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하도급 위장 불법고용 유행…미등록 이주노동자 급증 불러

  • 석현철
  • |
  • 입력 2017-06-15   |  발행일 2017-06-15 제6면   |  수정 2017-06-15
[무법천지 고령 다산주물공단 실태 리포트] 문제는 고용형태 <하>
20170615
고령 다산주물공단 내 금속가공 후처리 전문 기업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압탕절단작업을 하고 있다.

1993년 산업기술연수생제도가 도입된 후 외국인노동자가 국내에 본격 유입된 지 25년이 됐다. 이들은 한국산업의 급성장기에 저출산·고령화·고학력 등의 이유로 한국인이 떠난 3D(Difficult, Dirty, Dangerous: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업종에서 코리안드림을 이루기 위해 각종 차별을 견디며 버텨왔다. 상당수는 ‘나쁜’ 한국인 사장을 만나 노동착취,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 부당한 대우로 고통받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고령 다산주물공단 내 일부 미등록(일명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의 불법과 일탈이 공개(영남일보 5월31일자 1·6면 보도)되면서 또 다른 파문이 일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모순이 이러한 역전현상을 불렀다고 주장했다. 제조업 사업장마다 비용 절감, 고용 유연성 확보 등의 이유로 생산라인을 쪼개 하도급업체에 맡기는 ‘사내하도급’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양산되고 있고, 고용주의 약점(불법 고용)을 알고 있는 일부 미등록이주노동자가 소위 ‘갑질’을 하는 부작용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임금 낮고 사고시 책임회피 가능
업주 “비용절감” 이주노동자 선호
불법 고용은 고용주에 약점 작용
정부·정치권 차원개선 노력을


◆제조업 3D현장 韓 노동자 역차별

지난 6일 오전 6시 대구 달서구의 한 인력시장. 학비를 벌려고 나온 듯한 20대 청년부터 40~50대 중년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인력이 건설현장의 일용잡부로라도 나가기 위해 목을 빼고 기다리고 서 있었다. 잠시 후 승합차 한 대가 멈춰서더니 몇몇을 태운 뒤 공사현장으로 출발했다. 두 시간 가까이 지나도록 일을 구하지 못한 이들은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서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50대 한 남성은 “정말 일하고 싶은데 갈 곳이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과연 이들에게는 일자리가 없는 걸까. 고령 다산주물공단 한 업체 관계자는 “일할 만한 한국인 노동자를 찾으려 해도 힘든 작업장에서 선뜻 일하겠다는 사람을 구하기는 힘들다”며 “그나마 미등록이주노동자가 아니면 현장은 대체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인 노동자의 말은 달랐다. 공단의 한 노동자는 “현장에선 제품의 무게가 5㎏만 넘어도 지게차로 운반한다. 일이 힘들어서 한국인 노동자를 못 찾는 것이 절대 아니다”며 “한국 제조업이 미등록이주노동자를 찾을 수밖에 없는 고용구조로 변질돼 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3D 제조업현장에서 고용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비용절감만을 생각하는 사업주와 외국인노동자가 없으면 산업현장이 안 돌아간다는 안일한 생각이 미등록이주노동자를 더 증가시키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한국인 노동자의 설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사내하도급 위장한 불법파견 만연

고령 다산주물공단에선 12시간을 기본으로 2교대 근무가 실시되고 있다. 오전 8시에 출근하면 오후 8시에 맞교대가 이뤄진다. 다산주물공단의 공정도를 살펴보면 통상적으로 월 제품생산량 500t을 기준으로 원도급업체에서 직접 고용한 근로자와 사내하도급 소속 근로자가 생산라인별로 포지션이 정해져 있다. 원도급업체가 직접 고용한 본공의 경우 4~6명의 직원이 대형 용광로에서 쇳물을 1천400℃ 이상 끓이는 다소 중요한 작업을 담당한다. 이외의 대부분의 공정은 10여명의 사내하도급 소속 노동자가 담당하고 있다. 월 1천500t 정도를 생산하는 Y업체의 경우 총 3개의 하도급업체에서 30여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근무하고 있다. 문제는 사내하도급 인력 대부분이 미등록이주노동자라는 점이다.

