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투탕카멘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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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2 07:41  |  수정 2017-06-12 07:41  |  발행일 2017-06-12 제18면
[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투탕카멘의 무덤

그날(1922년 11월26일)은 내 평생 가장 근사하고 황홀한 날이었다. 앞으로도 그런 날은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통로의 돌과 흙을 치우는 일은 오전 내내 계속되었다. 우리는 그 내용물과 섞여 있는, 깨지기 쉬운 물건들 때문에 작업을 천천히 진행해 나갔다.

그러다 오후 중반쯤 되어 바깥문에서 9미터쯤 되는 곳까지 파내려 갔을 때 첫 번째 문과 거의 똑같이 생긴 두 번째 문이 나타났다. 밀봉된 그 문에 찍힌 인장 자국은 첫 번째 문의 인장 자국보다 덜 선명했으나 왕들의 공동묘지 인장과 투탕카멘 왕의 인장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 문의 벽토 자국에도 역시 누군가 뚫었다가 다시 밀봉한 흔적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떨리는 문 상단 오른쪽 구석에 조그만 구멍을 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시험용 쇠막대를 들이밀어 보자 그 안이 우리가 방금 전에 내용물을 치웠던 통로와는 달리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나는 좋지 않은 가스가 들어차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조치로 촛불을 켜서 구멍에 들이대 봤다. 카나번 경과 이블린 양, 콜렌터는 내 곁에 붙어 서서 가슴을 졸이면서 내 평결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방에서 새나오는 더운 공기 때문에 촛불이 펄럭거려 처음에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윽고 내 눈이 그 빛에 익숙해지면서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이 안개 속에서 서서히 떠올랐다. 이상한 동물들, 조각상들, 금붙이들이. 실내의 도처에서 황금빛이 번쩍거렸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영원만큼이나 긴 시간이었을 그 짧은 순간 동안 나는 너무나 놀라워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그러자 그 유예의 시간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카나번 경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보여요?”

나는 그저 “예, 근사한 것들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우리 두 사람이 안에다 전지를 들이밀고 함께 들여다볼 수 있게끔 구멍을 좀 더 넓혔다. (하워드 카터 ‘투탕카멘의 무덤’ 중에서)

유년의 제 꿈 중 하나는 열렬한 탐구심으로 수많은 모험을 겪으며 고대의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였습니다. ‘솔로몬의 동굴’ ‘보물섬’ ‘일리아드’를 읽으며 지도를 찾아보곤 했지요. 물론 그 꿈을 아직 이루진 못했지만, 시를 쓰면서 투탕카멘을 발견한 저 하워드 카터의 ‘내 평생 가장 근사하고 황홀한 날’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는 알게 되었답니다.

‘개인적으로 완벽하게 흡족한’ 시를 쓴 날, 물론 그로 인해 하루 이상 갔던 기쁨은 거의 없었으며 매번 가장 최근에 쓴 시들이 이전의 것들보다 더 좋다고 혼자 판정하지만, 저는 그 순간을 늘 새로 맛보고 싶어 오늘도 시를 쓴답니다.

이집트 신왕국 말기, 존재가 미미했던 소년왕 투탕카멘이 역사상 가장 유명한 파라오가 된 것은 그 미미함 탓에 도굴되지 않은 덕분이라 합니다. 이 또한 모험과 고난 그리고 열정을 요구하는 고고학이 주는 반전의 기쁨 아니겠습니까. 지금 막 어느 곳에선가 피를 잉크 삼아 쓴 자신의 글을 들고 한 작가가 하워드 카터와 같은 저 기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 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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