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대한민국은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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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4   |  발행일 2017-06-14 제31면   |  수정 2017-06-14
[박재일 칼럼] 대한민국은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에 임명됐다.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는 서울로 거주지를 옮겨야 했다. 당연히 민정수석쯤 되는 대단한 자리면(사실 대단하다. 대한민국 모든 권력기관을 감시 관리한다) 청와대 인근에 별도 관사가 있을 줄 알았는데 상황이 그게 아니었다. 할 수 없이 직접 전세를 얻어야 했다. 부산집을 팔아도 강남 전세는 못가고, 종로구 평창동 조그만 연립주택을 구했다고 했다. 그의 저서 ‘운명’에 나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내가 몇 해 전까지 살던 대구 중구의 한 아파트 뒷 동에는 대구시 부시장 관사에다 외무부에서 파견된 대구시 대사 관사가 있었다. 지금 사는 아파트에는 대구지방국세청장 관사가 있다. 서울서 내려오는 관리들을 위한 집이다. 뜯어보면 지방에서 서울 가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고, 서울서 지방으로 오면 관사에 모셔준다.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은 ‘서울중심의 사고가 빚어낸 모순’이라고 했다.

근세기 들어 ‘국가발전’을 놓고 던져진 큰 질문의 하나는 중국은 왜 세계를 정복하지 못했는가, 왜 유럽을 능가하지 못했는가이다. 세계 문명의 시발이 된 황하문명의 발상지로 일찍이 종이, 화약, 인쇄술에 수천년 한자문화의 지식전달체계를 갖춘 중국이 왜 자기 땅의 100분의 1, 10분의 1도 안되는 유럽 국가들에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며 굴욕을 당했는가란 의문이다.

‘총·균·쇠’의 저자 제러미 다이어먼드를 비롯해 석학들은 중국의 오랜 중앙집권적 국가 형태를 지목한다. 근세 유럽의 힘은 과학기술, 자본, 산업혁명, 민주적 정치철학에서 비롯됐는데, 이것들은 분열된, 한편 자치화된 유럽대륙의 환경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도시와 국가 간 ‘최적의 분열’은 각 지역, 각 나라의 경쟁과 혁신을 유발한다. 과도한 중앙집권은 혁신과 경쟁을 불가능케 하지만, 적절한 분열과 자치는 전체 시스템을 발전시킨다. 중국은 춘추전국, 초·한의 전쟁시대에도 불구하고 진, 한, 수, 당, 원, 명, 청으로 이어진 중앙집권적 제국을 줄기차게 유지해 왔다. 지역 간 경쟁의 요인이 별반 없었다는 의미다. 이는 공산당 1당 독재의 현재 중국의 미래마저 썩 좋지 않게 보는 시각과 맞닿아 있다.

시야를 넓히면 오늘날 미국의 절대적 힘은 어디서 연유하는가를 물을 때, 적절히 나눠진 50개 주(州)의 강력한 자치와 이들 지역의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창출되는 혁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답이 유추된다. 강력한 연방제적 시스템을 갖춘 독일이나, 지방자치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유럽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은 근 20년간 ‘진정한 선진국 진입’이 국가적 화두이다. 선진국의 요건은 복잡하지만, 그것은 경제적으로 4만~5만달러 소득에 문화적·정치적 수준을 요구한다. 우리는 분명 많은 부분에서 미치지 못한다. 경제만 해도 똑똑한 학자·관료들이 총동원됐지만, 한계만 확인하고 있다. 나는 그 한계가 이제 나라의 적폐가 된 뿌리깊은 봉건적 중앙집권의 틀을 깨지 못한 데 있다고 본다. 학자나 관료들은 달콤한 중앙집권적 논리에 젖어 있다.

혁신을 가능케 하는 분권(分權)은 국토를 넓게 쓰는 것이고, 인재를 널리 등용하는 것이다. ‘서울=대한민국’이란 수도권 일극주의는 국가적 용량을 더이상 키우지 못한다. 중앙집권은 서울보다 훨씬 면적이 큰 지방 시·군에 노인만 득실거리고, 지방 대도시 청년들은 너도나도 서울행 KTX에 올라타게 한다.

서울에서 집을 구해야 했던 문재인 민정수석이 대통령이 됐다. 그는 내년 지방선거 때 자치분권형 개헌을 약속했다. 기대할 일이다. 그런데 중앙집권적 사고를 비판했던 문 대통령조차도 지방분권적 시각에서 보면 극히 실망스러운 인사를 반복하고 있다. 광주에서 혹은 부산·대구에서 살던 이들이 장·차관이 돼서 서울에서 집 구하기 어렵게 됐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모든 인재는 서울에서 충원된다. 국토공간과 인재를 좁게 쓰는 끝없는 관성이 지속된다면 대한민국은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이건 결코 변방의 투정이 아니다. 만성화된 중앙집권은 역사적으로 국가 존망과 결부됐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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