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허물기’ 그 후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06-10   |  발행일 2017-06-10 제23면   |  수정 2017-06-12
20170610
최병묵 정치평론가

안병호 전 수도방위사령관을 몇 년 전 만났다. 그는 군(軍)내 대표적 사조직 하나회 핵심 멤버였다. 김영삼정부 출범 다음 달(1993년 3월), 사령관에서 물러났다. 대통령의 전격적 인사조치 때문이었다. ‘하나회 척결’이란 명분으로. 이 사건은 정권 취임 초 개혁의 상징처럼 두고두고 회자됐다. 이를 지시한 대통령의 인기는 치솟았다.

그 후 군은 어떻게 되었을까. 별로 관심을 두는 이가 없다. 안 전 사령관은 “하나회는 특혜를 주었다기보다 ‘잘 나가는 사람’을 가입시켜 키웠다”고 했다. ‘금수저 군인’이 아니었단 얘기다. 본인도 대위 때 아는 사람의 권유로 함께하게 됐다고 했다. 하나회의 다른 핵심 허화평 전 국회의원은 “하나회는 전두환 대통령 취임과 함께 이미 해체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권담당자들이 하나회를 공격만 했을 뿐 더 중요한 군(軍) 전력(戰力)의 리빌딩(rebuilding·재건)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군내 사조직을 없애는 것은 중요한 정책방향이다. 꼭 필요하기도 하다. 다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군은 강군(强軍)이 되었는가. 역대 정부는 강군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군은 관료화의 위기를 맞고 있다. 군 조직이 언제 일어날지 모를 전쟁에 대비하는 ‘전투 대형’이 되었다기보다 ‘월급 받고 일하는’ 공무원 사회처럼 변했다는 지적이다. 알자회, 독사회 등 새로운 사조직이 생겼다는 주장(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마저 있다. 이래서야 되겠는가. 지금부터라도 개혁 그 이후, 조직의 한켠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정권 출범 초 단골 메뉴인 각종 개혁 조치들이 일과성(一過性)으로 끝난 것 아닌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바뀐 직후 국정 운영 지지율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거의 예외가 없다. 지지율이 얼마 가지 않아 폭락한 것 또한 똑같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한달이 지났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와 내각 진용을 갖추지 않고 여러 조치들을 지시하거나 이끌어냈다.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하자 공사 사장은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무려 1만명이다. 공항공사는 대표적인 흑자(黑字) 공기업이다. 방만(放漫) 운영의 대명사격인 공기업이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일부 일자리의 아웃소싱(outsourcing·외주화) 등 경영 효율화에 기인한 바 크다. 아웃소싱을 없애면 비정규직 일자리가 대거 정규직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바람직하다. 다음이 문제다. 공항공사의 수익구조는 적자로 돌아서거나, 적어도 공항 이용료를 올려 줄어드는 만큼을 보충해야 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궁극적 부담은 국민 몫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누구도 이의가 없지만, 적어도 그 그늘을 없애려는 사회적 합의는 있어야 한다. 지금 그게 없다.

문 대통령의 주요 공약인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창출은 더욱 심각하다.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의 현장은 벌써부터 시끌벅적하다. 그렇지만 80만개 넘는 공공 일자리가 생긴 이후를 생각해 보았는가. 뒷감당을 누가 할 것인가. 뽑고 난 뒤 관리·운영비부터 퇴직 후 연금까지 길고 긴 그늘이 생길 것이다. 나 몰라라 할 일이 아니다.

사드 배치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강화,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보담당관제 폐지, 원자력발전소 점진적 폐기 역시 문 대통령의 ‘개혁’ 조치들이다. 박수 소리 또한 높은 편이다. 여기까진 전(前) 정부와 다르게만 가면 되는 것들이다. 전 정권이 탄핵 당했으니 ‘정책 허물기’만으로도 인기를 모을 수 있다. 어려울 것이 없다.

문제는 사드 논란 이후의 확고한 안보 태세 구축, 국내정보 담당관제 폐지 이후 사회 각계에 침투해있을지 모르는 안보 사범 색출, 원전 폐기 이후의 안정적 전력 공급 대책 등은 모두 재건(再建) 작업이다. 허물기보다 열배, 백배 어렵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서로 자기 몫을 더 차지하기 위한 갈등이 커질 것이기에 그렇다. 허물 때의 박수 소리가 원성(怨聲)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허물 때부터 재건 설계도를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최병묵 정치평론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