신랑이 소총을 가져와서 하늘에 대고 총을 쏜 최악의 결혼식이 그날 벌어졌다. 작은 결혼식이든 큰 결혼식이든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가 보다. 앞으로 우리 주변에서 점점 많아질 작은 결혼식은 그 하객 규모와는 별도로 웨딩산업 그 자체의 위축까지 불러오진 않을 듯하다. 결혼식 당일의 목격자들만 적을 뿐, 매한가지로 과한 혼수와 장식, 호화로운 여행이 따라붙는 작은 결혼식은 그 이름을 쓰지 않는 게 예의가 아닐까.

P&B 아트센터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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