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세프를 찾아서- 레스토랑 ‘셀리우’ 김정한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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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09   |  발행일 2017-06-09 제41면   |  수정 2017-06-09
‘동상사미’…코스요리에 회덮밥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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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우식 발상의 전환이 빛나는 ‘회덮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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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드 방식으로 조리된 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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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오일의 산뜻함이 돋보이는 ‘토마토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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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전통빵의 기운이 감도는 식전빵 ‘롸우겐’.

7년간의 호주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대구로 돌아온 해군 장교 출신인 김정한 셰프(35). 그는 2년 전 수성구에서 ‘자니스토리’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열었지만 망했다. 대구에서 사라진다. 그런 그가 올해 다시 더 다져진 포스로 대구에 나타났다. 후배 셰프 3명이 곁에 모여들었다. 한·양·중·일식을 퓨전스타일로 핸들링하는 크로스오버 콘셉트의 레스토랑 ‘셀리우(Ce Lieu·이 장소)’. 중구 교동 전자상가 뒷골목에 피어 있다. 김 오너셰프가 3명(이병태·성미영·정은석)에게 월급을 주고 있지만 실은 모두 사장이라고 여긴다. 매니저 겸 예약 및 매장 관리를 하는 이 셰프는 빵·디저트·커피, 성 셰프는 코스요리에서 메인 음식 전의 모든 애피타이저, 정 셰프는 식재료 준비 및 메인 요리 보조를 한다. 이렇게 넷은 ‘도원결의(桃園結義)’한 상태.

한식·양식·중식·일식 융합 퓨전스타일
‘크로스오버 콘셉트’ 대구 교동에 위치

호주서 대구 돌아와 2년前 첫 레스토랑
실패 후 서울 등서 내공 다져 올 재도전
후배 셰프 셋 ‘전채∼디저트’ 역할 분담
미슐랭 2스타 ‘아테라’ 차용한 인테리어
黑白 도자 식기 등 오감 자극 ‘맛 시너지'


◆ 난 뭘 잘못했지

그는 코스 전문 ‘다이닝 레스토랑’을 꿈꾸었다. 하지만 열정은 현실을 이기지 못한다. 스스로 무력해지고 결국 식당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상경한다. 지난 2년 서울에서 요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보냈다. 자니스토리가 왜 실패했는지 분석에 들어갔다. 일단 식자재 구매, 매장 운영, 고객 관리 등 주방과 매장을 같이 운영한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충분하지 못했던 오픈 준비, 식당 콘셉트의 모호함 등으로 운영하면 할수록 더 절벽으로 내몰렸다.

“내 주관 없이 그냥 주위 친구, 가족, 지인 등의 지적에 너무 휘둘렸습니다. 잦은 수정으로 인해 저만의 개성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어요.”

서울은 좀 달랐다. 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레스토랑 및 서비스업이 발달된 도시가 아닌가. 그가 꿈꾸었던 다이닝 레스토랑이 수십여 개 있는 수준 높은 미식의 도시였다. 호주 시드니 유명 레스토랑 시절, 많이 체험했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했다. 산 넘어 또 산이 있었다.

운이 좋게도 서울 도산공원 쪽에 있는 이탈리안 다이닝 레스토랑 ‘수쉐프’의 주방 서열 둘째 관리자로 취직된다. 거기서 손님접대 방법, 커틀러리와 유리잔은 어떻게 관리하는지, 테이블 세팅 및 고객 관리까지 새로 배웠다. 이미 한국 톱 셰프로 등극한 임정식 셰프가 운영하는 강남 신사동 ‘정식당’을 비롯해 ‘밍글스’ ‘스와니예’ ‘톡톡’ 등을 하나씩 찾아다녔다.

역시 잘되는 유명식당은 모든 요소가 효율·합리적이었다. 동선도 유기적으로 흘렀다. 매니저의 미소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실내의 디자인 컬러가 식기와 화병, 조명 등의 색깔과 밝기의 세기와도 잘 맞아들어갔다. 마지막엔 실내 곳곳을 파고드는 음악과도 매치될 수 있게 고도의 감각을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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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한 오너셰프와 의기투합한 이병태·성미영·정은석 셰프(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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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만족 퓨전양식’을 선보이는 김정한 오너셰프.

◆ 구원투수…이병태 셰프

메뉴라인을 결정할 때 이병태 셰프가 일조했다. 말수가 적으면서도 치밀하고 그러면서도 성실한 이 셰프. 그는 재즈뮤지션 같은 심성을 갖고 있다.

자니스토리 시절, 스테이크가 포함된 코스요리를 예약제로 했다. 그러나 메인 못지않게 중요한 빵이나 디저트, 커피, 와인 등은 상당히 부실했다. 서울에 있는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이 셰프를 만나 이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셰프에게 대구로 가자고 제안했다. 그도 좋다고 했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이 셰프는 서울의 큰 커피숍에 입사해 자기 전공이 아닌 커피를 더 배운다. 김 셰프도 시너지효과를 올리기 위해 와인에 대해 공부했다. 이 셰프는 돈보다도 일을 더 사랑한다. 자기가 구워낸 빵이 잘 안 나오고 마음에 안 들면 밤을 새워서라도 마음에 들게 한다.

현재 이 셰프가 ‘롸우겐’이라고 하는 독일 전통빵을 수제로 만든다. 그 빵에 말린 무화과와 레드와인으로 만든 잼을 곁들인다.

◆ 공들인 실내인테리어

하나의 레스토랑을 오픈한다는 건 ‘개국(開國)’과 맞먹는 험로.

