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처벌과 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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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07   |  발행일 2017-06-07 제31면   |  수정 2017-06-07
[영남시론] 처벌과 보복
김진국 신경과 전문의

출범한 지 이제 한 달을 채워가고 있는 문재인정부의 성격은 시민들의 촛불혁명에 의해 탄생한 혁명정부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스스로도 그렇게 규정하고 있고, 이낙연 총리도 취임 후 첫 발언이 촛불혁명을 일으킨 시민들의 뜻을 충실히 받든다는 다짐이었다. 지난 겨울 내내, 그리고 정유년의 봄이 오는 길목까지 촛불을 들고 광장을 가득 메웠던 시민들의 뜻은 ‘나라다운 나라’를 다시 세워달라는 것과 ‘적폐청산’ 딱 두 가지다. 부정의하고 부도덕한 과거의 관행을 청산하여 좀 더 밝고 건강한 미래가 보장되는 디딤돌을 놓아달라는 것으로 그렇게 거창하고 복잡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시민들의 이런 단순하고 소박한 바람이 현실이 되기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고 맞바람이 정말 거세게 일어날 것 같다. 맞바람이란 청산이나 처벌의 대상이 된 세력들의 한편으로는 측은해 보이고 한편으로는 세련된 반발과 저항이다. 그들이 가진 저항의 수단은 ‘정치보복’이라는 비명을 내지르는 것인데, 할리우드 액션이나 다를 바 없는 그 비명소리를 언론들이 증폭시켜 시민들의 눈과 귀를 가린다. 이 무한경쟁의 시대에 과거에 발목 잡혀 허송세월을 한다느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할 인력과 시간도 모자라는데 지난 정권의 적폐 타령이나 하고 있다느니 하면서….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정권이 교체되고, 또 그런 민주적 전통이 구축된 사회에서 비열한 정치보복은 없어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사적인 원한이나 감정이 담겨있는 보복과 처벌은 다르다. 처벌 없는 사회정의가 가능한가? 처벌 없는 적폐청산이 가능한가? 지금 한국 사회를 옥죄고 있는 적폐의 뿌리는 친일부역배들의 처벌은커녕 오히려 그들을 중용했던 이승만 정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저잣거리의 한 아낙네가 한 나라의 국정을 치마폭 안에서 주물럭거릴 수 있었던 것도 반공을 명분으로 친일부역배들에게 면죄부를 준 부끄러운 역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검찰이 우리 사회의 공공의 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타락하게 된 데는 검찰의 불법과 부정이 처벌되지도 않고 처벌할 수도 없는 그들만의 독점적인 권한 때문이란 것을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법으로 정해진 절차와 규정을 깡그리 무시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온 나라의 강을 파 뒤집어버린 4대강 사업 추진 과정의 불법성을 따져보겠다는 것이 정치보복인가?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상황에서 사드를 누가 무슨 권한으로 그렇게 급하게 배치를 결정했는지, 그리고 발사대를 추가반입한 사실은 누가 무슨 이유로 꽁꽁 숨기고 있었는지를 조사하여 그 과정에 불법과 위법성이 발견되었을 때 처벌하는 것이 정치보복인가?

쇼펜하우어는 그의 대표저서라고 할 수 있는 ‘의지와 표상의 세계’에서 처벌과 보복의 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보복 즉 복수는 “과거 그 자체를 통해 동기가 주어져” 있는 것으로 “미래를 위한 목적 없이 고통을 가함으로써 부당한 일에 앙갚음”하는 것인 반면, 처벌은 목적 자체가 미래를 위한 것으로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처벌이 이루어진다는, “법률의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처벌은 결국 법치를 통한 정의의 실현과 맞닿아 있고, 정의는 미래사회를 고려하는 것이어야 그 가치가 빛나는 법이다. 따라서 ‘나라다운 나라’라는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 과거 적폐의 처벌과 청산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숙제 같은 것이다.

박종철의 죽음으로 촉발된 1987년 6월 항쟁이 촛불혁명으로 이어지기까지에는 30년의 시간이 걸려야 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다시 확인하기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린 것은 군부독재로 말미암은 적폐를 청산하는 작업이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유년의 촛불이 밝힌 불빛에 민낯을 드러낸 적폐들. 그 저항과 맞바람을 잠재우는 것도 역시 시민들의 손에 들린, 꺼지지 않는 촛불의 힘이다. 촛불혁명이 완성되는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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