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등대부모’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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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05 08:03  |  수정 2017-06-05 08:04  |  발행일 2017-06-05 제18면
“부모 의지보다 자녀 스스로 선택하면 책임·성취감 커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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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1980년대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라는 가전제품 광고가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후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좌우한다’ ‘순간의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 등 다양한 문구로 바뀌어 선택의 중요성을 대변하는 명언 아닌 명언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하루는 갈등과 선택의 연속입니다. 기상알람 소리에 ‘조금 더 잘까, 일어날까’ ‘무슨 옷을 입고 갈까’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갈등하고 선택합니다. 하지만 사소한 결정도 쉽게 하지 못한 채 미루거나 타인에게 맡겨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햄릿증후군’ 또는 ‘결정장애’가 있다고 합니다.

“성장과정은 갈등과 선택의 연속
수동적인 유년 시절 보낸 사람은
결정못해 불안 ‘햄릿증후군’우려
결과 좋지 않더라도 선택권 줘야”


‘햄릿증후군’은 어떠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쪽을 결정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심리상태를 말합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서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며 갈등하고 결정하지 못하는 주인공 햄릿의 성격에서 착안한 조어이지요. 실제 성인남녀 2천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0.9%가 햄릿증후군을 겪고 있다고 응답하였고, 그 중 78.4%가 적시에 결정을 내리지 못해 기회를 놓치는 등 손해를 본 경험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아래 증상 중 여러분에게 해당되는 것은 무엇인지 점검해 보기 바랍니다.

△선택하는 것이 두렵고 결과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 △식사 메뉴 선택이 어려워 남의 결정을 따른다 △혼자서는 쇼핑하는 일이 어렵다 △다른 사람의 주장에 이끌려가는 경우가 많다 △SNS나 인터넷에 결정을 부탁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누군가가 질문을 하면 ‘글쎄’ ‘아마도’ ‘잘 모르겠어’ 라는 모호한 말을 자주 한다.

위와 같은 증상이 3~4개면 햄릿증후군 초기 단계이며, 5개 이상이면 심각 단계입니다. 이처럼 ‘햄릿증후군’이 증가하는 원인은 정보 과다, 수동적 성장 배경, 개인적 성향 등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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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 아이옌거 교수 실험에 의하면 슈퍼마켓에 6종류의 잼과 24종류의 잼 진열대를 각각 마련하고 시식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손님들은 24종류의 잼 진열대에 더 많이 방문하였습니다. 하지만 잼의 판매는 예상과 달리 6종류의 진열대를 방문한 손님 중 30%가 구입하였고, 24종류의 진열대에서는 3%만 구입하였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고르기 귀찮고, 또 고르고 나면 나중에 후회할까봐 쉽게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선택 사항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결정하지 못하고 선택 피로가 높아집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심리를 반영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짬짜면, 반반치킨(프라이드+양념), 반반냉면(물+비빔), 두 가지 색을 조합한 립스틱, 딸기초코우유(딸기+초코) 등 선택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면서 가성비가 높은 ‘반반 상품’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또한 단순히 인기상품 순위를 나열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개별 소비자의 취향을 분석해 그에 맞는 최적의 상품을 추천하는 큐레이션 서비스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선택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무속인(점집)을 방문하는 사람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서 확신이 들 때까지 선택을 보류하게 되는 사회 변화보다 부모의 선택과 결정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유년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햄릿증후군 증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헬리콥터 부모’처럼 자녀 주위를 맴돌며 자녀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대신 해결해 주는 과잉보호는 자녀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빼앗고 독립적 성장을 방해해서 결국 캥거루족이 되어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됩니다.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은 크고 작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아직 어리고 부족하기만 한 자녀에게 선택권을 주자니 불안하고 모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자녀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건 어떨까요. 스스로 선택하면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갖고 몰입하게 됩니다. 비록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장하게 됩니다.

부모의 선택이 아닌 자녀 스스로 선택하고 몰입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며 성장할 수 있도록 어두운 밤바다를 비춰주는 ‘등대 부모’가 되면 어떨까요?

신민식<대구학생문화센터 교육연구사·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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