블랙톤의 인테리어라인은 그 전에 그가 깔았던 디자인과 사뭇 달랐다. 내부 조명도 참으로 중요하다. 코스요리의 경우 식사 시간이 1시간 이상이기 때문에 조도를 밝게 하기보다는 조금 낮추는 게 좋다. 대화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형광등 불빛은 금물.

셀리우는 ‘극장식 레스토랑’ 같다. 홀에 앉아서 요리하는 과정은 물론 요리를 접시에 담는 과정도 다 지켜볼 수 있다. 무대가 주방이다. 넷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장면이 공연 같다.

홀 중앙에는 예전 스탠드바의 ㅁ자 구조의 고급스러운 바가 있다. ‘혼밥족’을 배려한 것이다.

인테리어 라인을 정할 때 뉴욕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인 ‘아테라(Atera)’스타일을 차용했다. 직접 미국 현지로 갈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기에 인터넷에 있는 아테라 사진을 참조했다. 서울에 아테라와 비슷한 콘셉트의 레스토랑인 ‘스와니예’ ‘알라 프리마’ 등이 있어 직접 방문해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한 명의 지원군이 있다. 절친 마승범씨다.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석사를 마친 후 현재 뉴욕에서 건축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작년 10월쯤, 너무나 고맙게도 셀리우의 인테리어를 맡아줬다. 바닥 타일, 조명, 천연석 테이블 상판, 바 테이블 의자 등을 직접 챙겨줬다.

예전에는 메인요리에만 올인했다. 요리는, 특히 스테이크를 축으로 한 풀코스 양식 메뉴라인은 메인 못지않게 전채와 디저트가 매우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스테이크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은 코스도 만들었다. 지금 쓰는 한우 고기를 스테이크용으로 손질하면 코스 1인당 식자재 원가만 9천~1만원. 그렇지만 기본 코스가 4만원이 넘지 않게 짰다. 제한된 가격에서 야무진 메뉴 라인을 짜는 게 큰 고민이었다. 일단 인건비를 최소화했다. 다들 1인3역이다. 이렇게 절약한 인건비를 식자재 원가에 반영했다. 가격 대비 만족도 높은 메뉴가 만들어졌다. 다른 레스토랑들은 저녁에 고가의 디너코스만을 파는데 여긴 점심·저녁 구별 없이 항상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게 배려했다.

좋은 요리는 제대로 된 식기에 담아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음식의 식감은 추락하게 된다. 현재 한국식 도자기 접시를 서양식으로 재해석한 ‘광주요’ 제품을 사용한다. 특히 광택이 없는 백과 흑의 도자기 재질은 다양한 색채의 음식을 담아내기에 딱이었다.

◆ 풀코스 요리 엿보기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드는 메뉴가 있다. ‘회덮밥’이다. 다들 ‘레스토랑에 웬 회덮밥?’이라는 반응이다. 직접 손질한 활어(주로 광어)를 가지고 회를 뜨고 일식 초밥 레시피에 참기름·참깨·검은깨, 그리고 고수 씨 가루를 살짝 넣어 밥을 준비한다. 여기에 사과와 깻잎, 생선회를 얹고 생선회에 라임과 가다랑어 포를 넣은 간장소스와 다진 다시마를 얹는다. 와사비와 아보카도를 갈아서 만든 퓌레를 같이 곁들인다. 김치는 김 셰프의 어머니가 만든 작품. 요리 과정이 꽤 까다롭지만 셀리우식 발상의 전환이 빛난 메뉴다.

스테이크를 보다 빛나게 하는 게 레드와인소스다.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고기는 주로 안심과 채끝을 사용한다. 스테이크는 ‘수비드’(Sousvide·밀폐된 비닐봉지에 담긴 음식물을 미지근한 물 속에 오랫동안 데우는 조리법) 방식으로 마련된다. 소스는 소뼈를 오븐에서 갈색으로 구워 육수를 진하게 만든 다음 낮은 불에서 원래 육수 양을 1/4 정도로 졸인다. 여기에 5ℓ 정도의 레드와인도 1/4 정도 졸인 다음 이 둘을 합쳐 고운 체에 거른다. 얼마나 많은 셰프가 이렇게 수제식으로 소스를 장만할까?

‘카다이프새우’도 인상적. ‘카다이프’는 실타래처럼 길고 가는 밀가루 반죽이다. 그 모양 때문에 유럽에서 특히 인기다. 간장과 마늘로 양념한 새우를 카다이프로 감아서 튀긴 것을 레몬 드레싱과 함께 곁들여 낸다.

‘토마토샐러드’는 껍질을 깐 대저토마토와 대추토마토를 기본으로 레몬크림, 레몬유자드레싱, 자두오일 등으로 산뜻함을 더한다. 진하게 뽑아낸 바질오일을 더해 풍미를 더하고 염소젖 페타치즈로 약간의 짠맛을 낸 뒤 사과젤리로 단맛을 돋운다. 마지막으로 헤이즐넛을 갈아 얹어 고소함을 더한다.

블루베리에 레몬즙이 가미된 셔벗, 화이트 초콜릿과 코코아 크럼블, 치커리 뿌리 가루로 만든 케이크 조각으로 디저트라인을 짠다. 메뉴 하나하나에 ‘상상력’ 같은 게 묻어 있다. A코스는 5만8천원, B코스는 3만9천원. 매주 월요일 휴무. 중구 교동2길 43-9. (053)260-9999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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