현재 다산주물공단 대부분의 사업장은 이처럼 원도급과 하도급이 같은 생산라인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 제조업의 경우 파견근로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어 대부분 사내하도급을 위장한 불법파견을 실시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몇년 전 현대자동차 생산라인의 사내하도급에 대한 대법원 판례에서 알 수 있듯 다산주물공단 역시 규제 회피수단으로서의 ‘위장도급’일 가능성이 높다. 위장도급의 형태로 불법파견이 늘면서 고용노동부는 강력한 제재에 나서고 있다. 노동청 광역근로감독과 강연경 감독관은 “단속을 나갈 때 일단은 중립적 관점에서 살펴보지만 파견으로 더 비중이 쏠린다. 왜냐하면 사내에서 작업 대부분이 진행되는 경우 사내하도급으로 판단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미등록이주노동자 선호하는 이유

사내하도급은 원도급 업체에서 2년 초과해 근무하더라도 해당 업체의 정규직이 될 수 없는 반면 파견근로자는 2년 초과 근무 시 원도급업체가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 기업이 하도급을 선호하는 이유는 당연히 비용절감과 각종 사고 시 책임회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하도급업체 역시 같은 이유로 미등록이주노동자를 선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매년 많은 수의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단속돼 강제 추방되지만 또 그만큼 다시 유입되고 있다.

한국인 노동자는 주 8시간을 기준으로 기본급이 책정된다. 여기에 시간외수당(1.5배), 주휴근로(2배), 4대보험 가입, 산재처리 등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다. 반면 미등록이주노동자를 고용하면 하루 12시간을 기준으로 임금을 책정하고 4대보험은 가입하지 않는다. 또 근무 중 다치면 간단하게 치료 후 추방하면 그만이고 치료기간 급여를 주지 않아도 된다. 만약 한국인 노동자를 미등록이주노동자와 동일한 시간의 근로를 시킬 경우 1인당 100만원 정도 더 든다. 하도급업체가 상대적으로 값싼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산업연수를 통해 입국한 합법적인 외국인 노동자도 쉽게 불법체류자로 전락한다. 산업연수생은 한국인 노동자와 같은 조건에서 근로를 시작하다 보니 한 달 급여가 18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불법체류 신분으로 일할 경우 근로시간이 늘어도 한 달 280만~300만원을 받을 수 있어 중도에 회사를 옮기면서 미등록이주노동자로 신분을 바꾸고 있다. 이들에게 불법체류 신분은 크게 불편한 것이 아니다. 간혹 추방되더라도 ‘신분세탁’을 통해 다시 들어와 곧바로 불법체류 신분으로 산업현장에 뛰어든다.

◆총체적인 난국의 이주노동자 문제

국내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는 전국적으로 200만명 정도이며, 이 중 미등록이주노동자는 20만명쯤 된다. 정부도 미등록이주노동자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당장 산업현장 인력난 때문에 고민에 빠져 있다. 일단 적정선을 10% 이내로 정하고 완급 조절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오세용 소장은 “이주노동자 문제는 총체적 난관에 봉착해 있다. 시간을 가지고 제도개선을 해나가면서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오 소장은 해법으로 “이민정책을 비롯해 부문별, 비자별 복잡 다양한 이주노동자 관련 제도의 미비점을 정부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산업 전반에 걸쳐 퍼져있는 사내하도급은 사라져야 할 대상”이라면서도 “지금 당장 없앨 수 있느냐, 없앨 경우 파장은 어떻게 할 건가에 대해서는 또 다른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오 소장은 저임금이 이주노동자의 일탈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 인상과 나아가 내국인과 동등하게 대접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와 국회, 노동계는 사내하도급의 문제점에 대해 오래전부터 고민해 오고 있으며 실제 각종 법안이 상정돼 있다. 하지만 장단점이 공존하고 있어 쉽게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국회의사당 의정관에서 개최한 제100차 노동포럼에서는 “사내하도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직접생산 공정의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원도급업체가 직접 고용하는 것”이라며 “정치권과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밝혔다.

고령=석현철기자 shc@yeongnam.com

사내하도급과 파견근로=사내하도급과 파견근로는 비정규직 고용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사내하도급은 일감을 준 대기업 사업장에서 사용업체(원도급) 근로자들과 함께 일한다. 자동차 공장에서는 일부 라인을 맡기도 한다. 다만 업무의 구체적인 지휘 명령권이 사내하도급은 일감을 받은 고용주에게, 파견근로는 일감을 발주한 원도급업체에 있다는 점이 다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