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원의 ‘영남일보로 보는 시간여행’ .7] 기생과 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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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5   |  발행일 2017-06-15 제29면   |  수정 2017-07-27
광복직후 권번기생은 극장서 창립연주회도 열어
1946년 기생학교 대동권번 설립
시조·권주가·무용·품행 등 시험
기생 재능기부하고 이재민 도와
2만6천원 화대 횡령사건 뉴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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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권번에서 기생화대 횡령사건이 발생해 18명의 기생이 피해를 입었고, 피해액만 2만6천원이 넘었다.(영남일보 1946년 8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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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해어화(解語花)’라는 영화가 있었다. 해어화는 뜻 그대로 풀이하면 ‘말을 이해하는 꽃’이다. 즉 아름다운 여인으로 영화에서는 기생을 일컫는다. 과거 시대를 되돌아봐도 기생은 심심찮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일제강점기에는 권번(券番)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기생학교와 기생조합으로 존재했다. 당시 대구에도 이름깨나 날렸던 권번이 여럿 있었고 광복 후에도 일정기간 명맥을 유지했다.

‘금번 좌기장소에 1월15일부터 양성소를 창립하였사오니 희망하시는 분은 본회에 래임 하시면 상세한 내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신입시일 1월15일부터 대구본정 전 대구예우회관 대동권번교육부 박기홍 전화 142번(영남일보 1946년 1월19일자).’

기생양성을 위해 대동권번이라는 기생학교가 문을 연다는 기사다. 대동권번은 대구예우회관에서 재출발한 기생학교다. 대동권번은 양성소 설립을 계기로 노래와 춤 등 문예에 능한 예기 300명을 길러내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그렇다면 예기는 어떤 시험을 치렀을까. 시조와 권주가, 성악, 무용, 품행시험 등으로 과목이 만만찮았다. 특히 권주가를 넣은 걸 보면 기생의 역할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노래와 춤, 시문에 능한 예기로 키운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경험과 실력을 갖춘 선생님이 필요했다. 달성권번에서 기생교육을 담당하던 박기홍을 데려온 이유다.

당시 권번 기생들은 공연을 통해 존재가치를 뽐냈다. 대동권번 교육생들은 한 달여 뒤인 2월26일부터 사흘간 대구극장에서 창립연주회를 가졌다. 창극 춘향전과 승무 등을 선보였고, 조선음악회가 후원했다. 기생들은 자체 공연뿐만 아니라 일종의 재능기부로 공익활동에도 발벗고 나서는 일이 잦았다. 1947년 수해로 대구에 많은 이재민이 생기자 대동권번 기생 130명이 사흘간 극장공연으로 10만원을 모아 기부하기도 했다. 공연 입장권은 기생들이 직접 거리에서 판매했다.

‘대동권번 조총무의 화대횡령사건을 싸돌고 오랫동안 사회의 물의가 분분하였거니와 도 경찰청에서 금번 장부를 압수하고 상세한 조사를 한 결과 김애자 외 18인분의 총액 2만6천5백82원4전을 횡령한 것이 판명되어 지난 5일 피해자 이은자 외 5명을 소환하여 그 진상을 조사 중인데 귀추가 주목된다(영남일보 1946년 8월6일자).’

기생들의 주 수입원은 함께 놀아준 대가로 받는 놀음차인 화대(花代)다. 화대는 주로 믿을 만한 사람이 맡는다. 밤낮으로 마주 보던 사람이 2만6천원이라는 큰돈을 중간에 가로챈 것이다.

이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되고 말았다. 화대 횡령의 주범으로 등장하는 조총무는 대동권번을 만들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가족 같은 인물이다. 그런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으니 더 억울했을 것이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발등을 찍는 것은 믿는 도끼다.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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